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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序) 농상집요 후서(農桑輯要後序) -이색(李穡)-

천하한량 2007. 4. 30. 20:06

서(序)
 
 
농상집요 후서(農桑輯要後序)
 

고려의 풍속이 졸박하고 인후하지만 치생(治生)하는 데에 능하지 못하여 농사를 짓는 집안은 한결같이 하늘만 쳐다보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므로 물이 불거나 가뭄이 들어도 곧 재해가 되니, 자기 입에 들어가는 것은 아주 절약하여 귀천과 노소를 막론하고, 소채(蔬菜)ㆍ건어(乾魚)ㆍ육포(肉脯) 따위에 지나지 아니할 따름이며, 미곡을 중히 여기고 서직(黍稷)을 경솔히 알며 삼모시는 많고, 면사는 적으므로 사람들이 속도 비고 겉도 충실하지 못하여, 바라보면 마치 병들었다 금방 일어난 사람같은 자가 열에 여덟 아홉이 된다. 초상ㆍ제사에 대해서는 소반(素飯)에 고기를 쓰지 아니하며, 연회에는 소와 말을 잡고 야생(野生)의 동물로써 만족을 취한다.
무릇 사람이 이미 이목구비(耳目口鼻)의 형체가 갖추어진 이상, 성색(聲色)과 취미(臭味)의 욕심이 생기게 마련이다. 가볍고 따뜻한 것은 몸에 편리하고 기름지고, 달콤한 것은 입에 적합하며 여유 있기를 원하고, 결핍되는 것을 싫어하는 것은 오방(五方)의 사람도 그 성품이 똑 같은데, 어찌 유독 고려만이 이와 같이 다르랴. 성하되 사치한 데 이르지 아니하고, 검소하되 누추한 데 이르지 아니하며, 인의(仁義)를 토대로 하여 도수(度數)를 만든 것은 성인이 정해 놓은 제도이며 사람의 일이 아름다워지는 이유이다.
집에서 기르는 다섯 마리 닭과 한 마리 돼지는 사람에게 사육(飼育)만 받으며 아무데도 쓸데없는 것이지만 차마 죽이려 하지 아니하고, 소와 말은 인력을 대신하여 큰 공이 있지만 선뜻 죽이며, 사냥과 놀이의 노고는 혹 사지가 부스러지고 목숨까지 빼앗기게 되는 수도 있지만 용감히 하며, 우리 속에 기른 가축(家畜)을 잡는 데는 용감하지 못하다. 그 경중을 알지 못하고, 의를 해롭히며 법제를 무너뜨려, 그 본심을 상실하는 것이 이와 같으니, 또 어찌 백성의 죄만이랴. 나는 그윽이 슬퍼하는 바이다. 대개 백성의 재산을 제한하고, 왕도(王道)를 일으키는 것이 나의 뜻인데도 마침내 시행하지 못하는 데야 어찌하랴.
봉선대부(奉善大夫) 섬주 지사(陝州知事) 강시(姜蓍)가 나에게 편지를 보내어 이르기를, “《농상집요(農桑輯要)》는 행촌(杏村) 이시중(李侍中)이 그의 외생(外甥) 판사(判事) 우확(禹確)에게 전수하고, 나 강시 또 우확에게서 얻었는데, 무릇 의식(衣食)과 재정을 충족하게 하는 이유와, 곡식을 심고 짐승을 기르는 갖가지 준비를 하는 것에 대하여, 각각 부문별로 모아서 자세히 나누어 분석하고 촛불로 비치듯이 하였으니, 실로 치생(治生)하는 훌륭한 법이다. 내가 장차 여러 고을에 주고 새겨서 널리 전하게 하려 하는데, 그 글자가 크고 권질이 무거워서 먼 곳에 보내기가 어려울 것을 근심하여, 이미 가는 해서로 써서 등출(謄出)하여 두었고, 안렴(按廉) 김공 주(湊)가 또 베 몇 필로 그 비용을 도와주었다.” 하며, 권말에 기록해 주기를 청하였다.
나는 일찍이 이 글을 대개 구경하고 맛을 들였다. 나는 우리 습속을 민망히 여기고 깊이 염려하지 아니한 바 없는데, 조정이 선 지가 하루가 아니면서도 한번도 감행할 것을 건의하지 못하였으니, 이는 나의 허물이다. 그러나 비록 강군의 뜻이 나와 같다는 것을 이에서 알 수 있다. 백성의 재산을 제한하고 왕도를 일으키는 것은 그 일이 또 이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니, 강군도 또한 일찍이 강론이 있었는지 모르겠거니와, 만약 기필코 행하고자 할진대 마땅히 이단을 물리치는 것부터 비롯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아니하면 우리 습속이 변할 길이 없을 것이니, 이 책에 실린 것도 또한 허문(虛文)이 되고 말 것이다. 강군은 더욱 힘쓸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