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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記) 평심당기(平心堂記) -이색(李穡)-

천하한량 2007. 4. 21. 18:37

기(記)
 
 
평심당기(平心堂記)
 

조계(曹溪)의 안상인(安上人)이 나를 황려강(黃驪江) 위로 와 보고 그의 평심당 기문을 구하여 말하기를, “내 스승 환암(幻菴)의 명명한 바이니, 선생은 그 뜻을 부연해 주기 바란다.” 하였다. 나는 유학에 종사한 사람이다. 길 위에서 얻어 들은 축교(竺敎)를 감히 입에 발설할 수 없으니, 우선 배운 바로써 말하리라.
마음이 천지에 있는 것을 명명(明命)이라 하나니 이 명명 만물에 부여한 바가 균일하되 사람이 가장 신령하였다. 그러나 기질이 앞에 거리끼고, 물욕이 뒤에 가려져서 이에 삼품(三品 한퇴지 글에 나왔다)이란 말이 연유한 것이다. 성인이 이를 우려하여 가르침을 세워 인륜을 밝히고, 몸을 검속하여 예(禮)를 회복하게 하니 이에 상하와 사방이 고르게 정제하게 되고, 방정하게 되었다. 이는 우리 유자의 말이다.
대상의 스승이 조(祖)의 뜻을 이야기하기를 좋아함은 나의 사모하는 바이었다. 마음의 체(體)와 용(用)을 정밀하게 분석하였을 것이니, 내 또한 무슨 군소리를 할 것이며, 28대의 달마대사가 처음에 신광(神光)을 얻어 마음을 가지고, 마음을 찾고, 마음을 편히 하는 사이에 전체(全體)와 묘용(妙用)을 남김없이 드러 내어 육조(六祖)에 이르기까지 전하여 사문(沙門 승려)에서 널리 법받게 하였는지라, 내 또한 무슨 군소릴 할 것이며, 영산(靈山)에서 꽃을 가지고 마하가섭(摩訶迦葉)에게 열반묘심(涅槃妙心)을 분부한 것은 서건(西乾 인도의 별칭)과 동진(東震 한국)에 대대로 기록이 끊이지 아니한 종장(宗匠)이 많았으니 내 또한 무슨 군소리를 하리오.
상인(上人)은 범상한 무리가 아니요, 동렬(同列)에 뛰어나 더불어 어깨를 견주고 설 자가 없기 때문에, 선불(選佛)하는 마당을 당하여 등계(登階)의 칭호를 얻었으며, 법을 봄에 고하(高下)가 없고, 도(道)에 들어감에 피차(彼此)가 없다. 그러기에 그 마음이 맑기가 고정(古井)같고, 부드럽기가 대지(大地) 같으며, 혹은 운용(運用)하기를 신룡(神龍)같이 하여 천하에 비를 주니, 마음이란 것을 어찌 가히 쉽게 말하리오. 우리 유가에서 마음을 공평하게 쓰고, 기운을 화열(和悅)로 다스리는 것은 몸을 닦고, 집을 바로잡아 천하를 태평하게 다스리는 데까지 미치려는 것이요, 상인의 뜻은 이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만 가지 덕을 갖추고, 만 가지 행실을 갖추어 삼계(三界)의 마음으로 도사(道師)가 되려는 것이니 이것이 먼 것이냐, 멀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삼계에는 오직 마음이요, 만법(萬法)에는 오직 아는 것뿐이니 어찌 그 평불평(平不平)을 논의하겠는가.
상인은 생각할지어다. 아, 나는 늙었도다. 군소리가 이에 이르렀으나 상인은 마음을 평탄히 하고 자리에 고요히 앉으라. 그 내 말을 옳다 하는가, 그르다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