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記)
금강산 윤필암 기(金剛山潤筆菴記)
이색(李穡)
보제 나옹(普濟懶翁)이 죽자, 비로소 사람들이 그 도(道)를 크게 믿고 좇아서 그를 사모했는데 하물며 그 교도들이랴. 한산자(韓山子)가 임금의 명을 받들어 명(銘)을 지은 것이 이 윤필암(潤筆菴)을 세운 유래이다. 이 윤필암은 무릇 일곱 곳으로써 공양드리고 좌선하는 제구(諸具)가 모두 몹시 정결하였으니, 보제(普濟)의 몸은 비록 갔어도 보제의 도(道)는 더욱 빛나기 이와 같아서 주위의 사람을 감동시킴이 깊었던 것을 알 수 있다.
금강산 선주암(善住菴)은 집만 있고 사람이 없은 지가 근 40년이더니 보제가 한 여름에 여기서 지내면서 돌을 모아 대(臺)를 만들고 거기서 여러 봉우리를 내려다 보았으니 사람들이 이것을 나옹대라고 일컬었다.
향로봉은 동쪽에 있고 금강대는 남쪽에 있는데 물이 그 아래로 흘러 마치 성처럼 둘려 있다. 나옹이 천하를 두루 돌아 다니며 산천을 구경하였고, 또 금강산에 들어와서도 암자가 벌집처럼 많이 있건만 유독 여기서 머물러 있었음은 반드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지림(志林)ㆍ찬여(粲如)ㆍ지옥(志玉)ㆍ신원(信元)ㆍ각봉(覺峰)이 나옹에게 공경하는 마음을 표하기 위하여 그 화상을 모시어 조석으로 향화(香火)를 올리고, 또 반승(飯僧) 15명이 공양을 드리고 좌선하여 도를 깨닫기를 구해서 사람마다 모두 나옹을 위하여 분주하였고, 여가에는 화두(話頭)를 찾으려 하였으니, 뜻이 있는 자들이라 이를 만하다.
이제 집기(什器)가 부족해서 서울 연화소(緣化所)에서 구하고, 또 벽에 걸어 둘 글을 뒷 사람에게 구하였다. 그리고 말하기를, “천일회(千日會)의 좌선이 지난 해 3월 3일에 시작하였으되 백일이 끝나고 다시 시작하였으니 원컨대 이 사실도 아울러 기록하기 바란다.” 하였다. 나는 말하기를, “착하도다. 지림(志林)등의 이 행사가 비록 여러 해를 지났으나 천일이 가고 다시 천일이 지나감이 마치 하루의 일같이 생각되는데, 도를 얻고 간 이를 어찌 다 기록하지 않으리오.” 하였다. 시주한 사람들의 이름도 아울러 아래에 기록하였다. 기미년 윤 5월 모일에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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