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記)
석서정기(石犀亭記)
광주(光州) 읍됨이 동ㆍ남ㆍ서 3방면은 모두 큰 산으로 되어 있되, 유독 북면만이 평탄히 멀리 트여 있으며, 남산의 계곡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둘이 있는데 물의 근원이 또한 멀다. 이러한 까닭에 합류하게 되면 그 형세가 더 클 것은 가히 알 수 있는 일이다. 매년 한 여름에 장마가 들게 되면 세차게 흐르는 급류가 사납게 쏟아져 나와 가옥을 파괴하고 전답을 깎아 가는 등 백성들의 피해됨이 적지 않았으니, 고을의 장(長)이 된 자가 어찌 크게 우려하지 않으리오.
남산 아래에 분수원(分水院)을 둔 것은 옛 사람이 그 물의 형세를 감쇄(減殺)하기 위한 것이었으나 마침내 나누지 못했던 것이다. 이리하여 두 개의 물이 부딪치는 곳에 돌을 쌓아 성을 만들어, 물결로 하여금 방향을 조금 서쪽으로 돌려 북으로 흐르게 하니, 지세(地勢)가 북으로 내려간지라 물이 천천히 흘러 백성의 피해가 이제야 끊기게 된 것이다.
이에 옛 물길 위에 정자를 짓고 그 한 중간을 거점으로 봇물을 양쪽으로 흐르게 하니, 사면으로 정자를 두른 것이 마치 벽수(璧水)와 같은 체제가 되었다. 정자의 전후에 흙을 모아 작은 섬을 만들어 꽃나무를 심고, 두 군데에 부교(浮橋)를 놓아 출입하게 하고는 그 가운데 앉아 휘파람을 불며 시도 읊으니, 마치 뗏목을 타고 바닷속에 앉아 많은 섬들이 안개와 파도 사이로 출몰하는 것을 보는 것같으니, 참으로 즐거운 일이다. 회골(回?) 설천용(?天用)이 남방을 유람할 적에 그 정자 위에 노닌 바 있었는데 서울로 돌아와서 목사(牧使) 김후(金侯 후는 지방관에 대한 존칭임)의 서신으로써 정자의 이름과 기문을 청해 왔다.
나는 말하기를, “우(禹)가 치수(治水)한 것이 우공(禹貢 《서경(書經)》의 편명임) 한 편에 나타나 있으나, 대개 물의 형세를 따라 인도했고 진(秦) 나라의 효문황(孝文王)이 이빙(李?)을 임용하여 촉(蜀) 땅을 다스리게 하였는데, 이빙이 돌로 물소를 만들어 물의 재해를 진압한 바 있다. 역도원(?道元)이 《수경(水經)》을 편찬함에 있어서는 그 돌물소가 이미 이빙이 만든 옛것이 아니었으나, 뒤에 물의 이해(利害)를 말하는 자는 반드시 이빙을 칭송한다 하니, 이것으로 이빙의 마음쓴 것을 구하여 보면 가히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두공부(杜工部 두보를 두공부라 한다) 가행(歌行)을 지었으니 이르기를,
원기만 항상 조화됨을 볼 수 있다면 / 但見元氣常調和
자연히 파도의 피해는 면하리라 / 自免坡濤恣調?
어찌하면 장사를 얻어 천강을 끌어다가 / 安得壯士堤天堈
다시 수토를 다스려 돌물소를 없앨꼬 / 再平水土犀奔茫
한 것이다. 대개 원기를 조화시키고 수토를 다스리는 것은 이제(二帝 요.순)와 삼황(三王 우ㆍ탕ㆍ문왕 )의 일이었고, 이제ㆍ삼황의 마음의 정치는 후세에 고유(固有)한 바로 일찍이 잠시라도 없지 못할 일이다. 그러나 반드시 괴상하고 정도에 벗어나는 말을 구하여 경제의 요원한 시책으로 삼는다면 두공부의 마음도 또한 엿볼 수 있다 하겠다. 비록 그러하나 공자(孔子)는 일찍이 말하기를, “비록 조그마한 도(道)라 해도 반드시 볼 만한 것이 있다.” 하였거니와, 돌이 물을 진압하는 사실은 지극히 어리석은 사람들이라도 다 같이 아는 바이요, 물소의 형상을 만든 것도 반드시 그 이치가 있을 것이다.
《포박자(抱朴子)》의 글에 이르기를, “물소를 조각하여 어함(魚銜)을 만들어 물에 넣으니 물이 석 자[尺]나 갈라졌다.”는 것을 보면, 물소란 것이 가히 수재(水災)를 물리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명백하다. 하물며 돌은 산의 뼈가 되고 물소는 또 물을 물리치는 것이니, 물을 이것으로 피할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물도 이미 피할 줄 알고 또 아래로 인도하니, 지체 없이 흘러 조금도 어긋남이 없이 날로 비고 넓은 땅으로 향하여 도도히 흘러 바다에 이른 뒤에야 말 것이니, 물의 환란이 어디로 좇아 다시 일며 읍의 주민들이 무엇으로 인하여 불안을 느끼리오. 이 정자를 지은 것을 쓰는 것은 마땅히 폄(貶)하는 예(例)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돌물소로써 그 정자를 이름하고, 두공부의 돌물소의 행위를 취하여 근본으로 삼으며, 또 《포박자》를 증거로 삼아 《춘추(春秋)》의 법으로 단정하여 뒷사람으로 하여금 이 정자를 지음이 수재를 막기 위함이며, 백성의 삶을 편안하게 하기 위함이요, 한갓 놀고 관람함을 위한 것이 아님을 알게 하노라.
이 정자에 오르는 자는 그 이름을 고증하고 뜻을 생각하면, 반드시 수령에게 경의가 일어날 것이다. 수령의 이름은 상(賞)이며, 재부(宰府)의 지인(知印)과 헌사(憲司)의 장령을 역임한 바 있으며, 지방 행정에 있어 청령하고 능력 있는 행정가로 이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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