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記)
곡주 공관 신루기(谷州公館新樓記)
곡산(谷山)이란 고을은 황해도에서 궁벽한 곳이다. 동쪽은 교주(交州)에 접하고 북쪽은 평양과 경계하였다. 산 높고 물 맑아 한 구역의 펀펀하고 넓은 곳이 주(州)의 소재지다.
주 공관(公館)은 북쪽에 가까운데 여염집이 빙 둘러 있어 손이 오더라도 올라가 볼 만한 것이 없기 때문에 우물 속에 들어앉은 것처럼 갑갑했다. 지주(知州) 윤상발(尹尙發)이 공관이 낡은 것을 슬프게 여겨, 나무를 찍고 풀을 베어낸 다음 작은 정자를 세웠다. 윤 지주는 임기가 끝나서 가고 김 지주(金知州)가 뒤를 이어 왔는데, 또 말하기를, “윤공이 할 수 없어 못한 것이 아니라 나를 기다린 것이다.” 하고는 아전들과 같이 땅을 더 넓히고 산에서 재목을 가져오고 들에서 기와를 굽고 하여 두 달 만에 건축 공사를 끝내었다.
이때에 그의 손님 체통문시위(?通門侍衛) 호군(護軍) 서윤명(徐允明)을 보내어 신루기(新樓記)를 지어달라고 했었는데 내가 기를 지어 말한다.
“우리 나라 국도는 동ㆍ서ㆍ남 3면이 대해(大海)를 향하고 북은 장백산에 연달아 있으므로, 바다 부근의 주현(州縣)에는 누대가 서로 빛나고 빈객이 서로 바라보일 정도로 자주 왕래하여 유람객의 가무(歌舞)와 춘ㆍ하ㆍ추ㆍ동 네 철에 음악이 끊어지지 않아 수백 년이라 그날이 그날 같았다. 해적이 일어남으로부터 해마다 늘고 달마다 더하여 횃불은 밤낮을 이어서 오르고, 갑옷과 투구는 추울 때나 더울 때나 벗을 날이 없게 되니, 바다를 끼고 있는 지역은 해골뿐이요 더러운 쑥대가 되고 말았으니, 더욱 누대는 말해서 무엇하랴. 언덕에는 여우와 토끼가 뛰놀아 지나는 사람들의 눈물을 자아낸다. 곡주(谷州)는 서울 북쪽 3백 리쯤 되는 데 있어서 바다와 거리가 상당히 멀므로, 그 백성들은 난리가 나서 횃불이 오르는 것을 알지 못한다. 아침저녁으로 밥지어 먹고 봄가을로 심고 거두는 이외에는 아무 일도 없으니, 거기에 수령이 된 자는 정사가 번거롭지 않되 공이 쉽게 이루어짐을 알 수 있다. 더욱 그는 사랑으로 기르고 옳음으로써 베풀어 주었으니, 백성들이 쉽사리 편안하여지고 일이 쉽사리 거두어짐이 김공과 같을 자가 있으랴. 이 공관 신루의 역사가 시작됨에 반드시 이루어질 것은 분명한 것이다. 수령은 백성을 친하게 하는 관직이니 백성이 편안하면 바로 넉넉한 것이요,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것은 윗사람을 공경함에 있는 것이며, 윗사람을 공경하자면 마땅히 조장(법령)을 준수하고 사신을 예로 대하는 데 삼가야 하는 것인데, 김공은 급히 하여야 할 것을 아는구나.” 하였다.
공의 이름은 승귀(承貴)요, 관등은 3품인데, 이번 거사를 보아 그 사람됨을 알 만하다. 윤 지사는 또 내 제자요 서 호군은 내 죽은 아내 송씨의 생질인 까닭으로, 옹졸한 글이라고 사양하지 않고 그 대략을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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