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記)
송풍헌기(松風軒記)
조계종(曹溪宗) 윤절간(倫絶磵) 대사는 그 거처하는 집을 이름하여 ‘송풍헌’이라 하고 나에게 기문을 청했다. 나는 말하기를, “솔의 본연의 성질이 사시를 관철하고 천 년을 지나도 그 가지나 잎이 변치 않는 것은 반드시 그런 까닭이 있을 것이요, 바람이란 팔방으로부터 일어나 만물을 흔들어 움직이되 그 형적이 없음도 또한 반드시 까닭이 있을 것이다.
징험해 본다면 천암만학(千巖萬壑) 속에 한번 깊숙이 자리잡고 앉으면, 좌우에 보고 듣는 것이 묶인 듯이 고요하여 모든 번뇌가 함께 다 흩어지고 풀릴 것이니 절간은 무엇을 하느냐. 눈으로 볼 뿐이요, 귀로 들을 뿐일 것이니, 들으면 마음에 움직임이 있을 것이며 보면 마음에 움직임이 있는 것인가. 반드시 그 보고 듣는 데서 오는 모든 것을 잊어서 그 마음을 손실되게 하지 않는 것이 있을 것이다. 저 창연(蒼然)한 기운과 빛이 여러 식물과 다르고, 맑고 온화함이 모든 성음과 다를지라도 일상 생활 속에 청정(淸淨)을 누리고 씀에 있어 또한 무엇이 족히 도움이 되리오. 그런데 절간은 바야흐로 그 처소에 편액을 달고, 또 사람들에게 불리기를, “나는 송풍헌의 한 한가로운 도인(道人)이다.” 하고 불씨(佛氏)이거나 아니거나 간에 사람들이 또한 이에 따라 일컫기를, “송풍헌은 윤절간이 사는 곳이다.” 한다면 이 또한 쓸데없는 말 중에 또 쓸데없는 말이 아니겠는가. 비록 그러나 극히 높이 위로 솟아 있는 것을 사람들이 가리켜 하늘이라 하고, 광막하게 아래로 펼쳐져 있는 것을 사람들이 가리켜 땅이라 이른다. 그 속에 몸을 두어 동작하고 집을 두어 출입하면서 편액한 바도 없고 표기한 바도 없다면, 새나 짐승과 더불어 서로 떼지어 사는 데 가깝지 않겠는가.
대사를 찾아 도(道)를 묻는 자가 끊이지 않아 대사의 이름을 아는 자면 반드시 짚신 신고 절벽에 올라 길의 험준함을 피하지 않고, 모두 말하기를, “내 장차 송풍헌을 찾으리라.” 할 것이니, 의혹의 그물을 걷어 치우고 진관(眞關)을 열어 시원하게 솔바람을 마음과 몸 사이에 헤쳐 불어준다면, 오랫동안 쌓인 어둠과 막힘이 장차 한 점의 남음도 없게 될 것이니, 그 타인에게 미치는 혜택을 어찌 다시 말하랴. 내 병석에 누운 지 오래이다. 다행히 대사를 얻었으니 □□□□ 비록 의혹 불명하다 할지라도 어찌 소득이 없으리오. 그러므로 비록 내게 청하지 않았더라도 장차 글을 주려고 했거늘 하물며 먼저 청함에랴. 그러므로 누추하고 졸렬함을 무릅쓰고 송풍헌기를 짓는다.” 하였다. 또 고하기를, “송풍헌은 온 땅에 다 있는 것이다. 비록 천 만리 밖에 있더라도 내게 한 가닥 맑고 시원한 바람을 보내주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나의 번뇌에 싸인 두뇌를 어느 날에 씻어 식히겠는가. 잊지 말기를 바라고 이것으로 기를 삼노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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