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序)
선수집 서(選粹集序)
시대순으로 글월을 모으는 것은 공자의 법이다. 그러므로 상고(上古)의 서는 명목을 우서(虞書)ㆍ하서(夏書)ㆍ상서(尙書)ㆍ주서(周書)라 하였다. 또한 체(體)로 시를 모으는 것도 역시 공자의 법이다. 그러므로 제후 나라의 시는 명목을 풍(風)이라 하고, 천자의 서는 아(雅)ㆍ송(頌)이라 하였다. 공자가 요순(堯舜)을 조술(祖述)하고 문왕ㆍ무왕은 헌장(憲章)하여 시서(詩書)와 예악(禮樂)을 산정하고 정치를 내고 성정(性情)을 바르게 하여, 풍속을 한결같이 하고 만세 태평의 근본을 세웠으니, 이른바, “사람이 생긴 이래로 공자보다 더 훌륭한 이는 없다.”는 말이 어찌 미덥지 아니하랴. 중간에 진(秦)의 화재에 타버리고 겨우 공자 사당 벽에서 나왔으나, 시ㆍ서의 도가 없어져 흩어지고 어지러워졌다가 당(唐)에 이르러, 한유(韓愈)가 홀로 공자를 존숭할 줄을 알았으므로 문장이 드디어 변하였지만, 원도(原道) 한 편으로써 족히 그 득실을 볼 수 있다. 송(宋)의 세대에 이르러 한유를 숭배하여 고문(古文)을 배운 자는 구양수(歐陽脩) 등 몇 사람일 따름이요, 공ㆍ맹의 학을 강명하여 노자ㆍ석가를 배척하고, 만세를 깨우친 것에 있어서는 오로지 주(周)ㆍ정(程)의 공이었다. 송 나라 사직(社稷)이 없어지자 그 설이 북방으로 흘러 들어가서, 노재(魯齋) 허(許) 선생이 그 학을 써서 원 세조(元世祖)를 도와 중통(中統) 지원(至元)의 정치가 모두 이에서 나왔으니, 아, 거룩하다.
내 친구 김경숙(金敬叔)이 개연히 탄식하며 말하기를, “문중자(文仲子)가 경(經)을 속찬하여 《논어(論語)》를 체 받았으니, 거의 참람하고 분에 넘치는 짓이나 논하는 자가 또한 일찍이 용서를 하였다. 이로써 나는 천박하고 고루함을 헤아리지 아니하고, 옛날에 들은 바를 편집하여 □ 지금에 이르렀다. 그리고 무릇 몇 명의 시문(詩文)이 풍화(風化)와 성정(性情)에 관한 것이 있는 몇 편을 정리하여 몇 권을 만들었다.” 하였고, 아무 벼슬을 지낸 아무개가 또 와서 말하기를, “김경숙이 세상에 나서 그 뜻을 실행하지 못하고 늙어 버렸으니, 나로서도 역시 슬프게 여기는 바다. 그가 다행히 전장(典章)을 널리 구하여 모아서 한 기록을 만들었는데, 선생께서 이름을 《주관육익(周官六翼)》이라 지어주었고, 또 고금의 시문 몇 권을 모았는데, 선생께서 이름을 《선수집(選粹集)》으로 하라 하였으니, 선(選)은 소명태자(昭明太子)의 《문선(文選)》에서 취하였고, 수(粹)는 요현(姚鉉)의 당문수(唐文粹)에서 취한 것이니 그 의미는 그 정수를 뽑았다는 것이다. 선(選)하면 정수하게 되고 정수하면 곧 선한 것이니, 그 작자를 탄미(嘆美)한 까닭이요, 그 배우는 자를 흠동(歆動)케 하자는 것이다. 원컨대 선생은 인해서 글 한 편을 주어 편 머리에 싣게 하여 달라.” 하였다.
나는 사양하다 못해서 자신의 일을 들어서 말하기를, “이색(李穡)이 젊었을 적에 중국에 놀며 진신(搢紳)선생의 말을 들었는데, 문은 한(漢)을 법받고 시는 당(唐)을 법받아야 한다.” 하였는데, 그 까닭을 몰랐었다. 한림(翰林)에 들어가게 되자 천하가 너무 어지럽고 어머니도 늙으셨기에, 직을 사면하고 돌아와서 그릇되게 공민왕의 지우를 얻어 관에 봉직하여 허물이 없기를 힘쓰고 있기 때문에, 능히 문학에 전심하지 못하고 한두 가지의 소득조차 다 소멸되어 거의 없어졌다. 그런데 지금 경숙의 수립(樹立)한 것이 이와 같이 우뚝함을 보니, 어찌 이마에 땀이 흐르지 아니하랴. 비록 그러나 이 책이 전하면 나의 서문이 전해질 것을 알 수 있고, 서문이 전해지면 이름이 전하는 것이니, 내가 어찌 사양하겠으며 다른 날에 중국의 문장을 상고하여 한 책을 만들어내는 자가, 공자의 노서(魯誓)ㆍ노송(魯頌)ㆍ상송(商頌)의 예를 본받아서, 혹시 한두 편을 취택하여 편의 말미에라도 두게 되면 그야말로 큰 행이니, 내가 어찌 사양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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