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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記) 양주 통도사 석가여래 사리지기(梁州通度寺釋迦如來舍利之記) -이색(李穡) -

천하한량 2007. 4. 4. 02:52

기(記)
 
 
양주 통도사 석가여래 사리지기(梁州通度寺釋迦如來舍利之記)
 

홍무(洪武) 12년 기미 가을 8월 24일에 남산종(南山宗) 통도사(通度寺) 주지 원통무애변지대사(圓通無?辯智大師) 사문(沙門) 신 월송(月松)이 그 절에서 역대로 간수해 오던 자장(慈藏)을 가지고 중국에 들어가 석가여래의 정골(頂骨) 1개, 사리(舍利) 4개, 비라금점가사(毗羅金點袈裟) 1개, 보리수 잎 몇 개를 얻어 가지고 서울에 와서, 문하 평리(門下評理) 이득분(李得芬)을 찾아보고 말하기를, “월송(月松)이 을묘년 이후로 상은(上恩)을 입어 이 절에 와 있더니 정사년 4월에 이르러 왜적이 와서 그들은 사리를 얻으려고 땅을 깊이 파므로, 나는 그들이 정말 이것을 파낼까 두려워하여, 짊어지고 달아났었습니다. 금년 윤 5월 15일에 왜적이 또 오므로 나는 또 이것을 지고 절뒤 언덕으로 올라가 나무와 풀로 가리고 있으며 들으니, 적들이 말하기를, ‘주지는 어디 있으며, 사리는 어디 있느냐.’ 하고, 절의 종을 잡아서 몹시 급히 물었으나, 마침 그때 날이 저물고 또 비가 그치지 않아서 좇아오는 자가 없었습니다. 이에 나는 산을 넘어 언양(彦陽)에 이르렀다가 이튿날 절의 종을 만나 내 말을 세우고 서로 울면서 돌아오려 하니, 왜적은 아직도 물러가지 않고 마침 새 주지가 오려 하였으나 이를 편안히 모실 곳이 없어서 드디어 받들고 왔습니다.” 하였다.
그때 이공(李公)은 적은 병으로 몸이 몹시 불편하여 손들을 모두 쫓아 보냈는데, 사리가 이르렀다는 말을 듣고 벌떡 일어나 말하기를, “사리가 내 집에 이르렀으면 경사스럽고 다행하기 이를 데 없도다.” 하고 병이 이내 평복(平復)되었다.
이공은 궁중으로 들어가 이 사실을 아뢰니 마침 이때는 장씨(張氏)가 병으로 일어나지 못한지 한 달이라, 찬성사 신 목인길(睦仁吉)이 신 홍영통(洪永通)과 상의하여 임금 앞에 아뢰니, 태후 근비(謹妃)가 모두 공경함을 이루고 예를 다하며, 태후는 또 은(銀) 대접과 보주(寶珠)를 주어 내시참관(內侍?官) 박을생(朴乙生)에게 명하여 이를 송림사(松林寺)에 봉안하도록 했으니, 이는 이공이 이 절을 중수해서 낙성회(落成會)를 베풀기 때문이었다.
국중에서 시주하는 사람들이 귀한 이나 천한 이, 슬기로운 이나 어리석은 이를 따질 것 없이, 물결처럼 몰려들어 사리의 분신(分身)을 얻기를 빌어서, 이공(李公)이 3개를 얻고 영창군(永昌君) 유(瑜)가 3개를 얻었으며, 윤시중(尹侍中) 항(恒)이 15개를 얻고 회성군(檜城君) 황상(黃裳)의 부인 조씨(趙氏)가 30개를 얻었으며, 천마산(天磨山)의 여러 중들이 3개를 얻고 성거산(聖居山)의 여러 중들이 4개를 얻었으며, 황회성(黃檜城)이 친히 1개를 얻었으나 월송(月松)은 마침 밖에 나가서 시주를 받다가 와서 사리를 빌어 갔으니 이 사실을 월송은 다 알지 못하였다.
다음해 6월 16일에 이공이 신 색(穡)에게 말하기를, “지난번에 내가 강남 감옥에서 매를 맞을 적에 생각하기를, 원하건대 살아서 돌아온다면 친히 본국의 명산들을 돌아보리라 하여 통도사도 실상 그 중에 있었더니, 조정으로 돌아오자 현릉(玄陵)이 특별히 향을 내려 득분(得芬)을 명하여, ‘몸소 각처로 돌아다니면서 행례(行禮)하라.’ 하기에 통도사에 이르러 사리를 빌어 6개를 얻었으니, 득분이 사리와는 인연이 없다고 할 수 없도다.” 하였다.
사리가 통도사에 있던 것은 신라 선덕대왕(善德大王) 때부터였으니, 이것이 우리 나라로 들어와서도 또 장차 5백 년이나 되도록 일찍이 한 번도 송경(松京)에는 이른 일이 없었다. 주상전하께서 임어한던 처음 신 등이 벼슬자리를 채울 적에 월송사(月松師)가 사리를 받들고 왔는데 그 우연함이 아닌 것이 분명하다.
득분이 임금께 이 사실을 고하니 임금께서 이르기를, “영예문관(領藝文館) 신 색(穡)으로 하여금 이 사실을 갖추어 쓰도록 하라.” 하시니, 득분이 이 때문에 와서 말한다. 이에 신 색은 월송사를 따라 그 일을 알아가지고 또 계속하여 이공의 말을 써서 이것을 제목하여〈통도사 석가여래 사리지기(通度寺釋迦如來舍利之記)〉라 하였다.
이 달 21일에 쓰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