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記)
청향정기(淸香亭記)
외삼촌 중추(中樞) 치정공(致政公)이 조그만한 못에 연꽃을 심고는 그 곁에 정자를 세우려고 사람을 급히 쫓아 글을 보내어, 그 정자의 이름과 기문을 물어 왔다. 색(穡)이 이제 병든 여가에 오직 용릉(?陵)의 주렴계(周濂溪) 광풍제월(光風霽月)같은 깨끗한 흉금을 사모하게 된지라, 드디어 그의 향기가 멀수록 더욱 맑다는 말을 취하여 대략 그 뜻을 서술하고자 한다.
하늘과 땅이 처음 나누어질 때 가볍고 맑은 것이 위에 있게 되었는데, 인물이 생겨날 때 이 기운을 온전히 타고난 자는 성인이 되고 현인이 되었으며, 그 나라를 다스리는 법에 있어서도 향기 높은 덕으로써 신명(神明)을 감동케 함은 옛 하ㆍ는ㆍ주와 같은 번영이 극한 시대에 찾아보더라도 볼 수 있는 것이다.
용릉이 송 나라의 문명 시대를 당하여 오계(五季 후량ㆍ후당ㆍ후진ㆍ후한ㆍ후주) 시대의 어둡고 막힌 혼란한 정치가 가져온 재앙을 추도(追悼)하여 성인 경전(經傳)의 태극(太極)의 본지를 추리ㆍ해명하여 공맹(孔孟)의 도통(道統)을 이었는데 그의 애완(愛玩)함이 이같이 극진하여 〈애련설(愛蓮說)〉을 지어 밝히는 데 이르고도, 오히려 그의 의사를 다하지 못하여 특히 결론에 이르기를, “연꽃을 사랑하기를 나와 같이 할 자 어떤 사람일는지.” 하였으니, 아득하고 적막한 천 년 전에 후생들에게 주의를 환기시킴이 깊도다.
색이 늘그막에 경전을 추구할 제 날로 그를 경모하더니, 다행히도 외삼촌의 사랑하는 바도 용릉과 같은지라, 내가 기뻐서 날뜀도 평일과 다름이 있는 것이다. 내가 상상하건대 시골의 부형과 빈객이 이르면 술잔을 들어 권하며 연구(聯句)시를 지을 것인데, 갠 날 물결 위의 연꽃과 비오는 언덕 아래의 연꽃, 바람결의 잎새와 안개 속의 꽃봉오리는 마치 그림같으면서 그림이 아니요, 시(詩)가 아니면서 시같은 것이다. 홍안 백발이 그 가운데에서 술 마시고 즐기며 노래하고 춤추니, 이것이 바로 갈천씨(葛天氏)의 백성이며 희황씨(羲皇氏)의 세월이 아니던가. 마음이 편하여 몸을 마음껏 펴고 기운이 강건한 속에 조용한 날을 보내니, 홀로 맑은 연꽃의 향기가 아니라도 외숙의 맑은 덕이 더욱 멀리 전파하여 자손에게 유물이 될 것이다. 후일에 늙음으로써 벼슬을 사양하고 돌아가 이웃집 빈터를 얻어서 집을 지어 정하고 외출하실 때 지팡이와 신발을 신칙하며 모시게 되면, 다시 외숙을 위하여 시를 지으리라. 무오년 동지 전 9일에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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