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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황계감 서문[明皇誡鑑序] - 박팽년(朴彭年) -

천하한량 2007. 4. 6. 02:01

명황계감 서문[明皇誡鑑序]
 

박팽년(朴彭年)

예로부터 제왕의 치란과 성쇠가 모두 그 왕비(王妃)에게 관련되지 않은 것이 없으니, 하(夏)와 은(殷)과 주(周)의 삼대(三代)가 흥성할 때에는 착한 왕비가 있었고, 쇠할 때에는 은총을 독차지한 여자가 있었다. 후세의 임금으로 여색에 홀려 난리를 만난 경우가 많았지만, 당(唐) 나라 명황(明皇)이 가장 심했으니, 참으로 뒷날의 거울로 삼아야 할 일이다.
정통(正統) 6년, 신유년 가을 임금께서 호조 참판신(臣) 이선(李宣), 집현전 부수찬 신 박팽년(朴彭年), 저작랑 신 이개(李塏) 등에게 명하여, “옛사람들이 명황(明皇)과 양귀비(楊貴妃)의 일을 기록한 사람이 많지만, 거의가 노리개감으로 삼은 데 지나지 않는다. 나는 개원(開元), 천보(天寶) 시대 성패의 자취를 캐내어 그림을 그려 보이고자 한다.옛날 한(漢) 나라에서도 천자의 수레 휘장이나 병풍에, 주(紂)가 취해서 달기(?己)에게 걸터앉아 밤새도록 즐기는 그림을 그렸으니, 어찌 뒷 임금으로 하여금 앞 사적을 보고서 스스로 경계를 하려 함이 아니겠느냐. 명황은 영특한 임금으로 이름났건만 늘그막에는 여색에 빠져 끝내 패하고 말았으니, 처음과 끝이 이와 같이 달랐었다.더구나 월궁(月宮)에서 놀다가 용녀(龍女) 양통유(楊通幽)를 보았다는 둥, 너무나도 허황하여 쓸 거리도 되지 못하지만, 주자(朱子)의 《강목(綱目)》에도 역시 황제(현종)가 공중에서 나는 신(神)의 말을 들었다는 것을 써서, 명황이 괴상한 일을 좋아했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 이런 말은 나라를 가진 자가 마땅히 경계해야 할 내용이니, 너희들은 편찬해 들이라.” 하였다. 이에 먼저 형상을 그리고 뒤에 사실을 바로 적어, 어떤 대목은 선유(先儒)들의 의논을, 어떤 대목은 고금(古今)의 시를 붙였다.책이 다 이루어지자 《명황계감(明皇誡鑑)》이라 이름을 붙여 주시고, 신 박팽년에게 명하여 책 머리에 서문을 쓰라 하셨다. 신은 생각하건대, 사람의 마음이 일어날 적에 올바른 데 근본하는 것은 심히 미약하고, 사심에서 나오는 것은 심히 위태로우니, 이 마음을 한 번 방치하고 억제할 줄을 모르면, 털끝만한 차이가 천리(千里)만큼 어긋나게 될 것이다. 하물며 임금이란 숭고(崇高)와 부귀(富貴)의 최고인지라, 그 마음이 가득 차기가 쉬우니, 성스런 바탕이 아니고서는 반드시 편한 자리에 떨어지기 쉽다. 그래서 처음에는 비록 부지런하지만 나중에는 게을러지고, 처음에는 밝게 하지만 마지막에는 어두워지므로, 간신이 그의 비위를 맞추고 요염한 모습이 눈을 흐리게 하여, 충성스런 말은 귀에 거슬려서 마침내 민심을 잃고 나라의 명맥이 좀먹으니, 아, 슬프다. 명황도 개원(開元)의 초기에는 마음을 가다듬어 정치를 하여, 조숭과 송경(宋璟) 같은 현신을 재상으로 삼고 비단을 대궐 앞에서 불살랐으니, 그 마음이 밝았던 것이다.그러나 평화스런 날이 오래 되자 사치스런 생각이 싹터 양귀비에게 빠져 놀이로써 방황하며, 다섯 양씨를 총애하여 그 해독이 천하에 퍼졌고, 안록산을 길러 대궐 안까지 더럽히고, 마침내는 몸마저 피하고 나라까지 잃었으니, 어쩌면 이렇게도 흐리단 말인가. 털끝의 차이가 천리만큼 어긋난다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그렇지만 현종과 양귀비의 사사로운 사랑이 사람들의 입을 더럽힐 정도로서, 이른바, ‘말하자 해도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니,새삼 그 모습을 그리고 사실을 기록해서 사람들의 이목에 드러낼 필요가 없지 않느냐고 말한다면, 또한 그렇지 않다. 옛부터 음탕한 사람의 생각이 안방에서의 비밀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는다고 여기기 때문에, 스스로 방탕하여 돌아올 줄 모르기에 성인께서 신대(新臺)와 장자(墻茨)의 시(詩)를 경전에 나타내어, 뒷날 악을 행하는 자로 하여금 비록 집안에서의 일이라 하더라도,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이 없음을 알게 함이니, 그 가르침이야말로 진실로 깊다. 그렇다면 그 글이 천만 세대의 거울이 아닐 수 없으니, 뒷날에 이를 보는 사람들은 소홀하게 여기지 말지어다.


[주D-001]신대(新臺)와 장자(墻茨) : 모두 《시경》의 편명으로, 음란함을 풍자한 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