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記)
도은재기(陶隱齋記)
옛 사람으로 조정에서 숨었던 사람은 《시경》에 나오는 영관(伶官 음악을 맡아보던 관리)과 한(漢) 나라 때의 골계(滑稽) 그것이고, 저자에 숨었던 사람은 연(燕) 나라의 도구(屠狗)와 매복(賣卜)하는 사람이 그것이고, 진(晉) 나라 때 숲에 숨었던 사람은 죽림 칠현(竹林七賢)이요, 송 나라 말년에 고기잡이에 숨었던 사람은 거계(?溪)의 은자이다.
이 밖에도 은자라고 스스로 부른 사람으로는 당(唐) 나라 때의 이씨(李氏), 나씨(羅氏)이다. 우리 삼한(三韓) 시대는 사람들의 마음씨가 너그럽고 학문이 깊어 예로부터 선비가 많다고 일러 왔다. 높은 풍도와 뛰어난 재주가 어느 세대에도 다함이 없어 은자로서 자기를 부르는 사람이 적었다. 세상에 나아가서 벼슬을 사는 것이 그 뜻이기 때문에 은자로 자처함을 부끄럽게 여김인가. 숨어 있는 것이 그 떳떳한 일이기 때문에 스스로 은자로서 드러내지 아니함인가.
어찌하여 틀림이 없음이 이같았는가. 근세에 계림(鷄林) 최졸당(崔拙堂)은 자호하기를 ‘농은(農隱)’이라 하였고, 성산(星山) 이시중(李侍中)은 자호하기를 ‘초은(?隱)’이라 하였으며, 담양(潭陽) 전정당(田政堂)은 자호하기를 ‘야은(野隱)’이라 하였고, 나는 목(牧)에 숨었다 하여 ‘목은’이라 호하였다.
이제 또 시중(侍中) 벼슬에 있는 일가 조카인 자안씨(子安氏 이숭인〈李崇仁〉의 자〈字〉)를 얻었으니, 아마 질그릇을 구우면서 숨은 것같다. 질그릇을 굽는 것은 순의 덕이 요에게 들린 것이요, 주(周)나라가 일어나려 할 때 이것으로써 근거지로 삼은 것이니 역사책에 실려 있어 볼 수 있다.
자안씨(子安氏)는 나이 16에 시부(詩賦)로써 임인년 과거에 합격하였으니, 문장을 쓰는 솜씨가 노성(老成)하였으나 아직 나이 어린 까닭으로 그렇게 사람들이 두려워하지 않았다. 얼마 아니 가서 학문과 문장이 날마다 발전하며 조금도 그치지 아니하므로 못과 같이 깊었고 별과 같이 빛났다. 주공ㆍ공자와 같은 사상과 감정이 한몸에 갖추어져 어느 때 어디에서도 나타났으므로 엊그제 늙었노라고 자부하던 사람들이 자안씨에게 와서 그 배운 학문을 바로 함께 구하기를 즐겨 하였다.
자안씨는 문채의 폐단이 주 나라 말기와 꼭 같은 것을 알고 도부도혈(陶復陶穴)하던 곳을 구하여 탄식해 말하기를, “공자는 주 나라가 하(夏)ㆍ는(殷) 2대로 거울삼았으니, 빛나도다 문채여.” 하였는데 그 누가 처음부터 이같이 빛날 줄 알았으랴. 먼 옛날의 소박한 풍속은 멀어져 따라갈 수 없구나. 오늘날 제도에 있어서 오래고 질박한 것을 숭상함이 심한 것은 질그릇만이 그러하도다. 띠풀 지붕과 흙담으로 지은 집이 변하여 옥으로 장식하였고, 흙을 잔으로 삼고, 술을 손으로 움켜 마시던 것이 변하여 옥으로 만든 잔과 상아로 만든 저를 쓰는 법이 일어났지만, 질그릇을 쓰는 법은 변하였다는 것을 아직 듣지 못하였다. 비록 변했다 하더라도 그 질박함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동작대(銅雀臺)의 기와일 뿐이다.
세상 천하에서 가장 큰 것은 하늘이요, 지극히 높은 것은 황제이니 황제로써 하늘을 섬기는 것은 세상에서 큰일이다. 그런데 세상의 물건이 모두 갖추어져 지극히 성대한데도 그 그릇만큼은 질그릇을 쓸 뿐이니 예법을 처음 만든 사람이 어찌 헛되이 제정했겠는가. 반드시 본받아야 할 것이 있음에서이니 다시 말하면 질박을 취했을 뿐이다. 질박한 것의 도는 천하의 큰 근본이라, 예(禮)의 3천 3백 가지의 아름답고 크다 함도 말하자면 이 질박함에서 나온 것이다. 자안씨는 인(仁)을 숭상함을 그의 이름으로 하였기에 한 가지 일이라도 인 아님이 없었고, 그는 그 인 가운데에서 편안히 여겼고 또 질그릇으로써 거처하는 집을 이름하니, 참으로 그 예의 근본으로 돌아감이로다. 천하가 그의 인을 허여할 것이 분명하니 이것은 현달함이요 숨은 것이 아니다.
《주역》에, “천지가 폐색하니 현명한 사람이 숨는다.”는 말이 있지만, 오늘날은 밝은 임금과 어진 신하가 서로 만나 옳은 일은 옳다 하고 그른 일은 그르다고 하여 정치를 잘하여 가니, 고기가 시냇물에서 헤엄치고 새가 구름 속에서 나는 격이다. 벼슬과 봉록을 두루 내려주고 소금을 판매한 이익까지라도 백성에게 돌려 보내므로, 만족했던 사람들이 모두 산림(山林)의 수재(秀才)들이다.
그렇지만 나는 늙어서 괜찮지마는 자안씨는 탁연히 일어나 힘차게 나가야 할 때임에도 불구하고, 숨는 것으로써 스스로 이름하여 ‘도은(陶隱)’이라고 함이 옳겠는가 한다.
나와 자안씨는 다 같이 남양공(南陽公)의 문인이요, 성균관의 동료로서 상종하였다. 또 오랜 친구로서 묻고 따지고 하는 처지이니 자안씨는 더욱 학문에 힘쓰기를 바란다.
[주D-001]골계(滑稽) : 지식이 많고 말을 민첩하게 하며, 사람들에게 옳고 그른 판단을 잘못하도록 휘두르는 것을 말한다.
[주D-002]거계(?溪) : 남쪽 기슭을 말하는데, 낚시터가 좋아서 은자가 숨어 살았다.
[주D-003]도부도혈(陶復陶穴) : 주 나라의 선조 고공단보가 땅굴을 옹기 굽는 가마솥처럼 파고 살았다는 고사에 기인한 말이다. 이숭인도 영화를 버리고 원시적인 생활로 돌아갔다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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