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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記) 여강현 신륵사 보제사리 석종 기(驪江縣神勒寺普濟舍利石鐘記) -이색(李穡) -

천하한량 2007. 4. 4. 02:45

기(記)  
 
여강현 신륵사 보제사리 석종 기(驪江縣神勒寺普濟舍利石鐘記)
 

보제(普濟)가 여흥 신륵사(驪興神勒寺)에서 죽을 적에 영이(靈異)스러움이 분명하여, 의심하던 자는 의심이 풀리고 믿는 자는 더욱 믿어서 그를 천년 후까지도 공경할 것을 꾀하였으며, 집을 지어 그 화상을 모시고 종을 만들어 사리를 모시었으니 대개 극진하지 않음이 없었다.
각신(覺信)이라 하는 자는 실로 석종(石鐘)을 만들었고, 각주(覺珠)라 하는 자는 연석(燕石)을 구하여 장차 그 일을 기록하력 색(穡)에게 기를 구하기를, “염정당(廉政堂)이 천녕(川寧)에 있을 제 우리 절에 왕래했는데 내가 이 까닭을 말했더니 공(公)은 기꺼이 말하기를, ‘내가 서울에 가면 마땅히 상인(上人)을 위하여 한 마디를 한산자(韓山子)에게 청하면 반드시 사양하지 않을 것이라.’ 하였사오니, 원하건대 선생은 글을 써 주시옵소서.” 하였다.
나는 말하기를, “강월헌(江月軒)은 보제(普濟)가 거처하던 곳으로 보제의 몸은 이제 이미 불에 타서 없어졌으나 강과 달은 전일과 같도다. 이제 신륵사는 장강(長江)에 임하였는데, 석종(石鐘)이 버티고 있어 달이 뜨면 그림자가 강에 기울어져서 하늘빛ㆍ물빛ㆍ등불그림자ㆍ향피우는 연기가 그 속에 섞이어 모여드니, 이른바 강월헌은 비록 몇 천 년을 지나더라도 보제가 생존했을 때와 같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보제의 사리는 사방으로 흩어져 혹은 높다랗게 구름과 안개 속에도 있고, 혹은 여염(閭閻) 연기와 티끌 속에도 있어서 혹 높은 데로 달리기도 하고 혹 얕은 데에 쉬어 있기도 하니, 그를 받들어 가진 자는 보제가 살아 있던 때와 비교한다면, 몇 십배보다 더할 뿐이 아닐 것이다. 더구나 신륵사는 그가 죽은 곳이니 마땅히 각주대사(覺珠大師)는 사리에 진심(眞心)해야 할 것인데 어찌하겠는가. 신륵사는 보제가 크게 도량을 열었기 때문에 장차 영구히 이 세상에 없어지지 않을 것이니, 석종의 견고함만이 유독 신륵사와 더불어 시종을 같이 할 것이 아니라, 또 장차 이 강과 이 달과 더불어 무궁함이 될 것이로다
아, 공화(空華)는 잠깐 동안이 아니요, 묵겁(墨劫)은 너르지 않는 것이 이치인데, 세상은 이루어짐이 있고 파괴됨이 있을 것이다. 세계는 비록 이루어지고 무너짐이 있다고 하나 사람의 성품이 그대로 있을 것이니, 보제(普濟)의 사리는 장차 세계와 더불어 이루어지고 무너짐이 있으려는가. 장차 사람의 성품과 더불어 그대로 있을 것인가. 이는 비록 어리석은 남자나 어리석은 여자라도 역시 택할 바를 알 것이니, 후세에 사리를 소중히 여기는 자는 보제의 고풍(高風)을 공경하고, 이것으로써 자기 마음을 구한다면 비로소 보제의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 될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보제의 도는 자기의 도가 될 뿐일 터이니, 나에게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이것으로 기를 하노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