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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序) 송 봉상인유방 서(송봉상인유방서) -이색(李穡)-

천하한량 2007. 5. 1. 01:15

서(序)
 
 
송 봉상인유방 서(송봉상인유방서)
 

상인은 본래 알지 못하는 처지였는데, 내 집 문 앞에 걸어와서 보기를 청하므로, 한번 보자 손을 잡고 오랜 친구와 같이 되었다. 며칠이 못 되어 내 아내가 죽으니 14일 동안을 머물며, 영(靈)을 대하여 한결같이 경을 외우며 복을 비는데, 글 소리가 맑고 총명하여 듣는 자가 몸이 솟구칠 듯하였다. 나는 만류하여 오랫동안 있게 하려 했는데 떠나겠다고 한 것이 두 번이니, 대개 한 곳에 오래 머무르지 않겠다는 것이다.
작별에 앞서 글 한 장을 청하므로 나는 이에 말하기를, “사(師)가 사방을 구경 간다고 하니, 무엇을 구하는 바이냐.” 물으니, 대답하기를, “도(道)를 구할 따름이다.” 한다. “도가 어디 있는가.” 물으니, “어디든지 없는 곳이 없다.”라고 한다. 그렇다면, “도가 지금의 처해 있는 곳에서도 떠나 있는 것이 아닌가?” 물으니, “그렇다.” 한다.
나는 드디어 말하기를, “그렇다면 사(師)의 이른바 구경 간다는 것이 너무도 불필요하다. 사가 포단(蒲團)에 있으면 도가 포단에 있고, 사가 짚신을 신으면 도가 짚신에 있으며, 장벽(墻壁)과 와력(瓦礫)이 도가 아닌 것이 없고, 강산과 풍월이 도가 아닌 것이 없다. 어찌 이것뿐이랴. 옷을 입고 밥을 먹는 것도 도가 아닌 것이 없고, 눈썹을 치솟고 눈을 깜짝이는 것도 도가 아닌 것이 없는데, 상인은 하필 구경을 가서 이 도를 구하려 하는가. 나의 이른바 너무도 불필요하다는 것이 그런가. 그렇지 않은가.” 하니,
상인은 말하기를, “그대의 말이 옳다. 그러나 나의 제시하는 바는 조주(趙州)의 일이다. 조주가 70세에 다시 참선(參禪)하였으니 어찌 불필요하다 하랴. 봉(峯)은 나이가 지금 29세니 조주와 거리가 멀다. 참방(參訪)을 아니하면 어디서 도를 보겠는가. 이것이 나의 눈과 서리를 무릅쓰고 산천을 발섭하여 기탄이 없는 까닭이다. 어찌 그대의 기롱이 이리도 심한가.” 하므로, 나는 웃고 대답하기를, “내가 말하지 않았는가. 포단과 짚신은 행(行)ㆍ주(住)의 동(動)ㆍ정(靜)을 두고 이른 것이다. 비록 그러하나 초학(初學)은 반드시 고요하고 안정한 데서부터 공부를 시작하는 것이니, 갑자기 조주의 행위만을 본뜨지 말라. 다행히 사(師)의 천품이 아름다우니 중도에 폐기하지 않으면, 조주의 지경에 도달하기가 어렵지 않을 것이며, 도달하게 되면 내 말을 수긍할 것이다.” 하고 드디어 작별하였다. 갑술년 8월 아무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