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記)
송월헌기(松月軒記)
전(前) 임관사(林觀寺) 주지(住持) 옥전선사(玉田禪師) 가 내 좌주(座主) 구양현(歐陽玄)선생이 쓰신 ‘송월헌(松月軒)’ 세 자를 가지고 와 나에게 헌기(軒記)를 써달라 하면서 말하기를, “원 나라 태정(泰定) 연간에 서천 지공선사(西天指空禪師)가 동국(東國)에 오셨는데, 내 일찍이 인연이 있어 한번 뵙고 기뻐하여 마침내 그를 따르기로 하여 머리를 깎고 계(戒)를 받았습니다. 우리들이 한데 뭉쳐 있어 비록 약속하기를 마치 예가(禮家)와 같이 하였으나 산수간에서 유유히 지내면서 스스로 만족하게 여김이 더욱 좋은 것이었습니다.
천력(天曆) 초년에 우리 스승께서 황제의 뜻을 받잡고 서울로 돌아갈 때, 저도 따라서 서쪽으로 원 나라 서울로 갔는데 천하의 장관이란 장관은 모두 거기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수레에서 일어나는 먼지와 말 발굽에서 일어나는 소리가 요란하였고 땀이 비오듯 하여 스스로 즐거움이 없었습니다. 이러므로 명산과 승지(勝地)에 가서 유람하는 것이 거의 빠지는 해가 없었습니다. 다만 파촉(巴蜀)에 갔던 행적은 위공(危公 위태박(危太朴))께서 벌써 서(序)를 써주시겠다 하였으나 아직 결과를 보지 못하였습니다. 비록 그러나 저의 소회를 남들이 혹 알지 못하지나 않을까 하여, 제 헌(軒)의 이름을 송월(松月)이라 하였습니다.
처음 제가 고향에 있을 때 낙락장송의 그늘과 밝은 달밤에 거닐면서 이목(耳目)을 깨끗이 하고 심신을 상쾌하게 하며, 속된 생각을 문득 비게 하여 보기에는 경(境)같으나 경(境) 아닌 소이가 되는 것을 일찍이 잠시라도 마음에서 잊어버리지 아니한 까닭으로, 배를 양자강과 회수(淮水)에 띄울 적이나 말을 연(燕) 지방이나 대(代) 지방으로 달릴 적에, 가는 곳마다 모두 송월(松月)의 마루[軒]라 하였고 싫증이 나서 본국으로 돌아와 본국 동자(童子) 때에 보던 송월은 대체로 변함 없이 그대로 있으나 제 몸은 이미 늙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자네에게 부탁하여 죽은 뒤의 일을 도모하는 까닭입니다.” 하였다.
내 본래부터 옥전스님이 오래도록 스님이 된 도가 대체로 높아서 속되지 아니함을 알고 있다. 스님은 일생토록 명공(名公)ㆍ아사(雅士 조촐한 선비)와 더불어 놀기를 기뻐하여, 그 예모(禮貌)를 다 얻었고 또 서화를 정미롭게 잘 감정하여 고금을 두루 다하였다.
한림승지 구양원공(歐陽原功)과 집현학사 게만석(揭曼碩)과 국자 좨주 왕사로(王師魯), 중서 참정(中書參政) 위태박(危太朴)과 집현 대제 조중목(趙中穆)과 도가(道家)의 오 종사(吳宗師)같은 이들도 모두 그를 위하여 제ㆍ찬ㆍ서ㆍ인을 써주었고, 집현 대제 조중목과 진인(眞人) 장언보(張彦輔), 오흥(吳興)의 당자화(唐子華)도 송월헌(松月軒)을 위하여 전신(傳神)을 하였나 이제 잃었으니 아깝구나.
스님의 행실이 진실로 남에게 신의가 흡족하지 아니하면 저 여러분이 같이 놀기를 달게 여겼겠으며, 시문(詩文)에 드러내어 구차히 찬미하였겠는가? 이로 말미암아 보건대 소나무가 산에 있는 것과 달이 하늘에 있는 것도 오히려 성색(聲色)을 말할 수 있고, 스님은 송월의 사이에 있어도 이미 성색이 더럽힐 수 없었는데, 하물며 소나무가 창연(蒼然)하지 아니하고 달이 형연(炯然)하지 아니하되, 마음을 꿴 것은 곧 불서(佛書)에 말한 청정법신(淸?法身) 그것뿐이니, 어찌 산에 있는 소나무와 하늘에 있는 달을 가지고 우리 스님을 말하랴.
스님의 이름은 달온(達?)이요, 옥전(玉田)은 그의 호이다. 속성(俗姓)은 조씨(曺氏)요 창녕 사람이다. 금상 전하의 원종공신으로 정승을 지내는 분이 있는데 스님은 그의 막내 동생이다.
[주D-001]옥전선사(玉田禪寺) : 옥전(玉田)은 중 조달온(曺達?).
[주D-002]좌주(座主) : 고려 때 감시(監試)에 급제한 사람이 시관(試官)을 부르는 경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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