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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記) 지평현 미지산 죽장암 중영 기(砥平縣彌智山竹杖菴重營記) -이색(李穡) -

천하한량 2007. 4. 4. 02:38

기(記) 
 
 
지평현 미지산 죽장암 중영 기(砥平縣彌智山竹杖菴重營記)
 

중 각조(覺照)가 친히 찾아와서 청하기를, “지평(砥平) 용문산(龍門山)은 세상이 아는 바로서 그 이름을 미지(彌智)라고 하고, 여기에는 옛적에 암자가 있어 개현(開現)이라 합니다. 그 암자에 있으면서 도를 깨달은 자가 있었으나 그 이름은 잊었고, 다만 군왕으로부터 죽장(竹杖)을 하사받았다고 해서 그 암자를 죽장암(竹杖菴)이라 하였는데, 산중 사람들 간에 그대로 전해온 것입니다. 이 암자는 산 속의 높은 데에 의지하여 마치 심장에 있는 것 같고 상원(上院)은 배꼽에 있는 것 같아서, 암자의 높다랗고 상쾌함이 숲의 울창한 거죽에 나와 있고, 치악산(雉岳山)과 여강(驪江)을 굽어 보아 마치 손바닥 안에 있는 것 같으며, 가까운 봉우리들을 나지막히 구부려 좌우로 둘러서서 뻐어나게 솟아 온자(溫藉)함이 사랑스럽고 가히 구경할 만 합니다. 사시(四時)의 경치와 밤과 낮의 변화는 역시 말할 것도 없거니와 벽을 향해 앉아서 마음을 가라앉히면 정경(情境)이 함께 없어지고 두루 적적한 데 잠기게 됩니다. 학자들이 걱정하여 출정(出定)할 제 옷깃을 높이 세우고 눈썹을 치켜보면 조각 구름과 나는 새가 한결같이 만리에 푸르르며, 산은 병풍 같고 강은 비단을 펼쳐 놓은 것과 같이 좌우에서 밝게 비추어 안계(眼界)가 확연하고 마음속이 환해져서 의심나는 것이 모두 없어집니다. 이것을 병에 비유한다면 능히 걷지 못하던 자가 지팡이를 짚고 일어나며, 힘이 없던 자가 지팡이를 짚고 튼튼해지는 것과 같으니, 경치로 인하여 마음이 생기고 마음으로 인하여 도가 드러나 힘을 써야 할 바에 저절로 묵묵히 들어 맞게 됩니다. 더구나 대나무가 속이 비어 칼만 대면 쪼개지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것이 내가 이 암자를 다시 짓는 까닭입니다.” 하였다.
각조(覺照)는 또 말하기를, “내가 처음 여기에 뜻을 두었을 적에는 아무런 인연도 없었고 아무런 도움도 없었는데, 마침 유대언(柳代言)의 부인 원씨(元氏)가 산중에 왔기에 내가 이런 사실을 말했더니, 부인이 기꺼이 여겨 스스로 공덕주(功德主)가 되어 정사년 봄 3월에 공사를 시작해서 가을 7월에 끝마치고는 9월에 단청을 하고 10월에 낙성을 보았던 것입니다. 비록 집은 3간이지만 부처가 그 속에 있고 중들이 좌우에 있으니, 대총림(大叢林)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한 사람이라도 발진(發眞)해서 근원으로 돌아가서 시방허공(十方虛空)이 모두 다 사라진다면 중들의 많고 적은 것이나 집의 크고 작은 것은 우리들이 의논할 바가 아니니, 원하오니 선생은 한 마디를 주어 기를 만들어 주시옵소서.” 하였다.
나는 말하기를, “각조는 인세(人世)를 공화(空華)하고 이미 몸이 법에 들어갔으니, 마땅히 건률(乾栗)을 구하여 그 마음으로 짊어져서 금강(金剛)의 무너지지 않는 곳을 만들기를 이같이 급하게 함이로다. 대체 일좌(一座)가 갖추어진 땅으로 삼천대천세계(三千大天世界)를 보게 되면 크고 작은 것이 스스로 정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삼천대천세계의 일어나고 멸하는 것은 또 방촌의 마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요, 방촌의 마음을 구하려면 또 마땅히 일좌(一座)의 갖춘 땅을 얻게 되는 것이니, 일좌의 갖춘 땅을 어찌 적다고 여기겠는가. 이것이 한산자(韓山子)가 이 기를 쓰는 까닭이니, 뒤에 읽는 자들은 행여라도 기롱하지 말지어다. 기미년 5월 모일에 쓰노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