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記)
인각사 무무당 기(麟角寺無無堂記)
석씨(釋氏)의 교(敎)는 역외(域外)에서 들어온 것인데도 역중(域中)에 본래 있던 것을 누르고 홀로 존귀해졌다. 이는 무엇 때문인가. 역중 사람들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그 화복인과(禍福因果)의 말이 이미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서 석씨를 따르는 자는 보통 다 평범한 것을 미워하고 속된 것을 싫어하며, 명교(名敎)의 구속에 따르기를 즐기지 않는 호걸(豪傑)의 재주들이다. 석씨가 인재를 이와 같이 얻으니, 그 도(道)가 세상에서 존경을 받는 것은 괴이한 일이 아니다. 내가 이러므로 석씨를 심히 거절하지 아니하고 혹은 더불어 좋아하는 것은 대개 그 취할 바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 조계 도대선사 서공(曺溪都大禪師?公)이 새로 총명(寵命)을 입어 구산(九山)의 영수(領袖)가 되어 낙수(洛水) 위에서 상감을 뵈니 자리를 주어 조용히 앉게 하니 가히 영광이라 하겠다. 그러나 그 덕행(德行)을 보면 평상시와 다름이 없으니, 진실로 마음이 담연(淡然)하여 누(累)가 없는 것이다. 내가 낙서(洛西)의 여러 절에서 놀다가 우연히 남장(南長)에 이르니, 창공(?公)이 한 번 보고 혼연히 그가 주지하는 인각사 무무당(麟角寺無無堂)의 기(記)를 지어 주기를 청하며 그 내력을 말하였다. 대개 이 절은 불전(佛殿)이 높은 자리에 있고 뜰 중간에는 탑이 있으며, 왼편에는 월랑[?], 오른편에는 선당(膳堂 식당)으로 되었는데, 왼편은 가깝고 오른편은 멀어서 배치가 맞지 아니하다. 이 때문에 무무당을 선당 왼편에 세우니, 이에 좌우의 거리가 고르게 되었다. 그 집의 됨됨이를 기둥으로써 계산하면 다섯으로 된 것이 셋이요, 간 수로써 계산하면 다섯으로써 된 것이 둘이니, 이는 공(公)의 창작이 새롭고 교묘함이다. 신축년 8월에 시작하여 올 7월에 일을 마치었는데, 8월 갑자일에 총림법회(叢林法會)를 열어 낙성(落成)을 하였다. 이미 이 집이 있어서 선당이 왼편으로 치우치고 또 협소하니 오른편으로 옮기면 배치와 제도도 논할 것이 없겠다. 그러나 혹 힘이 계속할 수 없을 듯하니 뒷사람에게 기대할 수밖에 없겠다는 것이 공의 뜻이었다. 내가 생각하건대, 공이 도를 독실히 믿는 까닭으로 명예가 날로 넓어지고, 착한 일에 부지런하기 때문에 일이 쉽게 이루어진 것이다. 무릇 종파를 붙들고 교를 세우는 이가 매우 많으나 다른 석자(釋子)는 감히 바라지 못할 일이다. 하물며 인각(麟角)이 마음 구할 곳이 없음에랴. 이런 까닭에 비록 일이 많은 때이나 공역(工役)을 멈추지 아니하고, 윗사람의 뜻을 받아 맑은 법규를 행하여 후학(後學)에게 은혜 베풀기를 마치 미치지 못할까 두려워하듯이 하니, 공이 마음쓰기를 부지런히 한 것이다. 어찌 감히 공경히 써서 공의 후계자에게 고하지 않을 것인가. 그 무무(無無)의 뜻은 이 당(堂)에 사는 이는 다 알겠기로 이를 논하지 아니한다. 지정 임인년에 기한다.
'▒ 목은선생글 ▒'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記) 풍영정 기(風詠亭記) -이색(李穡)- (0) | 2007.03.24 |
---|---|
기(記) 영광 신루 기(靈光新樓記) -이색(李穡)- (0) | 2007.03.24 |
기(記) 유사정 기(流沙亭記) -이색(李穡)- (0) | 2007.03.24 |
기(記) 차군루 기(此君樓記) -이색(李穡)- (0) | 2007.03.24 |
기(記) 기 기(碁記) -이색(李穡)- (0) | 2007.03.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