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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記) 자비령 나한당기(慈悲嶺羅漢堂記) -이색(李穡) -

천하한량 2007. 4. 4. 02:56

기(記)
 
 
자비령 나한당기(慈悲嶺羅漢堂記)
 

황해도와 평안도 경계선에 크고 높은 산이 있어 길손들이 이곳을 넘을 때마다 고생이 심한 까닭에 평안을 기원하는 뜻에서 자비령(慈悲嶺)이라 했다. 이 영의 북쪽은 평안도[平壤]에 속하고, 그 남쪽은 황해도[西海]에 속하는데, 나한당은 실제로 영북쪽 골짜기의 선참(仙站)에 자리잡고 있다. 이 당의 창립은 어느 연대인지 알 수 없으나 영험이 매우 나타난다고 한다. 내 젊었을 때 역마(驛馬)를 몰아 연도(燕都 중국의 서울 북경 )에 갔다가 다시 이 나한당 앞을 지나게 되어 한번 문안에 들어가 예를 드린 적이 있다. 당에는 깃발이 대단히 많이 달려 있었는데, 그 모두가 여행자의 기원하는 말이 씌어 있었고, 그 주방과 마구의 시설을 보면 여행자를 대접하기 위한 것이 대단히 잘 갖추어졌음을 볼 수 있었다. 마음에 흐뭇함을 느꼈으나 자세한 것을 물을 겨를이 없었다.
이제 좌가부승(左街副僧) 계명사 주지(啓明寺住持) 중덕(中德) 정해(定海)란 사람이 중수하여 새롭게 만들었다는 기록을 쓰고, 그 제자 성주(省珠)를 보내 나에게 당기(堂記)를 지어 달라 하였는데, 그 중수의 시말을 써 보내지 아니하였다. 그 경위서를 성주에게 받으려 하였더니, 그는 또 말하기를 “계명사(啓明師)의 갈 길이 매우 바쁘니, 선생께서는 그 사실을 생략해서 써주십시오. 오늘날 우리가 절을 중수한 것은 나한을 섬김으로써 복을 구하는 것이요, 여행자를 편하게 함으로써 우리 은혜를 베푸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공덕을 쌓는 것은 성인을 축복하고 백성을 평안하게 함에 목적이 있을 뿐입니다. 절의 시말같은 것은 저 말단의 일이니 무어 쓸 게 있겠습니까. 쓰지 않으셔도 무방합니다.” 하였다.
나는 말하기를, “그렇소이다. 오늘날 천하에 불교가 가득 찼으나 그 원류를 따지면 서역(西域)으로부터 나온 것이니, 글 쓰는 법에 있어서 그것을 생략하여야 옳을 것이요, 자비령은 우뚝 솟고 나한당은 번쩍 아름다웠으니 아, 하고 감탄하며 한번 바라보는 것이 어찌 통쾌하지 않겠습니까. 하물며 말에 내려서 마음대로 경치를 돌아보고 향을 피워 정성을 들이게 되면, 가쁜 숨이 훅 펴이고 미혹된 심신이 고요해지게 되는 것으로 비록 짧은 시간이라 하더라도 사람에게 도움을 많이 주는 것이니, 글 쓰는 법에 있어서 이것은 마땅히 드러내 써야 할 것입니다.” 하고는 다시 그 자세한 사실을 기록하여 올 것을 요구하지 않고, 성주가 말한 대로 바로 써주어 가지고 돌아가 지붕과 벽 사이에 달도록 하였다.
계명(啓明) 스님의 자비는 자비령과 같이 풍부한 것이 옳을 것이요, 나한의 신통(神通)은 어쩌면 계명사의 신통도 되리라 자비 신통 이것이야말로 국가의 큰 용도가 되는 것이다. 내 이러한 뜻에서 이 글을 기(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