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육신이개 ▒

거사하기로 약속한 날에 기회를 잃자 김질이 정창손(鄭昌孫)에게 고하여 궐내에 들어가 변고를 아뢰었다, -견한잡록(遣閑雜錄)-

천하한량 2007. 4. 6. 01:55

견한잡록(遣閑雜錄)
 

심수경(沈守慶) 찬(撰)


○ 세조(世祖)는 선위(禪位)를 노산(魯山 단종)에게서 받고 노산을 높여 상왕(上王)이라고 하니, 박팽년(朴彭年)ㆍ성삼문(成三門)ㆍ유성원(柳誠源)ㆍ이개(李塏)ㆍ하위지(河緯地)ㆍ유응부(兪應孚)ㆍ김질(金?)과 성삼문의 부친 성승(成勝)이며, 상왕의 처남 권자신(權自愼) 등이 몰래 상왕의 복위(復位)를 꾀하였는데, 거사하기로 약속한 날에 기회를 잃자 김질이 성사가 못 될 줄을 알고 달려가 그의 장인 상국(相國) 정창손(鄭昌孫)에게 고하여 궐내에 들어가 변고를 아뢰었다.

 

김질은 녹공을 받고 그 나머지는 모두 주살(誅殺)되었다. 대사를 약속하고서 기회를 잃은 것이나 김질이 고변한 것은 다 하늘의 뜻이지 어찌 사람의 힘이라 하겠는가.

 

당초에 세조가 안평대군(安平大君)과 대신 김종서(金宗瑞) 등을 주살하고 정난공신(靖難功臣)이 될 때 박팽년과 성삼문은 집현전 숙위(宿衛 당직)로 있었으므로 전례에 따라서 공신훈에 참여하였다.

성삼문이나 김질 등 공신들이 차례로 연회를 베푸는데 성삼문은 홀로 베풀지 않았고, 또 세조가 선위를 받을 때는 예방 승지(禮房承旨)로 있으면서 국새를 안고 실성통곡(失聲痛哭)하였다.

세조가 만약 그만이 연회를 베풀지 않은 것이라든지 선위(禪位)할 때 실성통곡한 정상을 의심하고 힐문하였다면 어찌 위태롭지 않았을까.

성삼문의 처사는 가히 오활(迂闊)하다고 하겠다.

 

박팽년은 당시 충청 감사로 있으면서 모든 상소(上疏)에 신(臣) 자를 쓰지 않고 다만 박아무개라고만 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

세조가 만일 살펴서 깨닫고 신 자를 쓰지 않은 내심을 힐문하였다면 어찌 위태롭지 않았으리오.

 

박팽년의 처사도 오활한 것이다. 대사를 거행하고자 하면서 처사를 이처럼 오활하게 하고서야 어찌 탄로와 실패를 면하겠는가.

 

추강(秋江) 남효온(南孝溫)이 편찬한 《육신전(六臣傳)》은 세상에 드물므로 보는 사람도 많지 않다.박팽년은 문장이 충담(沖澹)하고 필법이 고묘(高妙)하였으며,

성삼문은 세종조에 중시(重試)에 장원하여 영총(榮寵)이 지극하고 명망(名望) 또한 중하였으며, 유성원ㆍ이개ㆍ하위지도 모두 세종의 총애를 받은 사람들이며, 유응부는 무관 재상이었다. 세조가 영의정을 지낼 때 나라에서 연회를 베풀었는데,

 

박팽년이 시를 짓기를,

 

묘당 깊은 곳에서 처량한 거문고 소리 들리는데 / 廟堂深處動哀絲
일만 가지 일 지금 와선 모두 알지 못하겠네 / 萬事如今摠不知
버들은 푸른데 바람은 솔솔 불어오고 / 柳綠東風吹細細
꽃은 붉은데 봄날은 정히 더디기도 하네 / 花明春日正遲遲
선왕의 구업은 금궤에 간직하고 / 先王舊業抽金櫃
성주(聖主)의 신은은 옥치를 보내 왔네 / 聖主新恩倒玉?
즐겁지 않은 정이야 어찌 오래 가랴 / 不樂何爲長不樂
노래하고 술마시며 시 지으니 태평시절이로세 / ?歌醉賦太平時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