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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記) 영광 신루 기(靈光新樓記) -이색(李穡)-

천하한량 2007. 3. 24. 05:57

기(記)
 
 
영광 신루 기(靈光新樓記)
 

신전자 군(申展子君)이 영광(靈光) 군수가 되어 민폐를 없애고 인화(人和)로 인도하니 정무(政務)가 한가하였다. 공관(公館)을 둘러보니 누거(樓居)가 아직 없었다. 신군이 말하기를, “누거란 막히고 답답한 마음을 화락하게 하고 정신을 상쾌하게 하는 것이지, 미관(美觀)을 위하는 것이 아닌만큼 사람에게 아주 유익한 것이다. 하물며 내가 이 고을을 지키면서 왕인(王人 왕명을 받고 오는 사자)을 예로 대접하게 되니, 왕인은 국사에 분망하여 매양 미치지 못할까 생각하므로, 뜻은 진실로 잠깐 동안의 즐거움을 얻고자 하는 것인데, 지금 너의 고을은 이미 답답한 마음을 화락하게 할 수가 없고 더욱 누거가 없으니, 어찌 정신을 상쾌하게 할 수 있으리오. 나는 오직 왕인을 섬기는 예를 다하지 못할까 두려워하니, 너희 부로(父老)들은 누거 세우기를 도모하라.” 하였는데, 이에 여럿이 달려와 다투어 힘써서 재목을 모으고 공역을 다스려서 열 달 사이에 아름답게 한 고을의 훌륭한 집이 되었으니, 신군은 유능한 사람이다. 내가 생각하건대, 영광이 신군을 얻음과 신군이 신루(新樓)를 지음이 옛날이 아니고 지금에 와서 된 것이 어찌 우연한 일이겠는가. 대나무는 푸르고 연꽃은 향기로우며 산빛과 바다 기운은 멀고 가까운 데서 서로 비추는데, 물소리가 또 그 사이에서 들려온다. 무릇 이 누에 오르는 이는 그 일에 분망함을 잊을 뿐 아니나, 물 흐르는 소리가 없었다면 또 어찌 여기에 이르는 다행함을 얻었으리요. 진실로 그 경지가 기이하다. 같은 해에 권길부(權吉夫)가 신군의 뜻으로써 나의 글로 기하기를 청하므로, 내가 허락하고는 틈을 내지 못하다가 이번 어버이를 뵈오러 집에 가니 독촉이 급하여 곧 그 자리에 서서 쓰게 되었다. 글의 졸렬함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다만 그 왕인(王人)된 이에게 고하는데, 한갓 말하기를, “나는 왕인이니 누가 감히 나를 모멸할 것이냐.”하지 말고, 방탕하게 놀지 말며 욕심대로 하지 말고 고을을 지키는 이의 뜻을 저버림이 없으면 가할 것이다. 지정 을사년에 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