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은선생글 ▒

기(記) 차군루 기(此君樓記) -이색(李穡)-

천하한량 2007. 3. 24. 05:55

기(記)  
 
 
차군루 기(此君樓記)
 

내 집이 진강(鎭江) 위에 있어 성흥산(聖興山)과 거리가 겨우 30리라, 일찍 산중을 왕래하여 보광장로 남산공(普光長老南山公)을 뵈었는데, 갈 때마다 누기(樓記)를 청하며 말하기를, “선대부(先大夫)를 모시고 있을 때에 일찍 한 장의 글을 얻어 이 누(樓)의 영광이 되기를 청하였더니, 공(公)도 기꺼이 허락하셨는데, 세상일이 변하여 공은 마침내 세상을 떠나셨으니 이 누(樓)의 불행을 슬퍼한 지 오래 되었소. 그렇다면 우리 누의 기문을 쓰는 것은 선공(先公)의 뜻이니 그대의 도리로서 사양하지 못할 것이오.” 하였다. 내가 바로 상중(喪中)에 있어 틈을 얻지 못하였었는데, 이제 복(服)을 벗고 과장(科場)에 나가 놀다가 돌아와서 그 집에 갔더니, 또 말하기를, “우리 누가 이룩된 지 벌써 12년[一紀]이 넘었는데, 이 누에 오르내리는 사람으로 유자(儒者)는 몇이며 석자(釋者)는 몇이었는가. 그러나 지금 벽에는 글 한 자 붙은 것이 없으니, 어찌 그대가 장원(壯元)되기만을 기다린 것이 아니겠는가. 또 산중의 승경(勝景)은 하나뿐이 아니지만 누의 승경(勝景)은 대나무에 있으므로 내가 차군(此君 대나무의 별명)이라 이름하였으니, 대개 차군의 뜻을 아는 이가 드무니 이 때문에 내가 유독 그대에게 바라는 것이오.”한다. 내가 차군(此君)과는 일찍이 사귀고 있었으므로 공이 비록 명하지 아니하여도 장황하게 기록할 것인데, 하물며 이와 같이 부지런히 청하니 어떠하겠는가? 비록 그러하나 나는 만생(晩生)이라 어찌 감히 말할 바가 있으리오. 대나무를 어진 사람과 같다고 한 말은 낙천(樂天) 의 기(記)에서 자세히 말하였고, 장부(丈夫)와 같다는 설은 목지(牧之)의 부(賦)에 갖추어 있으며, 우칭(禹?)은 다른 사물들과 잘 어울리는 형상을 모두 말하였고, 관부(寬夫)는 사정(邪正)의 분별을 세웠으며, 여가(與可) 는 그 정을 얻어서 서화(書畵)에 맞추었고, 자첨(子瞻 소식(蘇軾)의 자)은 이치에 밝아서 글로 표현하였다. 진(晉) 나라의 칠현(七賢)과 당 나라의 육일(六逸)도 다 차군에 힘입어 유명해진 것이다. 그 나머지 소인묵객(騷人墨客)들이 웅문걸구(雄文傑句)로 차군을 우익(羽翼)한 것이 어느 정도인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내가 비록 뜻을 내어 그 곧고 굳은 절개를 말하려 하나 반드시 고루한 데 지나쳐서 소산(蕭散)한 무리에게 꾸지람을 당할 것이요, 달을 보내고 바람을 맞이하는 것을 말하려 하나 반드시 천박한 데 지나쳐서 독후(篤厚)한 사람에게 웃음을 당할 것이니, 어찌 허튼 말로써 옛사람 이기기를 구하리오. 나는 기(記)를 짓지 않음이 가할 것이다. 비록 그러하나, 내가 단지 부러운 것은 명선 노사(名禪老師 덕이 있어 이름 높은 중들)가 재(齋)를 파한 뒤에 정신을 풀고 마음을 펴서 이 누 위에서 서로 거닐 적에 대숲으로부터 우수수 하고 들리는 소리가 있으면, 고요히 얽혔던 객진(客塵 번뇌)이 환연(渙然)히 얼음 녹듯 할 것이요, 공적(空寂)을 깨뜨리는 소리가 들려오면, 열뇌(熱惱 고뇌)가 맑고 서늘한 심경으로 화할 것이니, 차군의 도움이 이미 많지 아니한가. 내가 여기에 대해서는 말이 없을 수 없다. 남산공(南山公)은 우리 선인(先人)의 늘그막의 방외(方外 자기 교가 아닌 불교)의 교우(交友)이다. 어떤 사람이 공(公)에 대해서 내게 묻기에, 나는 곧 대답하기를, “차군을 알면 남산을 알 것이다.” 하였다. 지정 계사년 6월 어느 날 한산(韓山) 이(李)는 기한다.


[주D-001]낙천(樂天) : 당(唐) 백거이(白居易)의 자(字). 그가 지은 〈양죽기(養竹記)〉에 대나무를 어진 사람에게 비하였다.
[주D-002]목지(牧之) : 당(唐) 두목(杜牧)의 자. 그 〈죽부(竹賦)〉에 대나무를 장부(丈夫)에 비하였다.
[주D-003]우칭(禹?) : 송(宋) 왕원지(王元之)의 이름. 그 〈죽루기(竹樓記)〉에 여름의 비, 겨울의 눈, 거문고 칠 때, 바둑 둘 때에 다 좋다고 하였다.
[주D-004]관부(寬夫) : 송 나라 사람으로 성명은 채거후(蔡居厚)이다. 그는 그가 지은 《채관부시화(蔡寬夫詩話)》에서 대를 논하였다.
[주D-005]여가(與可) : 송 나라 사람이니, 성은 문(文), 이름은 동(同), 여가는 자인데 소식(蘇軾)과 동시대 사람으로 대를 잘 그려서 소식이 그에게 대 그리는 것을 배웠다.
[주D-006]진(晉) 나라의 칠현(七賢) : 진(晉) 혜강(?康)ㆍ완적(阮籍)ㆍ산도(山濤)ㆍ향수(向秀)ㆍ유령(劉伶)ㆍ왕융(王戎)ㆍ완함(阮咸) 등 7명으로서 하내 죽림(河內竹林)에 있어서 죽림칠현이라 하였다.
[주D-007]당 나라의 육일(六逸) : 이백(李白)ㆍ공소보(孔巢父)ㆍ한준(韓準)ㆍ배정(裵?)ㆍ장숙명(張叔明)ㆍ도면(陶沔) 등 6명으로서 조협산 죽계(組狹山竹溪)에 있었으므로 죽계육일(竹溪六逸)이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