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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記) 성거산문수사기(聖居山文殊寺記) -이색(李穡) -

천하한량 2007. 4. 21. 18:14

기(記)
 
 
성거산문수사기(聖居山文殊寺記)
 

성거산이 뻗어 내려온 거리는 멀다. 장백산(長白山)에 뿌리박고 길게 뻗기 천여 리, 동해 바다를 옆에 끼고 남으로 계속 달음질하고, 또 천리를 내려와 우뚝 섰는데 가장 높은 곳이 화악산(華嶽山)이다. 이 화악산으로부터 남쪽으로 수백 리를 달려 불쑥 솟은 산은 성거산인데, 우리 나라 국조(國祖 왕건의 고조부) 성골장군(聖骨將軍) 호경대왕(虎景大王)의 사당이 이곳에 있으니 이 때문에 성거산이란 이름을 얻었다. 또 신라의 성승(聖僧) 의상(義相)이라는 이가 이 산에 와 있었으므로, 어떤 이는 산이름이 여기에서 나왔다고도 한다. 그 일명(一名)을 또 구룡산(九龍山)이라 하는데 그 고사는 이러하다. 호경대왕과 사냥꾼 아홉 사람이 이 산중에 들어가 짐승잡이를 하다가 마침 날이 저물어 하는 수 없이 바위굴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때 호랑이가 굴 어귀에 와 앉아 큰 소리로 으르렁댔다. 아홉 사람이 서로 말하기를, “호랑이가 잡아 먹으려 하는데 우리들 중에 누구든지 하나는 꼭 당하고야 말 것이다. 다 같이 갓을 벗어 호랑이 앞에 던져보아서 호랑이가 물게 되면 그 갓 임자는 바로 죽은 사람이다.” 하고 모두 갓을 벗어 던졌다. 호랑이는 그 가운데서 성골장군의 갓을 물었으므로, 장군은 바로 나아가 호랑이와 싸우려 하였다. 굴을 뛰어나오자 호랑이는 간 곳 없고 굴이 우르르 무너져 나머지 아홉 사람은 나오지 못하고 죽었다. 이 까닭으로 구룡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산 가운데에는 절이 많다. 높고 가팔라 기온이 차서 겨울에는 거처하기 어렵다. 산허리부터 그 밑은 대체로 그리 봉우리가 치솟지 아니하였다. 그래서 문수사(文殊寺)가 실제로 여기를 점령하였다.
여러 골짜기의 물이 이 절 앞에 모여들어 여름에 비가 오면 물소리가 우레같아 온 산을 진동한다. 겨울에 얼음이 얼면 구멍이 뚫려 물을 길어다 먹는데, 물 긷기가 쉽고 이 절은 불에 타 황폐한 지 오래다. 중 □이 다시 절을 세우려 함에 나에게 부처가 만물을 유성하는 힘[化]이 먼 것을 써달라 하고 이어서 나에게 말하기를, “□ 이제 역사가 끝났으니 또한 훌륭합니다.” 하였다.
내 일찍부터 산에 가 놀기를 뜻 두었으나 병 때문에 일어나지 못하겠고, 비록 앞서부터의 소원을 이루고자 하더라도 또 하늘이 나를 어여삐 여겨 더 살게 하여 줄는지도 모를 일이다. 만일 하늘이 복을 주어 더 살게 한다면 지팡이를 짚고 가든가 또는 수레를 타고서 유람을 가, 묵은 나무와 울퉁불퉁한 바위를 구경하고 시원한 누각 바람 속에서 으레 휘파람을 불고 시를 읊조리면서 회포를 풀 것이요, 천 길 산에 올라 티끌 묻은 옷을 떨고 퉁소를 불면서 만리나 먼 산하를 굽어보는 것이, 어찌 나의 얽히고 맺힌 회포를 위로함이 적다 할소냐. 절집과 불상의 시설과 종 및 돌북과 일상에 쓰이는 집기도 대강 갖추었는데, 그 가운데서도 크게 시주한 분은 성산(星山) 이 시중(李侍中) 초은(樵隱)의 부인 하씨(河氏)이다. 재물을 내어 시주를 도운 사람의 명단은 빠짐없이 아래에 열거하였다. 그리고 또 모두 기록하여 한 책으로 만들어 길이 절에 남겨두어 뒤에 오는 사람으로 하여금 참고할 자료가 있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