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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記) 남곡 기(南谷記) -이색(李穡) -

천하한량 2007. 3. 24. 18:13

기(記)
 
 
남곡 기(南谷記)
 

용구산(龍駒山) 동쪽에 남곡이 있으니, 나와 동갑인 이선생이 살고 있다. 어떤 이가 묻기를, “선생은 숨었는가.”하기에, 내가 대답하기를, “숨은 것이 아니다.”하니, 또, “벼슬을 하는가.”하기에 대답하기를, “벼슬을 아니 한다.”하니 그가 매우 의심스러워하며 또 묻기를, “벼슬도 하지 않고 숨지도 않았으면 무엇 하고 있는가.” 하였다. 내가 말하기를, “내가 들으니 숨는 사람은 그 몸만 숨을 뿐 아니라 또 반드시 이름을 숨기며, 이름만 숨길 뿐 아니라 또 반드시 마음까지 숨기는 것이니, 이는 다름이 아니라 남이 알까 두려워하여 남이 알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벼슬하는 것은 이와 반대로 몸이 반드시 조정 위에 서서 좋은 관복과 큰 띠로 화려하게 갖추어 이름이 실지로 그 마음에 있는 바가 정사에 나타나고, 시가(詩歌)에 올라 사방에 빛날 것이니 마음을 어찌 숨기리오. 나는 이로써 남곡(南谷)은 숨을 땅이 아님을 알겠다. 지금 선생이 남곡에 살지만 밭이 있고 집이 있어, 관혼빈제(冠婚賓祭)의 쓰임에는 족하나, 세리(勢利)에 마음이 없음은 오래였었다. 그러나, 숨은 것으로 자처하지 않은 까닭으로 해마다 서울에 가서 웃고 말하며, 길 가운데 오락가락하면서 약한 종[奴]과 여윈 말에 채찍을 들어 시를 읊는데, 흰 수염은 눈과 같고 붉은 볼에는 광채가 나니, 그림 잘 그리는 이로 하여금 그 풍채를 그려서 전하면 〈삼봉연엽도(三峰蓮葉圖)〉에 손색이 없을 것이다. 남곡은 산에서는 나물 캘 만하고 물에서는 고기 낚을 만하니, 족히 세상에 구함이 없어도 스스로 족할 것이다. 산은 맑고 물은 푸르며 경치가 그윽하고 사람은 고요한데 눈을 들어 유연(悠然)히 바라보니, 비록 정신이 세상 밖에 논다 하여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선생은 의당 여기에 스스로 즐거움이 있을 것이다. 나는 늙고 병든 지 오래인지라 매양 벼슬을 버리고 돌아가고자 하나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밭이 있는 곳에는 바다가 가깝고 집이 있는 곳에는 땅이 박해서 살기에 적당하지 못하였다. 밭과 집이 다 온전한 곳을 얻어 내 몸을 마치는 것이 나의 소망이나, 어찌 쉽게 이루어질 수 있으리오. 선생이 정언(正言)이 되었을 적에 나는 간의대부에 임명되었는데, 같이 언사(言事)로써 재상의 뜻에 거슬리어 제공(諸公)은 다 외직에 옮기고 나만은 특이하게 뽑힘을 얻었으니, 지금까지 부끄럽게 여긴다. 선생은 여러 번 물러나고 여러 번 일어섰으나 위(位)는 겨우 삼품(三品)에 이르렀었다. 그러나 끼친 사랑은 백성의 마음에 남아 있고, 빛나는 이름은 물망(物望)에 합하니, 여러 이씨(李氏)에서도 그 짝을 구하기 어렵다. 이는 반드시 명추(鳴騶)가 남곡에 들어간 것이다. 다른 날에 큰 계책을 세우고 큰 의논을 결단하여 위로는 임금의 덕화를 도와서 제갈량(諸葛亮)이 남양(南陽)에서 일어남과 같기를 기필할 것인지 기필하지 못할 것인지 이는 다 천명이다.” 선생의 이름은 석지(釋之)며 가정공(稼亭公)의 문생(門生)으로 급제하였고, 일찍이 나와 함께 신사년 진사과에 합격하였다. 정사년 섣달 8일에 기한다.


[주D-001]명추(鳴騶) : 귀인의 행차를 수행하면서 벽제하는 기마병. 인하여, 지위가 높고 귀한 사람을 이르는 말로 쓰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