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육신이개 ▒

삼가 백옥헌(白玉軒) 이개(李塏)의 시 뒤에 쓰다. -이남규(李南珪)-

천하한량 2007. 4. 6. 02:39

발(跋)
 
 
삼가 백옥헌(白玉軒) 이개(李塏)의 시 뒤에 쓰다.
 

박연폭포도(朴淵瀑布圖)를 읊은 시에,

여산의 기이한 경치는 천하가 다 알지만 / 廬岳奇觀天下知
그래도 저 박연폭포에는 비길 수가 없다네 / 雖然未幷朴淵奇
깎아 세운 절벽이 천 길이나 아뜩한데 / 削成絶壁千尋壯
은하수 한 줄기가 거꾸로 쏟아지는구나 / 倒瀉銀潢一派垂
십 리 둘레 맑은 하늘에 빗발이 흩뿌리고 / 十里晴空飛雨灑
햇살 밝은 골짜기에 천둥이 으르렁거려라 / 雙崖白日怒霆馳
천마산의 정령(精靈)이 밤낮으로 우는구나 / 天磨日夜山精泣
서생의 책상 옆에다 모조리 옮겨다 놓아라 / 盡向書生座右移
하였으며, 차운암(車雲巖 차원부(車原?))의 설원(雪?)에 대한 응제시(應制詩)에,

대대로 맑은 가문이 외로운 절조를 지켜 왔다네 / 淸宗家世尙孤貞
아침저녁 옮겨 다니는 자들이야 어찌 본받으랴 / 豈效朝梁暮楚生
게혜사(揭?斯)의 사필을 후생들이 징험한다면 / 後識若徵斯史筆
엄자릉이 응당 한관 이름을 부끄러워하리라子 / 陵應恥漢官名
하였는데, 이 두 편의 시는 곧 우리 종선조(從先祖) 충간공(忠簡公 이산보(李山甫))의 작품이다.
공의 시문은 비록 그것이 통상적인 유희에서 나온 것일지라도 사람들은 이를 마치 길광상우(吉光祥羽 진귀(珍貴)한 예술 작품)나 되는 것처럼 귀중한 보배로 여겨서 아끼지 않는 자가 없는데, 더구나 이 두 편의 시가 충분히 공의 평생의 대강을 살필 수 있는데야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이 시의 그 준정(峻整)하여 깎아 세운 기세와 분노하여 억제할 수 없는 기백은 곧 저 벼랑의 폭포수와 더불어 서로 자웅을 다투어서 그 우열을 가릴 수가 없으며, 그 엄정(嚴正)하여 굽힐 수 없는 의지와 정결(貞潔)하여 더럽힐 수 없는 절조는 바로 저 운암을 빌려서 그 마음 속으로 생각하는 일을 말하였으니, 따라서 이는 설사 핍진(逼眞)하고 생동하는 예술적 표현이라 해도 가한 것이며 자기 자신에 대한 서술이라 해도 가한 것이다.
이 폭포도(瀑布圖)는 언제 누가 그린 것인지를 알 수가 없다. 그리고 운암(雲巖)의 설원(雪?)은 세조 임금이 선위(禪位)를 받은 초기에 있었으니, 그 취지가 어떤 것인지를 미루어 상상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육신유고(六臣遺稿)》를 상고해 보니 이들 시가 모두 빠지고 실려 있지 않은데, 광범위하게 수집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삼가 이를 여기에다 기록하여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