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記)
향산 윤필암 기(香山潤筆菴記)
향산은 압록강 남쪽 기슭 평양부(平壤府) 북쪽에 있는데 요양(遼陽)과 경계를 이루었다. 산의 크기는 비할 데가 없으며 장백산의 분맥(分脈)이다. 향나무ㆍ사철나무가 많고 선불(仙佛)의 고적이 있다. 산의 이름을 향으로써 □□□□□□□□□ 여러 부처와 도장 □□□□□□ 보제(普濟)가 올라서 놀 적에 일찍이 거기서 머물렀다. 그가 입적하자 제자 승지(勝智)가 장차 사리(舍利)를 받들고 이 산에 들어가려 하였는데, 역시 보제의 제자인 각청(覺淸)이 옛터를 찾아 집을 짓는데 세 기둥으로써 끝났다. 일을 마친 뒤에 그 스승의 화상을 받들어 당(堂) 가운데 걸고 아침저녁으로 예를 닦았다. 중 지선(志先)이 각청의 부탁으로 내게 와서 기(記)를 청하기에 내가 말하기를, “각청의 얼굴을 내가 기억하지 못하고 각청의 말이 내 귀에 들어온 것은 지선의 입을 통해서이다. 각청이 이미 그대에게 청하였는데 그대가 잊어버렸다 하더라도 무엇이 해로우며, 각청이 비록 청하지 않았더라도 보제선사의 구경(口?)이 있다. 나는 다만 보제를 알 뿐이라, 다른 사람은 무엇을 관여하리요.”하고 다시는 사양하지 않았다. 보제의 제자가 수없이 많고 보제를 위하여 힘써서, 죽은 뒤에 부도(浮圖)에 새기고 진당(眞堂 화상을 모신 집)에 기록하여 오래 전하기를 꾀하는 이가 연달아 나오고, 붙좇는 이가 존비(尊卑)와 지우(智愚)에 상관없이 하나로 합하여 굳어져 깨뜨릴 수 없으니 이는 누가 그렇게 한 것인가. 개 한 마리가 모양을 보고 짖으면 뭇 개가 소리를 듣고 따라 짖는 것과 같이 그 형세가 반드시 이럴 수 밖에 없었던 것인가? 서리가 떨어지면 종이 울고, 돌을 던지면 물이 응하는 감응교제(感應交際)하는 도(道)가 그러하기를 기약하지 않아도 그렇게 되는 것인가? 보제가 이에 이르게 한 것은 반드시 그 도(道)가 있는 것이다. 지금 불도를 믿는 무리가 나라에 거의 반이나 되고, 거슬러서 수백 년 전부터 따진다면 그 도가 더욱 성하게 행하였으나, 세상을 하직하고 간 뒤에 보제와 같이 뛰어난 이를 나는 많이 듣지 못하였으니, 당시에 보제를 정성으로 받들어 잊지 못하였던 것을 가히 알겠다. 보제가 세상에 있을 적에는 꾸짖는 자가 많았는데 그 죽음에 미쳐서는 따르고 생각하기를 또 이같이 하니, 아, 사람의 마음이 과연 누구를 주장하는가. 내가 이런 말로써 지선에게 말하고 또 각청에게 고하여 그 생각하는 마음을 더욱 간절히 하며, 그 스승의 사리(舍利) 전하기를 도모하기에 더욱 삼가고 삼가는 것이 가하다. 산의 좋은 경치는 중들이 많이 말하나, 내가 늙어 가서 볼 수 없음을 애석해 하여 함께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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