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記)
침류정 기(枕流亭記)
염동정(廉東亭)이 귀양 가 있을 적에 천녕현(川寧縣)으로 옮기게 되었는데 물을 사이에 두고 걸쳐서 정자를 짓고 그 위에 쉬면서 옛 사람 손자형(孫子荊)의 수석침류(瀨石枕流)라는 말을 취해서 표하고는 돌아오자 나에게 기를 써달라고 청하였다. 나는 말하기를, “동정(東亭)은 선왕(先王)의 지우를 받아 젊은 나이에 상신(相臣)으로 제배되었으므로 이제 금상(今上)께 그 은혜를 보답하려 하는데 다시 무슨 말을 하겠는가. 혐의 되는 말은 피하지 않았고, 어려운 일을 사양하지 않았으며, 어둡고 흐린 것을 받아 들였고, 울려 흔들리고 쳐서 공격하는 것을 진정시켜서 굳센 기개는 금석(金石)을 막고 충성된 마음은 귀신을 움직였으니, 가히 움직일 수 없이 튼튼하다고 이를 만하였다. 비록 밖으로 귀양갔다고는 하지만 몸을 보전하고 성명(性命)을 온전히 하여 산수의 낙을 맘대로 즐겼으니, 이는 임금께서 그 소원을 보전시켜 줌이라. 그 은혜 하늘과 같다. 이는 마땅히 음식 먹을 때나 쉴 때에도 감히 잊지 못할 일이라. 그야말로 강호의 먼 곳에 있어도 임금을 조심하는 것인데 어찌 정자의 이름은 이와 반대인가. 이는 장차 그 귀를 씻어 세상 일이 들리지 않기를 원하는 것인가. 장차 그 몸을 깨끗이 하여 세상 일의 번거로움이 미치지 않게 하고자 함인가.” 하였더니, 동정(東亭)은 말하기를, “그렇지 않다. 대체 물의 성품은 맑은 것으로서, 그 기운이 사람에게 닿으면 뼈에 사무치도록 차서 어둡고 흐린 마음이 비로소 맑고 밝아지며, 어지러운 마음이 비로소 안정되어 가히 상제(上帝)를 섬기고 가히 사령(四靈)을 감동시키기 때문에 하늘이 한 번 물[水]을 낳아 오행(五行)의 첫머리로 삼았으니 만물이 번식하는 것이 모두 물의 공(功)인 것이다. 지금 사람들이 아침저녁으로 남의 집 문을 두드려 물과 불을 구하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것은 하루도 없어서는 안되기 때문이고 하루라도 없으면 사람이 그 삶을 보존하지 못하는 것이니, 물의 공은 크다 할 것이다. 또 여기에 말한 베개를 삼는다는 말은 딴 뜻이 아니라 친하게 여긴다는 것이니 딴 말이 아니다. 이것을 내가 취한 것이다. 그대는 앞에 말하던 것을 끝내 주면 다행하겠다.” 하였다.
내 일찍이 듣건대, 천지 사이에 물이 커서 땅이 물위에 있기 때문에 땅이 물에 실려 있으니, 대체 형체와 빛깔이 있는 것은 천지 사이에서 모두 물을 베개한 셈인데 어찌 홀로 사람뿐이라 하겠는가. 지금 높다란 모든 산들은 위로 하늘에 닿아서 금수(禽獸)와 초목이 여기에 의지해서 살며, 비록 비와 이슬이 길러준다고 하지만 진실로 수기(水氣)가 그 사이에 통하지 않는다면 장차 어떻게 그 삶을 이룰 수 있겠는가. 태화봉(太華峰) 꼭대기에 있는 옥정련(玉井蓮)이 이것인데 하물며 평평한 언덕과 넓은 들판이나 끊어진 산모퉁이와 평평한 숲속에서 물이 솟는 것은 필연한 형세이다. 이러므로 사람이 사는 곳은 물이 아닌 땅이 없고, 사람이 먹는 것은 물이 아닌 물건이 없으니, 물과 사람은 잠시도 서로 떨어질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하다.
동정(東亭)은 여기저기 옮겨 다니면서 살고 수양하여, 학식이 일세(一世)에 높아서 부귀에 쳐해서는 부귀를 행하고 환란(患難)에 처해서는 환란을 행하니 대개 그 스스로 얻음이 깊도다. 내가 알기에 구름이 흩어지면 달이 나오고 물이 흐르면 바람이 이는 것인데, 동정은 수연(脩然)히 세상을 떠나 홀로 섰으니, 부귀와 환란이 그 마음에 무슨 움직임이 있겠는가.
이 정자야말로 하늘이 더욱 동정(東亭)에게 후하게 하여 고루 사방으로 베풀어 우리 백성들로 하여금 번거로운 마음을 씻고 정신을 통하게 한 것이니, 상덕(上德)에 도무(蹈舞)하는 것은 하늘에 있다 할 것이다. 이것을 기(記)로 삼는다.
'▒ 목은선생글 ▒'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記) 천보산 회암사 수조 기(天寶山檜巖寺修造記) -이색(李穡) - (0) | 2007.04.04 |
---|---|
기(記) 훤정 기(萱庭記) -이색(李穡) - (0) | 2007.04.04 |
기(記) 금강산 윤필암 기(金剛山潤筆菴記) -이색(李穡) - (0) | 2007.04.04 |
기(記) 향산 윤필암 기(香山潤筆菴記) -이색(李穡) - (0) | 2007.04.04 |
기(記) 보개산 지장사 중수 기(寶盖山地藏寺重修記) -이색(李穡) - (0) | 2007.04.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