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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記) 지평현 미지산 윤필암기(砥平縣彌智山潤筆菴記) -이색(李穡)-

천하한량 2007. 4. 21. 18:20

기(記) 
 
 
지평현 미지산 윤필암기(砥平縣彌智山潤筆菴記)
 

한산자(韓山子 이색 자신을 말함)는 이미 보제(普濟)스님의 명을 쓰고 그 제자에게 말하기를, “보제스님은 우리 선왕(先王)이 스승으로 삼았던 분이다. 도가 높고 덕이 높음에 온 나라 사람들 가운데 누가 공경하지 않을 사람이 있으며, 그 바람이 불어가는 아래 나아가 서론(緖論)을 들음으로써 일생의 다행으로 여기지 아니함이 있으리오. 그런데 홀로 나만이 문안드리는 데 게을러 비록 죽원(竹院 둘레에 대를 많이 심은 집)의 승어(僧語)라 하더라도 일찍 한번 귀에 미친 적이 없었고, 보제스님이 대궐에 출입하고 공부를 간택(揀擇)할 때에도 감히 경솔하게 내가 지키던 것을 바꾸어 나아가 보지 못함은, 다름이 아니라 대체로, ‘도가 같지 아니하면 서로 꾀할 수 없다.’는 공자의 말씀이 있기 때문입니다. 스님이 돌아가심에 사리가 나오는 이적(異蹟)이 있어 스님의 도가 세상에서 더욱 믿어지게 되어, 온 나라 안 사람들이 달려가 절하되 못 미칠까 걱정을 하였는데, 내 또 병을 앓아 그 사이 뜻을 드리지 못함이 오래요, 또 임금의 전갈이 있어 그분의 명(銘)을 지으라고 하므로, 감히 하교를 받들지 아니하지 못하겠다. 다만 보제스님에게 내 글이 합당할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 세상에 큰 선비로 글 잘 쓰는 사람이 적지 아니함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명을 받자오니 어찌 도연(徒然 되는 대로 또는 그것뿐)한 것이겠습니까. 일찍이 스스로 다행으로 여기고 또 슬퍼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하였다
얼마 안 되어 문인들이 나에게 예물을 가지고 와 윤필(潤筆 시ㆍ서ㆍ화를 써준 대가로 받는 예물)이라고 하였다. 내가 이것을 돌려보내면서 말하기를, “스님은 선왕의 스승이요, 나는 성왕의 신하입니다. 선왕의 신하로서 선왕의 스승의 명을 지었으니 이같은 예는 부당합니다. 선왕으로 하여금 병이 없이 오늘날까지 살아 계시게 하여, 친히 예물을 내려주시더라도 내가 의당 받지 아니하였을 터인데, 하물며 이제 선왕의 하늘에 계시는 영(靈)이 위에서 보고 계시니, 어찌 재물에 탐을 내어 스스로 재화 탐내는 데로 들어가겠습니까. 스님의 제자가 꼭 스승의 은혜를 갚고자 하는 자 옛 절의 황폐함을 수리하여 한편으로는 국가를 돕고 한편으로 신자들을 편안히 있게 하며, 비록 내 붓을 빛나게 하지 않더라도 그 보제스님의 여파(餘波)를 윤택하게 함으로써 물건에 미쳐감이 더욱 한이 없을 것입니다. 이것이 부처의 뜻과 선왕의 뜻을 지켜서 뛰어다닌 이유이오, 저 정안군(定安君)의 부인 임씨(任氏)는 이제 비구니가 되었고 이름을 묘덕(妙德)이라 하였는데, 덕이 재물을 희사하여 미지산에 이 암자가 있게 되었으니 이것이 나 한산자(韓山子)가 이 기를 쓰게 된 이유이다.
뒤에 이 암자에 와 있는 자는 오직 보제의 사리로써 그 몸의 사리로 함이 옳겠다. 우리 유교에, “순(舜)은 어떤 사람이며 나는 어떤 사람인가. 함이 있는 자 또한 이와 같다.”는 말이 있는데 그 좌우명으로 삼아주기 바란다. 시주한 사람의 성명을 빠짐없이 뒤에 기록하였다. 무오년 가을 8월에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