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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記) 거제현 우두산 현암선사 중수기(巨濟縣牛頭山見菴禪寺重修記) -이색(李穡)-

천하한량 2007. 4. 21. 18:30

기(記)
 
 
거제현 우두산 현암선사 중수기(巨濟縣牛頭山見菴禪寺重修記)
 

나옹(懶翁)의 스승은 지공(指空)이었다. 달순(達順)이라 이르는 자가 먼저 법당 아래에 있으면서 계행(戒行)이 긴요하고 고결하여 동렬(同列)이 모두 탄복하였고, 나옹도 또한 기이하게 여겼다. 그런 까닭에 그가 왕사(王師)가 되어 모든 승려의 영수가 되니 존숭하고 영화로움이 비길 데 없었으나 유독 달순대사가 이르면 함께 서로 맞 예를 행하였고, 달순대사가 비록 달아나 피하더라도 나옹은 끝내 감히 스스로 높게 처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때문에 대개 나옹 문하에 있는 자는 모두 달순대사를 존경하고 예를 다하는 것이 모두 마음속에 달순을 즐거워함에서 나온 것이다. 내 스승이 높이 대접하므로 우선 그 뜻을 좇아 존경한다고 하는 것이 아니었다. 달순의 사람됨이 이와 같았다.
그리고 거제 우두산의 현암을 중수하여 그윽한 골짜기를 굉장하게 만들어놓고, 그 공사의 시말을 기록한 바를 적어 신륵사(神勒寺)의 주상인(珠上人)을 나에게 보내어 나의 기문을 구한다. 그 기록을 상고하건대 신라 애장왕(哀莊王) 때에 순응(順應) 이정(理定)이란 중이 있었는데, 일찍이 중국에 들어가서 보지공(寶志公)의 유교(遺敎)가 있기를, “내가 죽은 뒤 3백 년이면 마땅히 동국의 두 중이 올 것이니, 우리 불도가 동으로 가는 것이다.” 했다는 말을 듣고는, 이에 지공의 초상을 알현하고 그 법을 얻어 나무로 노새를 만들어 이내 《화엄경(華嚴經)》을 싣고 돌아왔으니, 이것이 곧 우두산 현암을 짓게 된 유래이다. 산속에 또 원효(元曉)ㆍ의상(義湘)ㆍ자명(慈明)의 3대사의 유적이 있으니, 지금의 도정암(道正菴)ㆍ자명암(慈明菴)이 그것이다.
현암이 이미 폐하게 되자 그 옛 모습을 회복하려는 자가 없었는데, 지정(至正) 경자년에 중 소산(小山)이 풍수학(風水學)이 있어 그 경지를 사랑하고 좋아하여 달순공에게 그 일을 꾀하니, 달순공이 큰 시주(施主) 판사 김신좌(金臣佐) 및 그의 문인 아무 아무와 더불어 즉시 자재를 모으고, 공인(工人)을 갖추어 다섯 해를 지난 갑진년 모월에 낙성을 보게 되니, 장엄한 총림(叢林 사찰과 승도가 많이 모여 있는 곳을 말함)을 이루었다. 다시 사찰 간방(艮方 동쪽) 모퉁이에 나옹의 영당(影堂)을 세워 추모의 정성을 이루게 하니, 이에 사찰의 능사(能事)를 다한 것이다.
달순대사가 흔연히 앉아서 38개의 산봉우리를 대하고는 자랑스럽게 한자리의 손들에게 말하기를, “하늘이 아끼고 땅이 감추었다가 그 사람에게 전함이 이와 같단 말인가. 이 봉우리는 그 이름을 무어라 하고, 저 봉우리는 그 이름을 무어라 한다.” 하며, 38개의 봉우리를 일일이 세면서 날마다 부족해 하니, 달순대사의 산을 사랑함을 가히 벽(癖)을 이루었다고 할 만하다는 것이다. 주상인의 말이 이와 같기에 아울러 밝혀두는 바이다. 기미년 6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