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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記) 어은 기(漁隱記) -이색(李穡) -

천하한량 2007. 3. 24. 18:20

기(記)
 
 
어은 기(漁隱記)
 

염동정(廉東亭) 이 천녕(川寧)에 살 적에 스스로 ‘어은’이라 호를 하고, 돌아와서 나에게 기(記)를 청하기로 내가 말하기를, “옛 성인이 형상을 보고 그릇을 만들었고 우리 부자(夫子)도 《주역(周易)》계사(繫辭)에서 이를 취하여 베풀었으니, 망고(網?)와 전어(?漁 사냥하고 고기잡는 것)는 대개 그것의 하나이다. 맹자가 공씨(孔氏)에게 배우고 그 말에 ‘촉고(數? 빽빽한 그물)를 웅덩이와 못에 넣지 않으면 고기와 자라를 이루 다 먹지 못할 것이다.’ 하였으니, 대개 천지 사이에 생물이 매우 많으나 이를 취하는 데에는 그 기구가 있고 먹는 것도 때가 있으니, 재물을 이루어 천지의 도(道)를 돕는 것은 성인의 일이다. 홍수의 재난을 당하여 당우(唐虞)의 군신과 같은 성인으로써, 도(塗)에 장가간 지 나흘 만에 갓난아이를 자식으로 사랑하지 못하고 세 번 그 문앞을 지나가면서도 들어가지 못하였으니, 그 치수 사업이 매우 급하였기 때문이었다. 짐승과 새의 발자취가 중국에 어지러웠으니 백성의 피해가 참혹하였다 할 것이다. 이에 사람에게 고기 먹기를 가르치니 사냥하고 고기 잡는 기구가 더욱 급한 바이었다. 그러나, 사람의 성품이 기욕(嗜慾)에 달리기를 그치지 않으므로, 법을 두어 한 자 미만의 고기는 시장에 팔지 못하게 하고 사람도 먹지 못하게 하니, 내와 못에는 많은 고기가 놀고 뛰었으니 지극히 다스려진 형상이 나타났다. 또 학교를 잇달아 일으켜서 인재를 양성함에 이르러 반드시 배우는 이로 하여금 솔개가 날고 고기가 뛰는 것을 보는 사이에 화육유행(化育流行)의 묘리를 깊이 체득하여 내 마음의 전체 대용(大用)에 있어서 성학(聖學)의 공이 이루어지게 해야 할 것이다. 어항에서 즐겁게 노는 것을 대하는 것도 또한 후학에게 도움이 있을 것이다. 대개 물건이 있으면 법이 있으니, 하나의 일이라도 인(仁)이 아님이 없다. 동정(東亭)은 옛을 좋아하며 자신을 단속하고 마음을 보존하였다. 사람을 사랑하여 그 재물을 거두고 백성을 해치는 따위를 볼 적에 개돼지만큼도 여기지 않았다. 오직 고기와 자라도 다 덕화에 순응하게 되는 것으로써 자임(自任)하기에 힘썼다. 지금 이 ‘어은’이라 스스로 호를 한 것은 대개 천녕(川寧)으로부터 비롯하였다. 천녕은 여강(驪江)의 하류에 있으니, 그 땅이 농사에 알맞고 소나무가 많으며 백련정사(白蓮精舍)가 있다. 금사장(金沙庄)의 팔영(八詠 여덟 가지 경치를 읊은 시)은 족히 풍경의 아름다움을 보겠는데, 그 ‘동강에서 물고기를 낚는다[東江釣魚].’라 한 것은 곧 어은의 땅이다. 한 문공(韓文公)의 시에
물과 소나무를 낀 다리에서 백 보를 가면 / 橋夾水松行百步
대나무ㆍ살평상ㆍ돗자리가 있는 중의 집에 이른다 / 竹床莞席到僧家
잠깐 동안 한 손을 주먹 쥐고 턱을 괴고 누웠다가 / 暫拳一手支?臥
돌이켜 낚싯대 잡고 저녁 모래로 내려간다 / 還把漁竿下晩沙
하였는데, 문공은 내가 스승으로 여기는 터였다. 나는 늙었으니 만일 하늘의 복으로 그 이웃에 빈 땅을 얻으면, 마땅히 동정과 더불어 이 시를 읊조리며 내 평생을 마치기 원한다. 무릇 낚싯대ㆍ낚싯줄ㆍ낚시ㆍ미끼ㆍ곧은 낚시ㆍ굽은 낚시 같은 것은 동정이 돌아오기를 기다린 뒤에 더불어 토론할 것이다.” 이에 어은기를 짓는다.


[주D-001]염동정(廉東亭) : 고려 말년에 권력을 남용하던 자인데, 그 성명은 염흥방(廉興邦)이라 하다. 여기 〈어은기〉와는 정반대의 못된 짓을 하다가 최영 장군에게 죽은 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