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序)
증 일구 상인 서(贈一?上人序)
조계승(曹溪僧)에 종해(宗海)란 이가 있다. 그 이름 지은 이유를 물어보니 대개 불가의 설에 근본하였는데 우연히 하서(夏書)의, “바다에 조종(朝宗)한다.”는 문구와 합치되었다. 그러므로 그가 와서 내게 호를 청할 적에도 이 하서의 문구로써 고하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얻게 된 까닭을 들어 말하는데 대개 거울이 물건을 비출 적에, 똑같은 유(類)로써 응해 주며 사정(私情)을 두지 않는 것에서 비유를 취한 것이라 한다.
바다의 물건된 것이 천지간에 있어 같이 견줄 데가 없다. 그러므로 물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자가 땅을 가리키며 말하기를, “이것은 물이 싣고[載] 있는 것이다.” 하였다. 무릇 땅이란 것은 하늘과 짝하여 큰 것이 된다. “그럼에도 물이 싣고 있다.” 한다면 물은 하늘과 비하여 또한 어느 것이 크고 어느 것이 작은지 알 수 없으니, 그 체된 것을 어찌 헤아릴 수 있으랴. 지금 비가 하늘에서 내려 그 물방울이 서로 부딪치면 거품이 생기게 되니 거품은 물로 치면 가장 작은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가장 작은 것으로 가장 큰 것과 짝할 수 있다면 형세가 그러한 것인가? 아니다. 이는 팽조(彭祖 8백 살을 산 고대의 신선)와 상자(?子 어려서 죽은 사람), 붕새와 메추리의 사이처럼 큰 차이가 난다. 그렇다면 바로 그 이치가 그러한 것이다.
바다나 거품이라 하는 것은 이름이 달라졌을 뿐이다. 거품은 그 바다로 돌아가고 바다가 그 거품을 받는 데는 역시 자취가 있느냐 하면 없다. 거품이 사그라들어서 하나가 되어 구분할 수 없게 되면 유독 이치만 한가지일 뿐 아니라 그 물건의 자체도 역시 다르지 않다. 이로써 불자(佛者)의 설명이, “적(跡)과 상(相)을 없애버리면 공(空)으로 돌아가고, 항렬(行列)을 분포하면 바다로 돌아간다.” 하니, 바다가 비록 크지만 체를 떠나지 못하는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말에, “적멸(寂滅)이라, 또는 생사(生死)라.” 한다. 바다가 적멸에 거품되는 것은 이른바 부처요, 생사에 거품되는 것은 곧 이른바 중생이다.
지금 상인(上人)은 장차 어느 지경의 거품이 되려는가 또한 모르겠다. 생사나 적멸이 과연 둘인가 하나인가. 상인은 그 스승에게 얻은 것으로써 이미 마음속에 흡족하게 여긴다면 혹시 맹랑함을 면치 못할 것이니, 마땅히 당세의 큰 선비에게 널리 물으면 반드시 상인에게 알려주는 자 있을 것이다.
상인의 속성(俗姓)은 조(曺)씨니 나주(羅州) 회진현(會津縣) 사람이다. 선(選)에 들어 그 과거에 올라 죽원(竹院)에서 학자를 가르치는데 나이는 31세요, 대선사 총(聰) 남산(南山)의 제자이다. 사람을 논하면 반드시 그가 배운 바를 말하는 것이므로 아울러 언급해 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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