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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記) 보개산 석대암 지장전기(寶盖山石臺菴地藏殿記) -이색(李穡)-

천하한량 2007. 4. 21. 18:29

기(記)
 
 
보개산 석대암 지장전기(寶盖山石臺菴地藏殿記)
 

보개산 석대암의 비구(比丘) 지순(智純)이 나에게 그의 화소(化疏)를 써 주기를 청하였는데 얼마 되지 않아 또 와서 말하기를, “내가 소(疏)를 들고 공경(公卿)간에 다니며 쌀과 베[布]를 얻으면 나의 소용은 충족할 수 있습니다. 나는 이미 늙었는지라, 오히려 하루아침 이슬이 되어버려 역사(役事)의 준공이 끝나는 것을 보지 못할까 두려우나, 나의 뜻은 불가불 뒷사람에 알려야 하겠고, 내 뜻을 이어받도록 하려면 역시 구설(口舌)로만 전할 수 없으니, 감히 선생의 한 말씀을 청하는 바입니다.” 한다. 나는 말하기를, “불교도들이 환화(幻化)를 잘하고 기능이 많기 때문에 그 건축 기공 등은 초개(草芥)를 줍는 것보다도 쉽게 하여 허다한 사찰과 빛나는 영적(靈跡)을 남긴 것을 이루 다 기록할 수 없으니, 보개산의 지장석상(地藏石像)도 또한 그의 하나이다. 지장의 상서로운 감응은 세상이 다같이 아는 바이라, 비록 붓으로 써서 기록하지 않더라도 좋으나, 유독 지순이 이에 잊지 못하고 있기에 그 마음가짐을 아주 없어지게 할 수 없는지라, 이 때문에 그 말을 기록하고, 또 뒤에 지순을 계승할 사람에게 권면하는 바이다.” 하였다.
순의 말은 좋은 말이다. 생사(生死)란 참으로 무상한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은 비록 생존하고 있으나, 명일은 보장하기 어려운 것이다. 사람의 생사란 큰일이라 이를 만한 것이다. □ □□□ 거울에 비치면 숨김이 없기 때문에 불(佛)에 빌고 귀의할 즈음에 어둡고 미혹함을 제거하고, 총명과 지혜를 준 것은 고금을 통하여 이미 징험한 자취가 많다. 이제 지순이 이미 높이 믿고, 그 일을 받들어 왔다. 지장보살이 그 지혜를 더하고 더하지 않는 것은 내가 감히 알지 못하는 바이다. 그러므로 이 뒤에 정성껏 또 부지런히 구하여도 그의 총명과 지혜를 얻고 얻지 못하는 것도 역시 감히 알지 못할 일이다.
비록 그러나 사람의 마음이란 불보살의 마음과 더불어 본래 같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부처에 있어서는 더하지 않고, 중생에 있어서는 줄지 않는다. 지극히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하루아침에 능히 죄를 뉘우치고 불쌍히 여김을 구하여 잠깐 사이에 그 본연의 착한 마음을 발하면, 본심의 전체와 대용(大用)이 완연히 드러나서 일생을 고요히 앉아 전제(全提) 단제(單提)를 얻은 자와 더불어 조금도 다름이 없을 것이니, 어찌 조그마한 총명과 조그마한 지혜에 그칠 뿐이리오.
이미 이로써 지순에게 고하고, 또 그 규모 제도를 물으니, 그는 말하기를, “지장의 석상(石像)은 3척 남짓하고, 석실(石實)의 높이는 6척이며, 깊이는 4척이요, 넓이는 4척이라.” 한다. 이제 지순이 지은 집 북쪽 처마가 석실의 위를 덮어 비가 오면 항상 낙숫물이 석실 북쪽으로 흐르게 한 것은 대개 석상을 비호하게 하기 위함이요, 또 정근(精勤)하는 자를 편하게 하기 위함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