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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記) 풍영정 기(風詠亭記) -이색(李穡)-

천하한량 2007. 3. 24. 05:58

기(記) 
 
풍영정 기(風詠亭記)
 

상주 목사(尙州牧使) 김공(金公)이 공관(公館) 동편에 정자를 짓고, 한산(韓山) 이색(李穡)에게 편지를 보내어서 정자 이름과 기(記)를 지어 주기를 청하며 말하기를, “누가 더운 기운을 씻어버리기를 원하지 않겠는가. 상주(尙州)의 괴로움을 내가 이 정자로써 오히려 물리쳤으니 그대는 이를 사양하지 말라.” 하였다. 내가 생각하건대, 신축년 겨울에 상감이 남쪽에 거둥하였다가 이듬해 봄에 상주로 거둥하였는데, 그때 색(穡)이 승선(丞宣)이 되어 조석으로 시종하였으며, 가을에 이르러 대가(大駕)가 청주로 옮겼었는데, 과연 더위를 당하여 뜨거움에 곤란을 겪었다. 그때에 매우 한스러웠던 것은 이 고을이 신라 때부터 큰 고을이었는데, 어찌 정자와 놀이터가 이처럼 없을까 하였는데 지금까지 잊혀지지 않았다. 지금 나와 동년(同年)인 박헌납(朴獻納)의 기록과 문인(門人) 김남우(金南遇), 족인(族人) 김계(金桂)의 일컫는 말을 들어 보니, 이 정자는 서늘하여 바람에 더위를 씻는 것 같은 생각을 들게 한다니, 그 즐겁고 다행함이 어떠하였겠는가. 무릇 사시의 기운이 천지 사이에 유행하여 춥고 덥고 따뜻하고 서늘함이 같지 아니하므로, 사람이 거기 적응하게 하는 것도 각각 그 도(道)가 있다. 그러나, 소나무ㆍ돌ㆍ물ㆍ샘과 같은 산수의 흥취와 거문고ㆍ피리ㆍ술잔의 행락에 마음에 주장함이 있으면, 이른바 추위와 더위가 목전에 유행하는 것은, 족히 내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리니 무엇 때문인가. 마음을 잃게 하는 것은 바깥 물건이다. 이 두 가지를 내어놓고는 천시에 순응하고 내 뜻을 펴는 것은 오직 소풍하고 노래하는 것이다. 무우(舞雩 기우제(祈雨祭)를 지내는 곳)에서 소풍하고 시를 읊고 돌아오면 가슴속이 유연(悠然)하여 한 점의 구애도 없는데, 하물며 더위ㆍ비ㆍ추위와 같은 원망이 이 마음을 더럽힘이 있으리오. 부절(符節)을 갖고 이 고을을 지나는 이로 하여금 봄옷을 이미 입을 때와 같은 화창한 기운이 넘치게 한다면 상주 백성은 다행할 것이니, 감히 풍영정(風詠亭)이라 이름하기를 청하였다. 무릇 공역(工役)의 본말과 같은 것은 보통 일이다. 그러나, 또 기록할 만한 것이 네 가지 있다. 공이 금년 초여름에 일을 보게 되면서 바로 공관의 무너지고 헐어진 것을 수리하고자 하니, 홀연 폭풍이 일어나 큰 나무가 뽑혀서 좋은 재목이 산같이 쌓였으니, 이것이 그 첫째요, 여러 아전들을 부(部)로 나누고 자신이 역사를 감독하여 한 백성도 괴롭히지 아니하며, 여러 공인들이 힘을 다하여 이미 공간을 수리하고 정자에까지 미쳤으니 이것이 그 둘째요, 풍영정을 처음 경영할 적에 더러운 흙을 걷어 내고 방향을 살펴서 재고 다듬으니 옛날 터가 완연하였다. 대개 그 지휘하고 계획함이 옛사람과 똑같았으나 그 제작하는 묘함은 더 넘쳤으니 이것이 그 셋째요, 정사에 임해서는 은혜와 위엄이 함께 나타나서 일이 이루어지고, 백성이 화합하며 명예와 공적이 뛰어나고 조그마한 공역이라도 또한 차례가 있었으니 이것이 그 넷째이다. 담을 둘러서 동산을 만들고 물을 끌어다가 못을 만들어 심고 가꾸니 둘러보면 널찍하고 시원하여, 또 여러 산봉우리가 옹위(擁衛)한 것에 이르러서는 이 정자의 우익(羽翼)이니 간략하게 기록하여도 가하다. 후일 여기에서 바람을 쏘이고 시를 읊조리면서 “나는 증점(曾點)에게 허락한다.”고 한 대의(大意)를 깨닫는 이는 그 무엇으로 우리 김공에게 보답할 것인가. 아울러서 고한다. 김공의 이름은 남득(南得)이며 경진년에 진사(進士)하고 안팎에 출입하여 명망이 있어, 내가 사랑하고 존경하기 때문에 사양하지 아니하고 기(記)한다. 12월 10일.


[주D-001]나는 …… 허락한다 : 《논어(論語)》에 있는 말인데, 공자가 여러 제자들에게 각각 그 뜻을 말하라 하니, 다른 제자들은 다 벼슬하기를 원하였으나 증점(曾點 이름은 석(晳), 증자(曾子)의 아버지)만은 말하기를, “늦은 봄에 봄차림을 하고 어른과 어린이 각 5ㆍ6명과 더불어 기(沂)에서 목욕하고 무우에서 바람 쏘이며 시를 읊고 돌아오기를 원합니다.” 하니, 공자가 그 뜻을 칭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