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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記) 조씨 임정 기(趙氏林亭記) -이색(李穡) -

천하한량 2007. 4. 4. 02:54

기(記)
 
 
조씨 임정 기(趙氏林亭記)
 

평양조씨(平壤趙氏)는 정숙공(貞肅公) 때로부터 충렬왕을 도와 원나라 세조(世祖)를 섬겨서 울연(蔚然)히 원나라 신하가 되어 여러 아들들이 모두 큰 벼슬을 했고, 그 중에도 둘째 아들 충숙공(忠肅公)이 더욱 후중(厚重)해서 군자들이 지금껏 칭송하여 마지 않는다. 그 아들 판서공(判書公)이 병으로 평주(平州) 남쪽 철봉(鐵棒) 동쪽에 돌아가 안양(安養)하기를 받자, 그 아들 형제가 곁에 모시어 조석으로 봉양했으니 이것이 조씨(趙氏)의 임정(林亭)이 생긴 유래이다.
조씨의 중자(仲子) 통례문판관(通禮門判官)의 이름은 완(琓)인데 나에게 와서 말하기를, “우리 부모가 여기 와서 사신 지가 여러 해가 되었는데, 집도 겨우 완성되고 공양도 겨우 계속할 뿐이다. 대개 우리 구씨(舅氏) 사암공(思菴公)이 돌아가신 후에 비록 스스로 공양하는 것이 있으나 그것은 담담할 뿐 아무런 맛있는 것이 없으니, 그 형상을 잊어서 세상을 잊고 몸을 즐겁게 하여, 마음을 즐겁게 함으로써 남은 생애를 보내고 후생들을 도와서 겨우 그 도를 얻었으니, 우리 형제가 화목하고 기뻐해서 그 속에 노는 것이야 그 즐거움이 또 어떠하겠습니까. 바야흐로 여름 경치가 펼쳐지니 산빛과 물기운이 위아래에 스며들고, 비올 뜻과 구름 모양이 조석으로 변화하여우리 부모를 즐겁게 하였으니, 이는 또 하늘이 조씨를 완전한 사람으로 만들어 준 것입니다. 우리 형제는 실로 마음에 쾌하나 이것을 입밖에 낼 수는 없고, 또 붓으로 쓸 수도 없어 장차 우리의 효도하는 마음을 넓힐 길이 없으니 임정을 지은 것도 장차 부세를 피하여 산에 들어가기를 깊게 하고, 이름을 요구하여 경치 좋은 것을 표방하는 자와 다름이 없을 것이니, 청하건대 선생은 이것을 기록해 주시오.” 하였다.
나는 말하기를, “대체 군자가 그 부모를 봉양하는 것은 심지(心志)와 구체(口體)가 다른 것인데, 이 조씨(趙氏)의 형제야말로 이를 모두 겸했다고 할 것이다. 평양의 고을됨이 경읍(京邑)과 비슷해서 사대부들이 별장을 둔 자가 많고, 왕래하는 편과 벼슬하는 사람이 많다. 관청 일이 조금 한가하면 혹 휴가의 틈에 필마로 왕래하는데, 어찌 유독 임정이 부모를 즐겁게 하는 것 뿐이리오. 그들이 길에서 풍경의 아름다움을 읊는 것은 형제들이 마땅히 자득함이 또 깊을 것이다. 나는 병들어 문밖에 나가지 않은지 수 년이 되었기 때문에 조씨 형제들을 더욱 부러워하여 끝에 대략 기록하노라. 그의 백씨의 이름은 호(瑚)인데 나의 문생이었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