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序)
증 환옹 상인 서(贈幻翁上人序)
탄여(坦如)라는 중이 내 집에 찾아와서 청하기를, “나는 조계종(曹溪宗)이요, 지금 정사년은 대선(大選)의 해요, 속성(俗姓)은 영일(迎日) 정(鄭)가요, 연복사(演福寺) 주지 대선사 죽암(竹菴) 진공(軫公)은 나의 스승이다. 내 나이 27세인데도 별호가 없어서 동년배들이 무어라 부르기 어려우므로 우리 스승의 말씀이, ‘환옹(幻翁)이라 하라.’ 하였다. 그 출처를 물으니, 《원각경(園覺經)》 보현장(普賢章)에 있는 말이었다. 그 설명을 청하였더니 선사가 이내 말씀하기를, ‘여(如)야, 네 이름 탄여(坦如)는 무슨 뜻인가. 평탄하여 중심에 일정한 주장이 없고 밖으로도 기대는 데가 없으며 종용하게 스스로 얻는 것을 이름이니, 이는 반드시 여여(如如)하여 움직이지 아니한다는 결론이다. 비록 그렇지만 너는 또 세계를 보아라. 환(幻)이 아니냐.’ ‘예 환입니다.’ ‘몸과 마음도 환이 아니냐.’ ‘예 환입니다.’ ‘삼세(三世) 교주(敎主)와 제방(諸方) 조사(祖師)도 환이 아니냐.’ ‘예 환입니다.’ ‘내가 말하고 네가 듣는 것도 환이 아니냐.’ ‘예 환입니다.’라고 하였다. 선사가 말씀하시기를, ‘내가 들으니, 한산(韓山) 목은자(牧隱者)가 방금 환어(幻語)로써 사람에게 이야기하고 있으니, 네가 가서 청하면 반드시 사양하지 않을 것이라.’ 하므로 감히 청하는 바입니다.”라고 한다.
나는 이르기를, “사(師)의 스승은 양반집 후예로서 고량(膏粱)과 기환(綺紈)으로 그 육신을 기르고, 시서와 예악으로 그 성정을 닦았는데, 초연히 홀로 벗어나 돌아보지 아니하니 진실로 여(如)와 환(幻)의 취미를 얻었다 하겠다. 비록 그러하나 나는 배우지 못했으니, 어찌하랴.” 하고 이에 상인에게서 그 설을 궁구하였다. 상인은 말하기를, “지금의 세계는 기(器)의 세간(世間)이요, 중생은 곧 정(情)의 세간이요, 부처는 곧 정지각(正知覺)의 세간이다. 이 세 가지가 서로 융화하여 막힘이 없는 고로 여여(如如)의 지혜가 항상 홀로 비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계라 하는 것은 모두 환을 쓰고 사는 것이 된다. 여(如)가 아니면 환을 구할 수가 없고 환이 아니면 여(如)를 구할 수 없으니, 어찌 사리(事理)가 혹시라도 서로 빼앗기는 일이 있으랴.” 하므로, 나는 이르기를, “상인은 진실로 원기(園機)의 선비라 하겠다. 내가 그 말을 관찰하니 하나는 여(如)가 바로 환이란 말이요, 또 하나는 장차 여(如)가 환이라는 말이다. 처음에 환(幻)으로 보면 물이 있고 내가 있으니 이는 대(對)가 있는 것이요, 마침내는 여(如)가 장차 환인데 물(物)도 없고 나[我]도 없으니 이는 대가 없는 것이다. 물과 나를 모두 잊어버리고 마음과 자취가 둘이 없다. 이것이 그 지극한 것이다. 다른 날에 환옹이 편안히 앉아 바로 생각하여 만약 그 설에 대한 소득이 있으면 오늘의 말이 옳고 그른 것을 나에게 알려 달라. 나는 마땅히 허심탄회하게 듣겠다.”고 하였다.
여(如)는 또 묻기를, “우리 스승께서 선생이 방금 환어(幻語)로 사람에게 말한다 하였으니, 말의 환이 되는 것을 들려줄 수 있느냐.” 하므로, 나는 말하기를, “성음(聲音)이 나올 적에는 목구멍ㆍ혀ㆍ입술ㆍ가[齒]가 서로 어울려서 소리가 이뤄지는 것이며 그 글을 옮길 적에도 붓ㆍ먹ㆍ종이ㆍ벼루ㆍ물이 서로 어울려서 형체가 이뤄지는 것이다. 하물며 전주(轉注)ㆍ가차(假借)ㆍ형성(形聲)ㆍ사의(事意)의 사이에 그 변하는 것이 사람을 번갈라서 헤어도 자세히 할 틈이 없음에랴. 그러나 나아가서 분석해 보면 소리가 과연 어디에 있다 하랴. 글월이 과연 어디서 왔다 하랴. 이것이 환이 아니고 무엇이랴.” 하였다.
여(如)는 머리를 조아리며 하는 말이. “우리 스승이 참으로 선생을 알았다 하겠다. 우리 스승이 이른바, ‘환이 아니냐.’에 대해서는 선생이 반드시 알 것이니, 여(如)는 배우기를 원하는 바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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