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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記) 무은암기(無隱菴記) -이색(李穡)-

천하한량 2007. 4. 21. 18:32

기(記)
 
 
무은암기(無隱菴記)
 

천태(天台) 숭산사(嵩山寺)의 장로(長老)는 전의(全義) 이(李)씨의 우수한 인물이다. 벼슬하던 씨족으로서 이를 버리고 불도를 배워 조계(曹溪)에 들어가 사선(四選)을 우두머리로 했으나, 또 이를 버리고 산중에 들어가 직접 불교의 골수를 마음자리에서 탐색하려 했다. 이를 마치기 전에 그 아버지가 강요하여 승선(僧選)에 응시하여, 마침내 천태에 뽑혀 상상품(上上品)에 탁발되어 무량(無量)의 경지에 삼매를 얻었다.
신축년 병화(兵火)에 사찰이 거의 소실되자 대사는 부모를 받들고 병란을 피하여 편안하게 집에 있는 것같이 하니 부모가 크게 기뻐하고, 듣는 자 또한 그 사람됨에 탄복하였다. 불행히 부모가 잇따라 세상을 떠나니, 대사 상구(喪柩)에 매달려 부르며 애통하고, 분묘 곁에 여막을 짓고 3년을 마치니, 이는 비록 우리 유가의 뜻과 행실이 있는 자라도 그에 견줄 자가 드문 것이니, 대사의 지키는 바가 반드시 범인과 다름이 있을 것이다.
천녕현(川寧縣)은 그의 어머니의 집이 있는 곳이다. 산수의 경개와 미곡이 풍요하여 세월을 보내기에 좋으며, 지대가 기구하고 깊어서 송백(松柏)을 씹고 연하(煙霞)로 집을 삼아 세상과 끊어져 더불어 이웃할 수 없는 곳같지는 않으니, 대사가 사는 곳에는 마땅히 조정의 대부와 산림 속의 석학들의 왕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대가 약간 궁벽하고 사람 또한 드물게 이르니 대사의 심정을 가히 알 수 있다. 다행히도 동정(東亭)이 남방을 유람할 제 서로 만나 수창하고는 오직 날로 부족을 느끼었던 것이니 대사가 살던 곳은 곧 무은암이다. 동정이 이미 그 사람을 사랑하고, 또 그 매죽(梅竹)과 수석(水石)의 경개를 즐겨하여 지금까지 회포에서 능히 잊지 못하는지라, 나로 하여금 그 집의 기를 쓰게 하여 그를 사모하는 뜻을 붙이려 한다는 것이다.
나는 말하기를, “집을 이름한 의의는 내 알지 못한다. 홀로 우리 부자(夫子 공자)의 ‘제자들이여, 나는 숨김이 없노라.’ 한 말씀이 있어, 내 평생 이에 힘쓴 바이나 아직 보지 못한 경지인 것이다.” 하였다. 이제 대사는 이단(異端)이니 족히 이를 말할 일이 아니다. 비록 그러나 대사는 평범한 승려가 아니다. 이미 부모에게 효하였고, 이미 군자를 사랑하였으니, 우리 유자(儒者)들이 마땅히 이끌어 당기고 또 당길 것이요, 부당히 이단으로만 배격할 사람이 아니다.
아, 세상의 뻔뻔스런 얼굴로 그의 소행을 딱 잡아떼는 자는 모두 숨기는 유이다. 그러나 대사는 통연(洞然)하게 털끌만치도 그 사이에 거리낌이 없어 무은(無隱)이라 이르니 그 이름을 헛되게 붙이지 않았도다. 내 살펴보건대 암자 가운데 사람이 있어 사람이 이르면 그 폐(肺)와 간(肝)을 보는 것같고, 암자 밖에는 산이 있어 명쾌하고, 물이 있어 청랭(淸冷)하여 이른바 미세한 티끌도 서지 못할 지경이니, 사람과 경지(境地)가 장엄 활달하여 가로는 시방으로 뻗치고, 세로는 삼제(三際)를 다할 것이니, 누가 다시 주인공을 찾겠는가. 나는 병 든지 오래이나 한 번 산수 사이에 놀아 평일의 회포를 쾌히 풀어보려고 한다. 무은암은 혹시 나의 일숙(一宿)을 허용하겠는가. 청하건대 이로써 기문을 삼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