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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후인(順天后人) 김철희(金喆熙)는 삼가 쓰다. -이남규(李南珪)-

천하한량 2007. 4. 6. 02:36

발(跋)
 

내가 옛날에 산수(山? 산강(山康) 변영만(卞榮晩))를 통해서 수당 선생(修堂先生) 이공(李公)의 도덕과 학문, 그리고 그 문장의 성대함과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바친 풍절(風節)의 아름다움 등에 대하여 진작에 들었었다.
지난 신해년(1971)에 선생의 족질(族姪) 석구(奭求)가 공의 유문(遺文) 한 질을 가지고 와서 선생의 손자인 승복(昇馥) 어른의 부탁으로 말하기를, “이제는 왜추(倭酋)들이 도망가고 그 금망(禁網)이 풀렸으며, 나라를 다시 찾고 백성들이 안정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를 활자로 인쇄하여 간행하고자 하오니, 그대께서 이에 대한 발문(跋文)을 좀 써 주시면 좋겠습니다.” 하였다. 그래서 내가 삼가 이를 받아서 읽어 보니 과연 전에 듣던 말이 거짓이 아니었다.
아, 슬프다. 선생은 한말(韓末)의 고문가(古文家)의 한 분인 동시에 또한 나라를 위해서 죽은 대부(大夫)이시기도 하다. 그러니 나라를 위해서 죽은 한 가지 일만 가지고 말하더라도 그 고충(孤忠)과 정절(貞節)이 참으로 족히 일월(日月)처럼 빛나고 청사(靑史)에 드리울 만한 것으로서, 인멸시킬 수가 없는 것이다. 더구나 선생은 그 문장의 성대함을 겸하여 이루어서, 그 글이 사상과 이치가 아울러 도저(到底)하고 그 만나는 경계를 따라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것들로서, 마치 구슬이 쟁반을 구르듯이 그 운율(韻律)이 갱연(?然)하고, 초승달이 거울을 비추듯이 그 문채(文采)가 투명하고, 한가로운 구름이 저 산 위의 바위굴에서 피어 올라 뭉치고 사라지듯이 그 기운이 애연(?然)하며, 또 마치 전쟁터로 달리는 검극(劍戟)처럼 삼엄(森嚴)하여 그 법도가 정연하고, 칠실(漆室 어둠침침한 방)에서 부르는 정밀(精密)함이 더 이상 정밀할 수 없고 그 전아(典雅)함이 더 이상 전아할 수 없어서 족히 천추(千秋)의 세월을 두고도 영원히 불후(不朽)하리란 것을 조금도 의심할 것이 없는 경우이겠는가.
그뿐만이 아니다. 그 위에 다시 효자(孝子)와 충복(忠僕)이 있어서, 이들이 모두 한 가문 안에서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다들 같이 그 목숨을 버린 경우이겠는가. 선생이 참으로 교육을 잘 시켰으며, 그리하여 그분들이 이처럼 교화를 입게 되었다는 사실을 여기에서 우러러 확인할 수 있다 하겠다. 그러니 선생이 더더욱 위대하고 아름답다고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따라서 만약 이 문집이 세상에 나오게 된다면, 유속(流俗)에 따라 부침(浮沈)하면서 그 신령한 본성을 송두리째 잃어버렸을 뿐만 아니라 그 글 또한 족히 세상에 남길 만한 것이 없는 자들은 아마도 이를 보고 부끄러워서 그 얼굴이 붉어지게 되리란 것을 나는 안다.
선생은 휘가 남규(南珪)인데, 시호가 문정공(文靖公)인 목야(牧爺 이색(李穡)) 선생의 후손이다. 따라서 ‘그 유래가 있다’는 말이 바로 지금의 선생을 두고 이르는 말이라고 하겠다.
순천 후인(順天后人) 김철희(金喆熙)는 삼가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