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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記) 순창 객관 신루기(淳昌客館新樓記) -이색(李穡)-

천하한량 2007. 4. 21. 18:17

기(記)
 
 
순창 객관 신루기(淳昌客館新樓記)
 

누(樓)라면 누기(樓記)가 있어야 함은 더할 나위도 없다. 짓고 그 공명을 나타내서 그 뜻을 통하게 하는 것이니, 이것을 버리고 억지로 말하는 것은 또한 어렵지 아니한가.
순창 자사(刺史) 남후(南侯 벼슬사는 이의 존칭)가 고을을 다스릴 때, 이미 여가가 있어서 새로 객관(客館) 뒤쪽에 누를 짓고, 강호문(康好文)이 남후의 청탁하는 말이라 하여 누기를 써주기를 매우 열심히 하였다. 그러나 누의 규모와 지세가 공역이 얼마나 들고 날짜가 얼마 걸린다는 것은 나에게 일러주지 아니하였고, 또 무슨 명의(名義)로 글을 써달라고 한 일도 없었다. 그 뜻은 가만히 살펴보니 바로 뒷사람들로 하여금 이 누가 남후에게서 처음 일어난 것을 알리게 할 뿐이요, 다른 것은 급한 것이 아니었다.
순창에는 옛날부터 군관(郡館)이 있어 여기에서 손님을 접대하여 온 것이 몇 백 년이 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남후 때에 와서 이 누가 비로소 있게 되었다. 남후는 자기보다 앞 세대에서 의거할 만한 것이 없었으므로, 자기 때에 와서 홀로 단안을 내리어 몇 백 년 동안 없었던 명승을 가지게 되었다. 높은 곳을 의지하여 먼 곳을 바라보니 우뚝 솟은 것이 한 고을의 장관이니, 그 백성을 즐겁게 함으로써 오는 손님에게까지 미쳐가게 하니 그 어찌 우연한 일이라 하겠는가.
내가 또 생각할 때 그 휘비조혁(輝飛鳥革)의 높은 것이 모두 옛날 초목이 우거졌던 곳인데, 그 아름다운 것을 이루고 온전함을 즐기게 하는 것은 남후의 공이다. 천년 뒤에 바람치고 비가 스며들어 누각이 피폐하여지고 다만 빈터 자취만 남아 있게 되면, 슬픈 감정을 일으켜 길이 탄식할 자 과연 몇 사람이며, 서로 이어서 여기에 백성이 되고 여기에 아전이 되어 능히 남후의 마음을 본받아 무너지면 고치고, 헐게 되면 지붕을 이어 빈터 자취만이 남아 있는 데 이르러 가지 않게 할 자가 또한 몇 사람이 될는지 알지 못하겠다.
대체로 그 성공을 누리는 자는 반드시 그 처음을 생각하는 것이니, 남의 뒷사람이 되어 이 누에 오르는 자는 반드시 남후가 지은 것이라고 말할 것이요, 따라서 백성의 성주가 된 이름을 의논하게 되면 어찌 이것으로 말미암아 더욱 오래 전하여지지 않는다고 하리오.
남후의 이름은 징(徵)이요, 정사에 재주가 있어 온화하고 예절을 지켰다. 우리 집과 서로 가교(家交)를 통한 까닭으로 어렵다고 사양하지 아니하고 억지로 이 글을 지었다.


[주D-001]휘비조혁(輝飛鳥革) : 새가 날개를 편 것같고 꿩이 나는 것같이 궁실이 아름답고 훌륭한 것을 말한다. 《詩經 小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