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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記) 향산 안심사 사리 석종기(香山安心寺舍利石鐘記) -이색(李穡) -

천하한량 2007. 4. 4. 02:57

기(記)
 
 
향산 안심사 사리 석종기(香山安心寺舍利石鐘記)
 

지공(指空)은 중인데 고려의 보제왕사(普濟王師)가 그 제자이다. 그들이 죽은 뒤에 화장을 지냈는데 모두 사리가 나와 그들을 믿던 사람이나 의심하던 사람도 이것을 보고 합하여 하나로 되었다.
향산은 압록강 가에 있는데, 땅이 가장 외지고 여진(女眞)과 경계를 접했다. 하지만 그곳 사람들은 충성스럽고 신의가 많아 국경 지대의 신하였던 까닭에, 불교에 있어서도 마음으로 기뻐하고 성심껏 따라 서울 사람들과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위에 좋아하는 사람이 있게 되면 아래에 꼭 그보다 더 좋아할 사람이 있다.”는 맹자의 말이 어찌 믿어지지 않겠는가. 중 각지(覺持)가 와서 말하기를, “나와 각오(覺悟) 두 사람이 석종(石鐘)을 만들어 지공의 사리 아홉 개와, 보제의 두골(頭骨) 한 조각과 사리 다섯 개를 안심사에 모셔 두었는데, 시주(施主)로 말하면 의주(義州)의 상만호 봉익대부 예의판서(上萬戶奉翊大夫禮儀判書) 장여(張侶)의 부인 용만군부인(龍灣郡夫人) 강씨(康氏)요, 또 보제의 가사 한 벌과 직철(直? 중이 입는 도포) 열 여섯 벌과 환장(環杖) 한 개를 보현사에 간직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곳의 향로전(香爐殿)은 지정(志程)이 세운 것입니다. 그 뜻은 대강 말씀드리자면 사은(師恩)에 보답하고 당세를 교화하며, 사도(師道)를 높이고 내세에 전하여 한 남자와 한 여자로 하여금 저마다 우리 도에 들어오게 하고자 하는 데 있습니다. 우리 도에 들어온다는 것은 별다른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의 마음을 평안하게 하는 것뿐입니다. 자신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것을 찾음에서 시작되고 얻음이 없음에서 끝나는 것입니다. 옛 사람의 행적이 멀어져 암매(暗昧)한 사람은 이따금 잊어버리기 때문에 사리를 간직하되 꼭 안심사에다 한 것이며, 사리를 보게 되면 반드시 마음이 편안하기를 생각할 것입니다. 이같이 하여 마음이 편안하게 되면 자신의 뼈에서도 사리가 나올 것입니다.”고 하였다.
따지자면 사람의 마음은 동일하다. 중생의 마음과 제불(諸佛)의 마음이 다름이 없는데, 하물며 지공 보제의 마음이 내 마음과 다름이 있겠는가. 다음부터 석종을 예배하는 사람들은 자신으로 돌아가 마음에서 찾는 것이 옳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