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記)
양진재 기(養眞齋記)
양진재(養眞齋)는 전 안동대도호(前安東大都護) 강공(姜公)이 거처하는 곳이다. 공(公)이 병으로 누은 지 오래더니 그의 외종제 장원(壯元) 김순중(金純仲)에게 부탁하여 나에게 기를 써달라고 부탁하였다. 나는 대개 공보다 먼저 병든지라, 지금은 비록 일어났으나 오히려 힘이 없고 혹 때때로 시고 아픈 것이 서로 침노해서 일어날 수 가 없었다. 그런데도 조정에 다시 복직하여 양양하게 도당(都堂)으로 들어갔으나 두어 달 후에 파직했으니 이는 병이 이미 생긴 것이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아는 자는 나뿐이니 공이 당세(當世)의 말을 잘하는 자에게 이 글을 구하지 않고 나에게 구함도 마땅하도다.
대체로 사람이 이 기운을 받고서 태어남에 건(乾)은 굳건하고, 곤(坤)은 유순할 뿐이요, 이것을 나누어 말하면 수ㆍ화ㆍ목ㆍ금ㆍ토가 있을 뿐이니 그 양(陽)은 기수(奇數)이고, 음(陰)은 우수(?數)이며, 양은 변하고 음은 화하는 근원을 구하면 무극(無極)의 진(眞)으로 돌아갈 뿐인바, 이 무극의 진이란 이름지어 말하기가 어렵도다.
《시경》에 말하기를, “상천(上天)의 하는 일은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다.” 하였으니, 이것이 그 무극이 있는 곳인가. 그러므로 주자(周子)는〈태극도(太極圖)〉를 지어 또한 말하기를, “극함이 없는 것이 태극(太極)이라.” 하였으니, 대개 이것은 태극이 한 무극임을 말한 것이다. 하늘에 있어서는 혼연(渾然)할 뿐으로 바람을 일으키고 우뢰를 움직이기 전이며, 사람에게 있어서는 적연(寂然)할 뿐으로 일에 응하고 물건에 접히기 전이니, 바람을 일으키고 우뢰를 움직여서 혼연한 자가 조그만 변함도 없다면 일에 응하고 물건에 접해서 적연한 자는 마땅히 어떠하겠는가.
이것을 거울에 비유한다면 곱고 더러운 것은 물건에 있을 뿐이요, 거울에는 아무런 자취도 없는 것이니, 어찌 일찍이 물건을 비쳐주는 까닭으로 해서 물건에게 더러움을 받는 바 되랴. 이로써 사람의 나는 것은 이미 참되다는 것을 알 수 있으니, 오직 대인(大人)은 이것을 잃지 않는 까닭에 능히 대인이 되는 것이요, 이 대인이 밖으로부터 얻은 것은 아니다.
임금을 섬기는 데 예를 다하는 것은 아첨하는 것이 아니고 참이며, 병든 사람을 위문하고 죽은 사람을 조상하는 것도 아첨이 아니고 참이다. 지금에 계속해서 사심을 이기지 못하여 꾀를 부려서 서로 해치며 간사한 짓을 하여 자기를 이롭게 하며, 이로써 도리어 온전함을 구하여 훼방이 되게 하는 일도 자주 있으니 그 거짓을 일삼는 것이 또한 졸(拙)한 일이 아닌가.
강공(姜公)이 비록 병이 있으나 능히 참됨을 길러서 이것으로 그 집에 편액(扁額)을 썼으니 그가 물건에 유혹되지 않음을 단연코 알겠도다. 나는 귀로 듣고 입으로 외기만 하는 공부를 하였을 뿐이므로 마음을 기르는 방법을 알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능히 이를 행하지 못한다.
추(鄒)나라에 말이 있기를, “마음을 기르는 것은 욕심을 적게 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다.” 하였으니, 청하건대 욕심을 적게하는 것으로 참을 기르는[養眞] 주장을 삼을 것이로다.
경신(庚申)년 7월 초하루에 쓰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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