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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記) 영모정기(永慕亭記) -이색(李穡)-

천하한량 2007. 4. 21. 18:15

기(記)
 
 
영모정기(永慕亭記)
 

청주도(淸州道)의 추동(楸洞)에 곽씨(郭氏)의 논밭이 있었다. 곽씨로 인해 그 논밭 가운데 집을 짓고 농사를 지어서 손님 접대와 결혼 비용, 장사 비용과 제사지내는 비용에 충당하여 왔다. 아침저녁거리가 겨우되면 그에 만족하고 남기를 바라지 않았다. 조정에 나아가 벼슬하면 혹 농사를 폐하여 밭이 묵더라도 다시 돌아볼 것같지 않았다. 그러다가 벼슬을 그만두게 되면 또 처자를 이끌고 돌아가 농사를 지으면서 글 읽고 시를 읊었다. 나무꾼과 농사짓는 늙은이와 서로 재미나게 말하고 웃고 하기를 즐기고, 세력과 권리에 대해서는 아주 잊어버린 것같이 막연하였다.
곽씨의 할아버지 장원공(壯元公)은 지원 연간(至元年間)의 사람으로 충직하고 문장을 잘하였다. 원(元) 나라 세조황제(世祖皇帝)가 천하를 통일하였는데 일본만이 유달리 조정에 오지 아니하였다. 황제는 이에 이르기를, “먼 나라가 천자를 그리워하게 하려면 덕(德)으로써 해야 하는데, 그 방법은 불러다 위로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 고려에 명하여 똑똑한 사람을 일본으로 보내도록 하여 짐(朕)의 뜻을 분명히 가르쳐주도록 하라.” 하니, 이때에 고려의 임금과 신하들이 굴러 떨어질 듯[隕越] 세조의 명을 받들어 조심하여 일본에 사신으로 갈 만한 사람을 선택하였는데 서장(書狀 외국에 보내는 사신에 따라 보내는 임시 변술)으로 따라갈 만한 자가 없었다. 모두들 꾀를 부려 가기를 피하거늘, 홀로 장원공(壯元公)만이 가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어떤 사람이 이 말을 재상(宰相)에게 이야기하자, 재상은 대단히 기뻐서 조정으로 달려 들어가 임금에게 고하였다. 장원공이 가도록 명이 나자 장인 최알(崔謁)이 재상을 찾아보고 잘 살펴서 다시 아뢰라고 말하려 하였다. 이때 장원공은 분연히 말하기를, “사람이 한번 죽는 것은 마찬가지다. 나라를 위해 죽는 것이 처자의 손에서 죽는 것보다 오히려 낫지 아니하겠느냐.” 하고 나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였으므로, 임금과 신하가 모두 슬피 여기고 관직과 땅을 주었는데 지금의 추동이 바로 그것이다. 장추(長楸)란 말이 《이소경(離騷經)》에 나왔는데 해석하는 사람의 말을 든다면 교목(喬木)이란 말과 같은 것으로 고국(故國)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 아들 정랑군(正郞君)이 일생토록 슬퍼하여 벼슬하기를 즐기지 않았다. 나이 70이 넘어서도 사모함이 더욱 깊어가기만 했다. 그 손자 통헌공(通憲公)이 정자(亭子)를 골짜기 가운데 짓고 물을 끌어다 못을 만들어 연꽃을 심으니, 그 뜻을 기르는 바에 있어서 무엇이든지 하지 아니함이 없었다. 정랑공(正郞公)은 일찍이 아들에게 말하기를,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니 내 슬픔이야 어찌 말로써 다하랴. 네 다행히 벼슬하여 출세하였으니 내 기쁨을 알 수 있을 것이요, 내가 병 없이 건강하고 너 또한 내 곁에 있으니 내 결코 너를 못 따를 것이다. 글을 이 세대에서 잘 쓰는 사람에게 청하여 내가 동쪽을 바라보는 뜻을 써서 자손에게 보여주어라.” 하였다. 이렇게 되어 정자의 이름을 ‘영모정(永慕亭)’이라 하였다.
대체로 아침에 사모한다 하더라도 저녁에 잊어버린다면 길이 사모함이 아니요 아들 때엔 사모한다 하더라도 손자 때에 잊어버린다면 길이 사모함이 아닐 것이다. 아침저녁을 한 시각같이 하고 아들과 손자가 한 몸처럼 하여야만 그 사모함이 길다 아니하겠는가.
통헌공(通憲公)은 나에게 명모 정기를 써달라고 한 지 오래되었다. 통헌공은 나이 나와 동갑이다. 의분에 복받치는 뜻을 가지고 있어 법사(法司)에 있을 때는 법을 그대로 집행할 뿐 강한 자를 두려워하지 아니하였고, 언관(言官)에 있을 때는 과감하게 말할 뿐 일을 피하지 아니하였다. 이러므로 행성(行省) 의 금법(禁法)을 둠에 기강이 더욱 떨치고 바다 섬에 귀양살아도 이름이 더욱 퍼졌다. 죄를 다스리면 엄하고 밝게 할 뿐 가혹하게 살피는 데 힘쓰지 아니하고, 수령이 되면 백성을 사랑으로 기를 뿐이므로 그 공평하고 부지런함을 칭찬받았으니, 장원공의 충직과 정랑공의 효도를 대체로 겸하였다 할 것이다. 그 몸이 영화스럽고 현달함에 이르고 사림(士林)에 으뜸가게 됨이 마땅한 것이요, 그리고 조정에 섬에 일찍이 해를 마치도록 평안함이 없었고, 추동(楸洞)에 살면서 일찍이 해를 거르는 일이 없었다.
삼괴 왕씨(三槐王氏)는 덕을 몸에 닦고 하늘에 갚음을 구하여 좌계(左契)를 지닌 것과 같이 손 닿는 대로 마주 붙어 복을 받았는데, 장원공의 충의(忠義)를 갚음이 이와 같음은 무슨 까닭인가.
하늘이 착한 사람에게 갚아줄 때 이름으로써 하기도 하고, 지위로써 하기도 하며 덕으로써 하기도 하는데, 그 소치는 마찬가지다. 덕이 있으되 이름이 들리지 아니하고, 이름이 있으되 지위와 맞지 아니하는 것은 군자가 근심하지 않으나, 덕이 그 지위에 맞지 아니하고 이름이 어쩌다가 그 점에 지나가는 것은 군자가 크게 두려워하는 것이다.
오늘날 통헌공의 덕의 이름은 하늘이 장원공에게 갚은 소이가 되는 것이요, 그 지위같은 것도 비록 현달하였다 하지만 선비의 공론이니 오히려 부족한 듯 불만스런 소망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나이 갓 60이라 쓰일는지의 여부를 아직 미리 알 수는 없으니 하늘이 갚아주기를 지위로써 할는지 안 할는지도 다 오늘에 결정할 것이 못 된다.
하늘이 앞으로 크게 갚아주려 하여 늦음인가. 왜 마땅히 갚아야 할 사람에게 아직도 갚지 않는가. 하늘이 정할 것을 정하지 않는 지 오래되었는데 내 앞으로 곽씨(郭氏)를 두고 보리라. 철원(鐵原) 최씨를 경험삼아 보건대 80에도 아들을 낳아 지금은 그 자손이 대단히 많다. 곽씨는 뒤를 이을 자손이 없음을 근심 말라. 하늘이 반드시 곽씨에게 후하게 갚으리라. 곽씨가 후손이 없을 것은 하늘이 과연 기필할 수 없을 것이요, 영모정이 폐허가 될 것은 과연 하늘이 기필할 수 없을 것이다. 하늘로 하여금 기필할 수 있게 한다면 곽씨는 무엇을 근심하겠는가. 자손으로 갚아주어 영모정이 길이길이 전할 것이다.


[주D-001]장추(長楸)란 …… 나왔는데 : 〈이소경〉은 초 나라 굴원(屈原)이 지은 글. 《초사(楚辭)》의 하나이다. 그러나 이 글은 《초사》 구장곤영(九章袞?)에 나온 글로서 저자 이색(李穡)이 잘못 기억하고 쓴 것으로, 이소경이라 하지 말고 〈구장(九章)〉이라 하든가 또는 《초사》라 함이 옳겠다.
[주D-002]내가 …… 뜻 : 아버지가 일본에서 돌아간 것을 사모함이다.
[주D-003]행성(行省) : 원대(元代)에 중서성(中書省)을 정부로 하고, 각 호에 행중서(行中書)를 두어 행성이라 하였다. 명ㆍ청은 이에 따라 지방 구역의 이름으로 하고, 약하여 성이라 하였다. 우리 나라의 구청(區廳)과 같은 것이다.
[주D-004]삼괴 왕씨(三槐王氏) : 송 나라의 왕우(王祐)가 세 그루의 홰나무를 뜰에 심고, 자손에 삼공(三公)의 지위에 오르는 사람이 날 것을 예언하였다. 과연 그 아들 단(旦)이 재상이 되었으므로, 그 자손이 삼괴당(三槐堂)을 지었다.
[주D-005]좌계(左契) : 계약을 두 장으로 쪼개어 하나는 좌계(左契)로 하고 하나는 우계로 하였다가, 나중에 마주 붙여보아 증거로 하는 것. 좌계는 채무자가 소유하고 우계는 채권자가 소유한다. 전(轉)하여 약속의 증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