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記)
훤정 기(萱庭記)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어쩌면 훤초(萱草)를 얻어서 집뒤에 심으리.” 하였는데, 이것을 해석해서 말하기를, “이는 망우초(忘憂草)라.” 하고는, 자서(字書)에도 또한 훤(萱) 자를 해석하여 망우초라 하였다. 훤을 망(忘)자로 말한 것을 그 근심을 잊는다는 말이요, 훤을 선(宣)자로 따른 것은 그 답답함을 푼다는 뜻이니 마음속의 답답한 것을 풀면 통해지고, 마음의 근심을 잊으면 즐거워지며, 즐거우면 부모에게 순종하여 그 부모도 역시 즐거워지고, 통하면 천지에도 통해져서 천지가 평화로워 질 것이니, 천지가 평화로워지고 부모가 즐거워진다면, 요(堯) 순(舜)의 시옹(時雍 요순의 태평스럽게 다스리던 시대)의 다스림도 가히 미치지 못할 것이다. 그 이치에 있는 바를 구하면 상(象)에 나타나고 그 상에 있는 바를 구하면 훤(萱)에 보이나니, 한 물건은 적고 한 글자는 실낱만하지만 천리와 인정이 밝게 나타난다. 정치하는 체제와 국가 풍속의 관계를 내 일찍이 읽고 완미하여 동지(同志)들과 함께 생각하고 연구한 지 오래 되었다. 문생 염정수(廉廷秀)의 자(字)는 민망(民望)인데 어느날 와서 나를 보고 말하기를, “내 백씨(伯氏)는 거처하는 곳을 국파(菊坡)라 호했고 중씨(仲氏)는 그 거처하는 곳을 동정(東亭)이라 호했더니 나도 이 불초한 몸으로 요행히 과거에 급제해서 세 아들이 급제한 까닭으로 전례에 따라 국가에서 어머니께 양식을 내리게 되었다. 우리 형제 세 사람이 기운을 같이 하고 마음을 같이 했으니, 거처하고 움직이는 것도 서로 보고 서로 책망하여 오직 책하게 하기를 바랄 뿐이므로, 이제 실로 내 몸을 스스로 헤아리지 못하고 장차 훤정(萱庭)이라고 호를 할까 하오니, 원하건대 선생님은 대략 그 뜻을 해결해 주시옵소서.” 하였다.
내가 이 말을 듣고 짐짓《시경(詩經)》의 말을 인용해서 대략 그 글자의 뜻을 해석해 주었는데, 여기에 거듭 풀어서 말한다. 천지는 기운이요, 사람과 물건은 이 기운을 받아 태어나서, 무리를 나누고 같은 것끼리 모이며, 습한 데로 흐르고 마른 데로 나아가서, 밖으로는 엉클어진 것 같아도 그 실상은 질서가 있고 빛나서 윤리가 조금이라도 어그러지지 않는다. 사군자가 젊어서는 글을 읽어 사물의 이치를 연구하여 천하의 사리를 밝게 터득하고, 장성해서는 임금을 섬기고 물건을 다스려서, 천하의 사리를 평탄한 데로 돌아가게 하여 탕탕(蕩蕩)한데 무엇이 나의 기운을 더럽히겠으며, 유유(愉愉)한데 무엇이 나의 마음을 상하게 하겠는가. 이치가 부드럽게 순하고, 시원하게 의심이 풀리면 어찌 털끝만큼이나마 그 사이에 어긋나는 데가 있겠는가.
민망(民望)은 나이는 가장 적으면서도 학문은 가장 풍부하며, 또 당시 세상의 문사들과 더불어 놀고 교류하여 익혔으니 감(坎)의 대상(大象)이 나타났는지라, 이로써 뜻이 도탑고도 한만(汗漫)한 데에 들어가지 않고, 행하기를 힘써 하여도 허원(虛遠)한 데에 달리지 않아서, 돌이켜 자기 마음에 구하되 근심하는 바도 없고 답답한 바도 없이 오직 천지를 섬기고 부모를 섬기며, 이것을 다시 임금에게 옮겨 탐스러운 곡식과 아름다운 풀이 밭과 논에 가득하게 되기를 바랐으니, 그 마음 가짐이야말로 가히 멀다고 할 것이다.
수장(首章)에 말하기를, “백혜(伯兮) 백혜여, 이 나라의 호걸이로다.” 하였으니, 이 나라의 걸(桀)이란 딴 재주와 덕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부모에게 순종하고 천지에 통해서 몸소 친히 요순의 다스림을 볼 따름이니 민망(民望)은 힘쓸지어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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