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은선생글 ▒

기(記) 박자허 정재기(朴子虛貞齋記) -이색(李穡) -

천하한량 2007. 4. 21. 18:11

기(記) 
 
 
박자허 정재기(朴子虛貞齋記)
 

내가 스물 한 살 나던 해로 이미 관례(冠禮)한 이듬해에 벽옹(?雍 지금 성균관)에 들어가서 《주역》을 공부할 때 선생을 얻지 못하였더니, 때마침 돌아가신 아버지와 동갑인 우문자정(宇文子貞) 선생이 학관(學官)으로서 오라 하므로, 곧 가서 뵙고 나아가서 자청하여 말하기를, “색(穡)은 고려 이가정(李稼亭)의 아들 우마주(牛馬走)입니다. 선생을 따라 《주역》을 배우고자 합니다.” 하였더니, 선생이 말하기를, “그대의 아버지 중보(中甫)는 《주역》에 밝으신 분이요, 내가 학식이 높다고 모시는 분이다. 그대가 나이 젊기 때문에 그대의 아버지가 반드시 《주역》을 가르쳐주시지 않을 것이다. 동갑의 아들은 내 아들과 같은 것이니 내가 그대에게 《주역》을 가르쳐주지 않음을 병되게 여기지 말라.” 하였다. 며칠 뒤 《주역》에 대하여 교정을 구하러 가 뵈었더니 선생은 말하기를, “가히 가르칠 만하도다. 그러나 《주역》은 소년들의 배울 바가 아니다. 내가 너에게 구두(句讀)나 가르치겠다.” 하였다. 그후에 내가 지은 《역의(易義)》 한 편을 올리니, 선생이 기뻐하여 말하기를, “의리는 거의 가까운 점까지 이르렀으나 말을 쓰는 것이 순서를 잃어버렸네.” 하고 붓을 들어 글을 쓰는데 구름이 날아가고 물이 흐르는 것같이 하여 거의 보태거나 고치는 데가 없었다. 내가 책상 앞에 공손히 섰다가 기쁜 빛을 얼굴에 띄우니 선생이 말하기를, “문장이 벌써 이루어지지 아니하였는가. 그러나 이것은 역(易)의 대강일 뿐이다. 그대가 몇 해 뒤에는 스스로 정미(精微)로운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하였다. 요행히 과거에 급제하여 맡은 관직 일에 분주하게 됨에 따라, 앞서 공부하였던 것도 모두 버리게 되었는데, 더욱 새로 얻음을 말할 수 있겠는가. 세월이 갈수록 잊어버려 마침내 배우지 아니한 사람과 같게 되었으니 아, 애석하구나.
임인년 과거에 장원을 한 박자허가 자기 사는 집의 호(號)를 정재(貞齋)라고 붙였는데, 아마도 그 뜻이 《주역》에서 가져온 것같다. 어느 날 나에게 말하기를, “그대 일찍이 《주역》을 공부하였으니 나를 위해 그 뜻을 풀이하여 주면 다행이겠네.” 하였다. 내가 대답하기를, “건곤(乾坤)은 역(易)의 문(門)이니, 건곤이 폐하면 역을 볼 수 없는 것이다. 64괘는 정(貞 역〈易〉에서 신성〈信誠〉ㆍ정성〈精誠〉 등으로 해석된다)의 나타남이니 말을 하자면 길어질 것이다. 아직 건곤에 대하여서만 말하겠노라. 건괘의 정(貞)은 큰 것이요, 곤괘에는 빈마(牝馬)의 정이라 하였으니 높은 것에 둘이 없음을 말한다. 《시경》의 주남(周南)ㆍ소남(召南) 두 편의 풍화(風化)가 후비(后妃)의 정(貞)에 달려 있는 것이기 때문에 건곤의 중괘(重卦)에 배합한 것이요, 《예기(禮記)》의 한 사람이 원량(元良 태자)이란 것은 만국의 정(貞)을 나타낸 정이기 때문에, 건곤의 교태(交泰)로 이루는 것이다. 건곤 두 괘에서 정의 내용을 충분히 볼 수 있다. 하물며 우(虞)ㆍ하(夏)ㆍ상(商)ㆍ주(周)의 글은 이 정(貞)을 기록한 것이기 때문에 그 이교(理敎)가 천리의 정관(貞觀)과 같고, 안자(顔子)ㆍ증자(曾子)ㆍ자사(子思)ㆍ맹자(孟子)의 학문은 이 정을 전한 것이기 때문에, 그 도학이 해와 달의 정명(貞明)한 것과 같으니 정의 쓰임이 참으로 큰 것임에랴. 자허씨는 명민한 자질과 독실한 학문이므로 움직이면 정(貞) 그것 하나뿐이다. 그러므로 그 몸가짐이 확고하여 뽑을 수 없어 마치 소나무와 잣나무가 절개를 지키는 마음이 있는 것과 같이, 춘하추동 4시를 일관하여 가지가 다시 뻗고 잎을 바꾸지 아니하며, 비와 이슬이 적시어도 번성을 더하지 아니하며, 바람과 서리가 꺾으려 해도 시듦을 더하지 않은 것과 같았다. 이런 까닭으로 화곤(華袞)의 옷을 입어 빛난다 할지라도 자허는 그것을 그리워함이 없었고, 장수의 위험이 앞에 닥쳤다 할지라도 자허는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다. 그러므로 선비들과 놀 때에 조화(調和)하되 구차하게 같이 하지는 아니하고, 청렴하되 구차하게 이색(異色)을 하지 아니하며 항상 늠름하여 남들이 침범하지 못할 기상이 있으므로 사람들이 진실로 정(貞)으로 지목하였다. 나는 역학을 배웠어도 업을 마치지 못하였기 때문에 정하려 하여도 정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자허씨에 대하여 깊이 바람이 있는 것이요, 자허씨가 그 정을 잘 보전할 수 있다면 나는 그에게서 받음이 많겠다.” 하였다.
뒷날 《중주집(中州集)》을 편찬하는 자가 자허의 전(傳)을 쓸 때에, “이 남자는 곧은 사람이요, 그 곧은 것을 알아 힘쓴 자는 한산(韓山) 이색(李穡)이다라고 하면 어찌 나의 다행이라고 아니하겠는가.” 하니 자허씨는 말하기를, “선생은 말씀마십시오. 이것은 내 서재의 기(記)로 할 만한 것입니다.” 하기에 제목을 〈박자허 정재기〉라고 하였다.
어떤 사람이 묻기를, “선생은 역(易)을 주(主)로 삼되 《시경》ㆍ《서경》ㆍ《예기》를 인용하여 뜻을 통하게 하면서 유달리 《춘추(春秋)》만은 언급하지 아니함은 무슨 까닭입니까.” 하기에 내가 대답하기를, “내 뜻이 《춘추》에 있으나 읽는 사람이 자세히 보지 아니하였을 뿐입니다. 비와 이슬, 바람과 서리는 천시(天時)의 춘추요, 화곤(華袞)과 부월(斧鉞) 형벌은 왕법(王法)의 《춘추》입니다. 《춘추》는 천시를 받들고 왕법을 밝힌 것으로 한결같이 바른 데서 나올 뿐이니, 내 말의 《춘추》가 아니고 무엇이겠소.” 하고 이 말을 아울러 드러내었다. 정사년 동짓달 하순에 기록한다.


[주D-001]우마주(牛馬走) : 마소처럼 분주하게 뛰어 다니는 사람이라는 말로 자신을 낮추어 이르는 겸칭이다.
[주D-002]교태(交泰) : 태는 물건이 크게 통함을 말하는 것으로, 교태는 물건이 사귀며 통하는 때를 뜻한다.
[주D-003]이교(理敎) : 이 시대에는 치(治) 자가 왕의 어휘(御諱)이므로, 치(治) 자를 피하고 이(理) 자를 썼다. 즉 치교(治敎)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