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記)
유사정 기(流沙亭記)
유사는 〈우공(禹貢)〉에 실려 있는 왕의 교화가 미친 지역이다. 그러나 이것을 정자의 이름으로 삼은 이유를 나는 알지 못하겠다. 옛사람이 한가롭게 놀고 거처하는 곳에 현판을 할 적에, 진실로 유명한 산수(山水)의 이름을 붙이거나 혹은 매우 아름답거나 매우 나쁜 것을 써 걸어서 권계(勸戒)하는 뜻을 붙이거나, 혹은 그 선대의 향리(鄕里)에 대하여 그 근본을 잊지 못할 뜻을 기록할 것이나, 멀리 떨어진 지역, 낮고 악한 고을, 인물이 나지 아니하고 배와 수레가 이르지 못하는 중국의 유사(流沙) 같은 이름은 사람이 말하기도 싫어하고 일컫기도 부끄러워하는데, 하물며 대서특필하여 지게문과 창 뒤에 써 붙이는 것은 어떠하겠는가? 나는 오형(吾兄)의 뜻 둠이 반드시 남보다 뛰어남이 있음을 알겠다. 천하의 큼[大]은 성인의 교화와 더불어 무궁한 것이나 이는 오히려 외형이요, 한 몸의 작음이 천하의 큼[大]과 더불어 같다는 것은 내면이다. 그 외형으로부터 보면 동쪽으로는 부상(扶桑)에 닿고, 서쪽으로는 곤륜(崑崙)에 닿았으며, 북쪽은 초목이 나지 아니하고, 남쪽이 눈이 내리지 아니하는 곳까지 성인의 교화가 젖고 덮이고 미쳤다. 그러나 통일되었을 때는 적고 분열되었을 때는 항상 많으니, 진실로 마음에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내면으로부터 보면 힘줄과 뼈는 묶였고 정(情)과 성(性)은 미미하나 마음은 그 가운데 있어서 우주를 포괄하고 사물에 응대하여 위력으로도 빼앗을 수 없고 지혜로도 막을 수 없으니 우뚝한 나[我]라는 하나의 사람이 비록 한쪽 끝[極]에 치우쳐 가만히 엎드려 그윽히 숨어 있으나 그 가슴속 도량(度量)에는 성인의 교화가 미치는 사방의 먼 곳이라도 이 마음에 벗어남이 없을 것이다. 형의 뜻이 역시 이와 같은 것인가. 내가 일찍이 사방(四方)에 유람할 뜻을 두었으나 지금은 이미 지쳐버렸다. 신축년 겨울에 동쪽으로 피란갔다가 비로소 영해부(寧海府)에 이르니, 여기는 우리 외가인데 우리 형이 살고 있었다. 영해는 동쪽으로 큰 바다에 닿아서 일본과 이웃하였으니, 실로 우리 나라[東國]의 극동(極東)이다. 지금 내가 다행히 한 모퉁이에 가 보았으니 그 극(極)한 곳을 극진히 미루어 보면 다른 것도 돌이켜 알 수 있다. 하물며 유사(流沙)와 같이 상대하고 있는 곳은 어떠하겠는가? 그 위에서 술잔을 들며 기(記)하기를 청하므로 기꺼이 쓴다. 지정(至正) 임신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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