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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記) 보개산 지장사 중수 기(寶盖山地藏寺重修記) -이색(李穡) -

천하한량 2007. 4. 4. 02:28

기(記)
 
 
보개산 지장사 중수 기(寶盖山地藏寺重修記)
 

중 자혜(慈惠)를 내가 좌주(座主) 익재선생(益齋先生)의 부중(府中)에서 처음 서로 만나 보니, 키가 크고 이마가 넓으며 모양이 질박(質樸)하고 말이 곧아 선생이 매우 사랑하였다. 그가 있는 곳은 보개산 지장사이다. 익재선생이 돌아가실 적에도 자혜가 곁을 떠나지 아니하고 자제(子弟)가 부형(父兄)에게 하는 것과 같이 하니, 진실로 상인(上人 중의 존칭. 자혜를 가리킴)은 여러 중들 가운데서 특별히 뛰어남을 알았다. 자혜가 일찍이 절 일로써 경사(京師 북경)에 달려가서 공경(公卿)들을 만나 보았기 때문에, 이름이 중궁(中宮)에 퍼져 내탕금(內帑金)을 내어서 절 기구를 만들었고, 절이 이룩되자 임천 위선생(臨川危先生)의 글을 빌어 절을 만든 전말을 기록하여 돌에 새겨서 배에 실어 보내고, 자혜는 향폐(香幣)를 받들고 역마(驛馬)로 달려와서 돌을 절의 정원 가운데 세우고, 낙성회(落成會)를 크게 베풀었으니 참으로 그는 유능한 사람이다. 신축년에 병화가 절에 미쳐서 집이 남은 것은 대개 3분의 1 이었었는데, 자혜가 분발하여 새로 세우려고 하니, 이에 원조(元朝) 황비(皇妃)와 본국 왕비가 돈을 대고 철원군(鐵原郡) 최맹손(崔孟孫)과 감승(監承) 최충보(崔忠輔)가 이를 도왔다. 정당(政堂) 이공(李公)은 그 조부가 자혜를 사랑한 까닭과, 판사 박후(朴侯)는 그 장인이 자혜를 사랑한 까닭으로, 자혜 대우하기를 익재선생의 평상시와 같이하여 다 재물을 베풀어서 중건하는 공을 마치게 한 것이다. 병진년 4월 25일에 대장경을 전독(轉讀)하여 낙성식을 하였다. 자혜가 말하기를, “나는 지금 늙었으나 내가 이 절에 대해서는 일을 부지런히 하였으니, 현시의 글을 좋아하는 사람을 찾아서 이 일을 기록하지 않으면, 다른 날 돌에 새긴 기록을 읽는 이가 오늘 일을 어찌 알겠는가? 지금 돌에 글을 새기려고 하나 돌이 이 땅에 나지 않고, 연경(燕京)으로 달려가고자 하나 길도 막혔고 내 몸도 매우 쇠하였으므로, 장차 목판에 새겨 벽에 걸어 두었다가 돌에 새기는 일은 뒤에 동지를 기다리겠소.”하니, 그 말이 매우 슬퍼서 내가 차마 사양하지 못하고 이에 말하기를, “명산 보찰이 없는 곳이 없는데 반드시 이 산에서만 살고 이 절만 수리하는 데는 무슨 까닭이 있는가.”하니, 자혜가 초연히 말하기를, “스승의 명이라, 그렇지 않으면 참으로 공의 말과 같이 할 것이요.” 하였다. 아, 자혜는 능히 그 스승을 저버리지 않는도다. 그 스승이 누구냐고 물으니 진공대로(眞空大老)라 한다. 내 일찍이 특이한 사람이라는 얘기를 들었으나, 그 얼굴을 알지 못함을 항상 한하였는데, 지금 자혜와 더불어 말할 기회를 얻으니 어찌 나의 다행이 아니리요. 제자는 스승을 저버리지 아니하고, 자손은 선조를 저버리지 아니하는 것이 나의 소망이요 나의 소망이다. 어찌 감히 함께 기록하여 후세 사람에게 권하지 않으리요. 이에 기록한다.


[주D-001]임천 위선생(臨川危先生) : 원 나라 말년에 원 나라에 벼슬하던 위소(危素)라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