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육신이개 ▒

본조선원보록(本朝璿源寶錄) -이정형(李廷馨)-

천하한량 2007. 4. 6. 02:07

 

본조선원보록(本朝璿源寶錄)

 

 

 

 

○ 문종이 선비들에게 책문(策問)으로 시험보일 때에 친히 문제를 내기를,

“들으니, 나라를 잘 다스리는 사람은 현인(賢人)을 구해 들이고 간하는 말을 들어주며, 욕심을 적게 하고 정사를 부지런히 하는 데 지나지 않을 뿐이요, 나라를 잘못 다스리는 사람은 이와 반대가 된다고 하니, 내가 덕이 없는 사람으로 선대(先代)의 업을 이어 받았기에 밤낮으로 조심하고 두려워하기를 깊은 못가에 임한 듯하고, 얇은 얼음을 밟는 것같이 하여 나의 허물과 실책을 말해 주어 부족한 데를 보충하기를 바란다. 너의 사대부들은 성인(聖人)의 학문에 마음을 쓴 지 오래되었다.만약 오늘날 급히 해야 할 일이 있거나 혹 내가 들어 알지 못하는 과실이 있거든 마땅히 마음을 다해 진술하여 숨기지 말지어다. 비록 문장이 기특하고 화려하여 서술한 것이 넓으나, 뜻이 도리어 부족하면 나는 한갓 그것을 도리어 배우(俳優)와 같이 볼 것이며, 임금의 덕만 칭찬하여 걸핏하면 요순(堯舜)에 견주나 실지가 감당하지 못하는 것이면, 나는 한갓 그것을 아첨하는 헛수고로 볼 것이니, 오늘의 대책(對策)은 성실하게 하기를 힘쓰라.”
하였다. 이때에 마침 황해도에 전염병이 크게 유행하므로 친히 제문을 지어 관원(官員)을 보내 제사를 지내게 하였다. 그 글에 이르기를,

“이치는 순전한 양[純陽]만이 아니라 음(陰)도 있고, 물(物)은 길이 사는 것이 아니라 죽음이 있어, 옴이 있으면 반드시 감이 있고, 신(神)이 있으면 반드시 귀(鬼)가 있는 것이다. 귀신이란 진실로 사물의 본체가 되어 빠뜨리지 않는 것이니, 어찌 여기(?氣)라고 주(主)가 없으랴? 감정이 없는 것을 음양이라 하고, 감정이 있는 것을 귀신이라 한다. 감정이 없는 것은 더불어 말할 수 없지만, 감정이 있는 것은 이치로써 깨우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생각건대, 물과 불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지만 때로는 사람을 상하게 하는 수가 있고, 귀신은 사람을 도우는 것이나 혹 때로는 사람을 해치는 수가 있다. 그러나 사람을 죽이는 것은 물과 불이 아니라 사람인 것이요, 사람을 해치는 것은 귀신이 아니라 사람인 것이다.그러므로 추움과 더움, 비 오고 개는 것, 오미(五味 감(甘)ㆍ신(辛)ㆍ산(酸)ㆍ함(鹹)ㆍ담(淡))의 음식은 천지가 사람을 살리게 하는 것이지만, 사람들 자신이 그 조화(調和)를 잃게 되면 병이 여기에서 근원하여 생기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귀신의 거룩한 덕은 이치가 온 천지와 동일한 것이니, 지금의 여기(?氣)는 실로 귀신이 앙화를 만든 것이 아니라, 또한 사람들 자신이 허물을 저지른 것임을 알 수 있다.그러나 마침 한 사람이 허물을 저지른 것으로 인하여 전염되어 점차 넓어지고 여러 해 동안 그치지 아니하여 죄없이 횡액을 입어 목숨을 잃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으며, 어찌 옛글에 이른바 ‘천리(天吏)로서 지나친 사람의 선악을 가리지 않고 다 죽인다.’는 것이 아닌가? 내가 덕이 부족한 사람으로 외람되이 한 나라 신(神)과 인(人)의 주(主)가 되었기에 항상 한 가지 사물이라도 제자리를 얻지 못할까 두려워하는데, 하물며 우리 백성이 비명횡사하는 것을 차마 보고 있을 것인가? 이에 유사(有司)에게 명하여 몇 군데에 깨끗한 처소를 가려 단(壇)을 만들고, 조정 신하를 나누어 보내어 고기ㆍ술ㆍ밥ㆍ국으로써 제사지내며 거듭 간절한 말로 타일러 너희를 깨우치게 하노니, 너희 귀신들은 이러한 뜻을 잘 계승하고 잘 받아들일 것을 생각하여, 어긋나게 성낸 기운을 거두고 만물을 낳고 살리는 본래의 덕을 펼지어다.”
하였다. 임금의 문장이 넓고 큼이 이와 같았다. 응교 이개(李愷)가 지어 올렸는데, 문종이 보고,

“내 마음에 합당치 않다.”
하고, 손수 초안하여 내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