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序)
중순당집 서(中順堂集序)
시도(詩道)가 관계되는 바는 대단히 중하다. 왕화(王化)와 인심이 이에서 나타나게 된다. 세교(世敎)가 쇠하자 시가 변해서 소(騷)가 되었으며, 한 나라 이래에 오ㆍ칠언(五七言)이 시작됨으로써 시의 변이 극도에 달했다. 비록 고시와 율시가 아울러 나열되고, 공하고 졸한 것이 계통이 다르나 또한 각기 그 성정을 도야하여 그 취지에 적응하였으니, 그 사기(詞氣)를 따져보면 세도가 오르내린 것이 손바닥을 보는 것과 같다.
금남(錦南)의 오수(迂?) 나 판서(羅判書)가 현릉(玄陵)의 지우(知遇)를 얻어, 연구(聯句)의 시를 짓고 3품(品)의 관에 오르니, 나라 안의 사대부가 흠모하고 찬송하여 무릇 90편의 시를 지었는데, 군옥부(群玉府)와 같이 찬란하여 눈을 부시게 한다. 오수는 자청하여 사명을 받들고 일본에 가서 물(物)을 만나 회포가 흥기하면 문득 시로 형용한 것이 52편에 달하였고, 일본의 조계선자(曹溪禪者)로부터 증정받은 것이 또 10편이었다. 사가(史家)가 그 원본을 얻어서 등사해 두었고, 대신(臺臣)이 또 보기를 청하고, 부중(府中)의 진신(搢伸)이 다 얻어 보기를 원하여 다투어 구하기를 적이 지금 30년인데도 오히려 그치지 아니한다.
오수(迂?)는 말하기를, “나의 오(迂)는 세상에서 오활하다는 것인데 관이 육조의 상서(尙書)에 이르렀으니, 이것이 과연 오활한 것인가. 시를 몹시 즐기기에 그 시고[酸] 찬[寒] 맛으로 고량(膏粱)만 먹는 자들에게 기롱을 받고 있다. 그러나 역시 오활할 따름이라 어찌 일에 방해야 되겠는가. 이름이 여러 선비들의 시 가운데 실렸으니, 그 유전될 것을 기필할 수 있어서 퍽이나 다행하다. 그러나 흩어져서 하나도 없으므로 나는 장차 연결하여 총록(叢錄)을 만들 작정이었는데, 그렇게 되면 또 유전하기 어려운 것이 염려이기로 목판에 새기어 사람들로 하여금 다 얻어 보게 하여, 금남(錦南)에 오수가 있는 줄을 알게 할 생각이라.” 하고, 이에 나를 찾아와서 서문을 청하였다.
나는 말하기를, “천자가 제후의 나라에서 시를 채집하는 것은 다 옛 제도였다. 다른 날에 이 시집을 모두 상관(上官)에게 보내면 오수의 이름이 더욱 전할 것이고, 일본의 시가 오수로 인하여 중국에 전파하게 될 것이니, 유독 오수의 다행만이 아니라 또한 일본의 다행이기도 하다. 하물며 우리 선왕이 선비를 존중한 거룩한 덕이 안팎에 넘실거리는 마당에 있어, 오수의 이 시집이 또한 한 가지 도움이 될 것이니, 감히 갖추어 써서 편머리에 보태지 아니하랴. 중순당(中順堂)은 오수의 거처하는 집이다. 시는 정리하여 몇 권을 만들었다고 한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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