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奏議)
진 시무 서(陳時務書)
이색(李穡)
신은 듣자오니, “국가가 일이 없을 때에는 공경의 말이 깃털보다 가볍고 국가에 일이 있을 때는 필부(匹夫)의 말로 태산보다 더 무겁다.” 하였으니, 신이 필부의 미천한 존재임을 무릅쓰고 과감한 말씀을 드리오니, 미치고 망령된 죄는 의당히 놓아 줄 수 없는 것이오나, 방울진 물이나 티끌만한 가느다란 것도 높은 메와 깊은 바다에 자원이 되는 것이요, 꼴꾼의 말도 성인이 취하는 바이니, 전하께서 굽어 채택해 주신다면 종묘에 다행이 될 것이요, 사직에도 다행이 될 것입니다.
신이 듣기로는, 경계(經界) 의 바름이나 정전(井田)의 고른 것은 사람을 다스림에 있어서 선무(先務)가 된다고 하였습니다. 오직 우리 조종(祖宗)께서 업을 비롯하고 전통을 드리운 제도와 그를 지키는 세밀한 규모가 이르지 않는 곳이 없었으나, 4백 년 말류의 폐해가 어찌 없었으리오마는, 그 중에 전제(田制)가 더욱 심하여 경계가 바르지 못하여 호족(豪族)이 모두 겸병하였던바 “까치가 살고 있는 집에 비둘기가 거한다.”는 말이 모두 이와 같은 것입니다.
유사(有司)가 비록 공문(公文)에 붉은 글씨의 선후로써 빈주(賓主)를 정하였으나, 만일 갑(甲)이 유력하다면 을(乙)에게서 무리하게 빼앗는 것인데, 하물며 공문의 붉은 글씨도 생선의 눈이 구슬에 섞여 있는 것이 많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이 농토를 받은 집들은 모두 임금의 신하로써 힘을 다한 공신의 자손이 이것으로 농사를 대치함이니, 저편에서는 비록 잃어버렸으나, 이편에서는 얻음이 되는 것이니 이는 마치 초(楚) 나라 사람이 활을 잃었는데, 초 나라 사람이 얻은 것같아서 오히려 가할 것입니다마는, 다만 백성이 하늘처럼 믿고 있는 것은 밭에 있을 것이니, 두어 이랑의 밭을 해가 다하도록 부지런히 일하여도 부모 처자의 부양도 오히려 넉넉하지 못한데도 불구하고 조세를 거두는 자가 이미 이르렀으니, 만일 그 밭의 주인이 한 사람만이라면 다행이지만 더러는 서너 집도 있고, 일고 여덟 집도 없지 않으니 진실로 힘이 서로 같고 형편이 서로 대적이 될 수 있다면 누가 즐거이 양보하겠습니까.
이러한 관계로 그 조세를 장만하여 부족하면, 또 꾸어서 보태어 바치는데, 무엇으로써 그의 부모를 봉양하며, 무엇으로써 그의 처자를 살리겠습니까. 백성이 곤궁에 빠지는 것이 곧 이에서 말미암는 것입니다.
《시경(詩經)》에 이르지 않았습니까. “부(富)한 사람은 그럴 수 있겠지마는, 이 간난하고 의로운 자가 불쌍하다.” 하였습니다. 전하께서 자리에 오르시던 처음에 전제를 급무로 삼으셨고, 이어서 교지를 내리시되 역시 이 일에 대하여 권권하셨던 바, 깊은 꾀와 깊은 생각이 임금의 마음에서 나왔으니, 아, 거룩하옵니다. 저는 생각하기를 고기를 보고 부러워하느니보다는 그물을 맺는 것이 좋을 것이며, 비파 기둥에 풀칠하고는 어찌 곡조를 고를 수 있겠습니까. 이와 같이 그 법을 고치지 않고는 그 폐해를 제거할 수 없을 것이니, 빌건대 갑인(甲寅)년에 마련하였던 안(案)으로 근본[柱]을 삼되 공문(公文) 중에 붉은 글씨로 기록된 것을 참고로 하여 쟁탈한 자의 것은 이것으로 바로잡고, 새로 개간한 자의 땅은 이로써 측량하여, 새로 개간한 땅은 세금을 매기고 남사(濫賜)한 밭은 삭감시킨다면 국고에 들어오는 것이 증가될 것이요, 쟁탈된 밭을 정리하여 농민들을 안정시키면 민심이 매우 즐거울 것이니, 민심이 즐겁고 국고의 수입이 증가되는 것이란 임금이 간절히 하고자 하는 바이거늘, 전하께서 무엇을 꺼려서 하시지 않습니까.
혹은 이르기를, “부호(富豪)의 밭은 갑자기 빼앗을 수 없겠고, 해묵은 폐해는 갑자기 고칠 수 없는 것이다,” 하나, 이것은 변변치 못한 임금의 소행일 것이니 전하께 바라는 바는 아니옵니다. 이에 대한 시행하는 방법이라든가 수정하는 일에 있어서는 보좌하고 있는 대신 중에서 반드시 계획을 세우는 자가 있을 것이니 어찌 신진(新進) 소생(小生)으로써 감히 망령되이 의논할 수 있겠습니까마는, 이 일을 행하고 행하지 못하는 것은 오직 전하의 성의의 유무에 달려 있을 뿐입니다.
근년에 왜구(倭?)가 강토(疆土)에 침입하여 성상(聖上)께 주야로 걱정을 끼치니, 세신(世臣)과 원로들이 이에 대한 처리 방안을 서로 꾀하여 그 요점에는 합의를 보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신이 아비의 상사를 당하여 바닷가에 살고 있으면서, 초야에서 생각한 꾀가 익숙하였습니다. 이제 계획으로써는 두 가지가 있을 뿐이니, 첫째는 육지를 지키는 것이요, 둘째는 바다 싸움인데, 수레로 강물을 건너지는 못할 것이요, 배로 뭍을 갈 수 없는 것과 같이 사람의 성품도 역시 이러한 것입니다. 되놈들은 그 성품이 추위를 잘 견디고 남방 사람들은 더위를 잘 견디는데, 이제 이 평민들은 물에 익숙하지 못하므로 배를 타기 전에 정신이 벌써 혼미하여 한 차례만 풍파를 겪으면 왼편으로 자빠졌다가 바른편으로 거꾸러져서 서로 뱃속에서 쓰러지기에 겨를이 없으니, 이렇게 앉았다 섰다, 나갔다 물러섰다 하며 적을 상대하여 용맹을 내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신은 생각건대, 뭍을 지키는 데는 평민을 징발하여 그 기계(器械)를 날카롭게 하여 요새지에 주둔하되, 군용(軍容)을 엄숙하게 하고 봉화(烽火)를 조심하여 왜인의 눈을 현란하게 하여야 할 것이니, 이것은 안렴사(按廉使)나 군수(郡守)로써도 족히 맡아 보살필 수 있을 것인데, 도순문사(都巡問使)가 여기에 쓸 곳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수령(守令)에게 굴욕이나 주고 비용을 허비할 따름입니다. 바다 싸움에 대한 방법은 신의 생각으로는 본국의 세 변방(邊方)은 바다에 가깝고 섬에 살고 있는 백성의 수가 무려 백만 명이나 되니, Ep를 타기도 하고 헤엄을 치기도 하는 것이 그들 장기(長技)이며, 그들은 또 농사나 누에로 일을 삼지 않고, 고기잡이와 소금구이를 업으로 삼았었는데, 요즈음 왜적의 침입으로 인하여 살던 곳을 떠나서 업을 잃었으니, 그 원망스런 마음이 뭍에 살고 있는 이들에 비해서 어찌 열 갑절만 되겠습니까. 한 필의 말을 달려 문서를 받들고 강을 따라 내려가서 군인을 모집하라면, 반드시 그 상(賞)을 희망하여 몇 천 명의 무리를 하루 아침에 얻을 수 있을 것이니, 그들의 장기를 이용하여 그들이 원망하는 적들을 친다면 어찌 이기지 못하겠습니까. 더구나 적을 죽이고 상을 얻는 것이 고기잡이와 소금 굽는 이익보다 낫지 않겠습니까. 또 추포사(追捕使)로 하여금 일을 맡아 보살피게 하되, 늘 배위에 주재하게 한다면 여러 고을이 편의를 얻을 것이요, 도둑이 패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니, 이 두 가지는 왜구를 막는 중요한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대개 뭍만을 지키고 바다 싸움을 하지 않으면 그들은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으로 알고 침입할 것이요, 바다 싸움만을 하고 뭍을 지키지 않는다면 저들은 혹시 불의에 나와서 그 해가 작지 않을 것이므로, 뭍을 지키는 것은 우리를 공고하게 함이요, 바다 싸움은 그들을 위협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다면 두 가지를 함께 얻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문무(文武)는 그 하나만을 폐할 수 없으니, 문을 경(經)으로 삼고 무를 위(緯)로 삼는 것은 천지의 상도입니다. 당(唐)ㆍ우(虞) 3대(代)의 일은 먼일이므로 이야기할 것도 없지마는, 또 서한(西漢)과 동한(東漢)을 말한다면, 고조(高祖)가 초 나라와 각립되었을 때에도 소하(蕭何)같은 이가 있어 꾀를 운용하고 말을 달리고 땀을 흘리는 수고도 없었으니, 이는 문(文)이었고, 한신(韓信)같은 이가 있어서 병력을 나누어 전쟁에서의 공로가 있었으니, 이는 무(武)였던 것입니다. 광무(光武)가 중흥을 이룩할 때에는 창을 버리고 문예를 강론하고 말[馬]을 쉬고는 도를 논하였으니, 그는 문무를 병용하여 경(經)과 위(緯)가 함께 베풀어져 후세의 미칠 바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이로써 본다면, 비록 전투가 벌어졌을 때에도 강론을 폐하지 않았는데 하물며 승평 시대를 만났으나 전쟁에 대한 예비를 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선왕께서 이러한 것을 알고서 집을 세우고 설치하였고, 문을 닦고 무를 중하게 여겼으되 일찍이 한 가지 [문(文)]를 위해서 다른 것[무(武)]을 잃지 않았던 것입니다. 우리 나라는 점점 태평이 이룩되고 그 위에 문화가 동으로 점차 들어와 승평한 지 백 년 만에 백성이 싸움을 알지 못하고, 만호부(萬戶府)는 중국에서 세운 것이었으나, 이미 빈 간판만 남아 있으며, 모든 위(衛)의 벼슬은 부호가가 점유한 바 되었고, 또 군사도 없으니 지금을 옛것에 준한다면, 비록 무(武)를 중요시한다 하더라도 무를 쓸 실제는 없을 것입니다.
요즈음 왜적으로 말미암아 내외가 모두 소연(騷然)하여 거의 토착(土著)하지를 못하고, 또 중원(中原)의 백성이 제법 왜적의 비린내에 물이 들었다는 말을 들었으나 오히려 하늘이 원(元) 나라의 깊은 뜻과 우리 임금이 생민을 기르는 넓은 은덕을 돌보심을 힘입어 이제 안정이 되어 낭패의 경지에 이르지는 않았으나, 편안한 데 처하면서도 위태함을 생각하면 비록 가득찼다 하더라도 넘치지 않을 것이니, 걱정하여 미리 막는다면 어떤 것이고 꾀하지 못할 것이 있겠습니까. 진실로 구습(舊習)을 버리지 않다가 하루아침에 일이 생긴다면 무엇으로써 방비하겠습니까. 옛날 초 나라에서는 원숭이를 잃으니 그 재앙이 나무숲에까지 이르렀고, 성문에 불이 일자 그 재앙이 못 속의 고기에까지 미쳤다 하였으니, 어찌 편안히 앉아서 구경만 할 수 있겠습니까. 하물며 우리 나라는 동으로는 일본(日本)이 있고, 북으로는 여진(女眞)이 있으며, 남으로는 절강(浙江 중국 동남부 연안에 있는 성으로 가는 배가 있어서 다만 중국을 통하는 길만 있으며, 서로는 연산(燕山)으로 달아날 수 있으니, 왜적이 이르자 벌써 창황하여 어쩔 줄을 모르게 되었습니다. 만일 절강의 도둑에게 군대를 청하여 배를 타고 오거나, 여진 사람이 남으로 그 기병(騎兵)을 돌리게 되면, 쟁기를 메었던 백성이 어찌 갑자기 적을 막는 군졸이 되겠습니까. 만일 창졸간에 사변(事變)이 일어나서 사람이 모두 엎어진다면 사직을 보호하고 임금을 붙들 방법이 없을 것입니다.
매양 이 일을 생각하면 적이 스스로 한심스러웠습니다. 신은 원하건대, 무과(武科)를 설치하되 모든 위(衛)의 군사로 보충하게 하여 무용(武勇)으로 시험하며 기술을 연마하여 벼슬을 주어서 그 기운을 돋구어준다면 나라가 풍족하고 병정이 정용하며 사람마다 쓰기를 즐겨하여 거의 다른날의 후회됨이 없을 것입니다.
옛날 가의(賈誼)는 문제(文帝)가 무사할 때를 당해서도 긴 한숨을 짓고 슬프게 울었는데, 하물며 섶에 불이 이미 붙었음에도 오히려 그 위에서 잠을 잘 것입니까. 차라리 미신(微臣)으로 하여금 요망스런 말씀을 드렸다는 죄를 얻게 할지라도 성조(聖朝)로 하여금 아무런 방비가 없었다는 기롱을 얻지 않게 하는 것이 신의 소원이옵니다.
공자(孔子)의 도는 크고도 멀어서 신이 능히 찬양할 바가 못 될 것이며, 고금에 문묘(文廟)와 학교를 숭봉하는 규모도 역시 신이 능히 다 알아 논할 바는 아니겠습니다마는, 국가에서 안으로는 성균(成均) 십이도(十二徒)와 동서의 두 학당을 두었고, 밖으로는 주(州)와 군(郡)에 역시 각기 학교를 두었는데, 그 규모가 굉원(宏遠)하고 절목(節目)이 치밀하였으니, 조종(祖宗)의 뜻을 살피건대 유도(儒道)를 높이고 중시함이 깊고도 절실하였던 것입니다.
대개 국학(國學)은 곧 풍속 교화의 근원이요, 인재는 곧 정치 교육의 근본이어서, 북돋아주지 않으면 그 근본이 반드시 굳지 못할 것이며, 깊이 파지 않으면 그 근원이 반드시 맑지는 못할 것입니다. 옛 제왕으로써 아름다운 이름을 천하에 끼친 이는 역시 이에 뜻을 두었을 따름입니다.
전하께서는 성인의 자질로써 일찌기 성인의 도를 연모하고 학교의 폐함을 슬프게 여겼으므로, 드디어 수즙(修葺)하라는 명령을 내렸으니, 이는 비단 우리 유도에서의 다행일 뿐 아니라 실제로 생민의 복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생도(生徒)들은 해산되고 재사(齋舍)는 기울고 무너졌으니, 이는 연유가 있는 것입니다.
신은 청컨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옛날의 배우는 자는 장차 성인이 되려 하였으나, 지금의 배우는 자는 장차 벼슬을 구하였으므로, 시(詩)를 외우고 서(書)를 읽었다 하나 도를 즐겨함이 깊지 못하여, 번화(繁華)를 다투는 것이 이미 승하였고, 문장을 아로새기고 글귀를 좇는 데에 마음을 지나치게 썼으니, 뜻을 정성스럽게 하고 마음을 바로잡는 공부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혹은 변해서 다른 데로 가서 붓을 던져버렸다고 과장하였고, 더러는 늙어서도 이룩함이 없이 그 몸을 그르쳤다고 탄식하였으며, 그 중에서 영매 걸출하여 선비의 종장(宗匠)이 되고 나라의 주석(柱石)이 된 자 몇 사람이 있었겠습니까.
《시경》에 이르기를, “개제한 임이여 어찌 선비를 일으키지 않으시나요.” 하였으니, 선비를 일으키는 그 묘는 실로 임금의 덕화에 있는 것인데, 사류의 폐가 이렇고서야 위에 있는 사람으로써 어찌 그 책임을 사피할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벼슬에 오르는 이는 반드시 급제할 필요가 없었으며, 급제한 이는 반드시 국학에 나와야만 되는 것도 아니었으니, 누가 즐겨 지름길을 버리고 갈랫길을 달리겠습니까. 무리[徒]가 해산되고 재사가 퇴락해짐은 실로 이런 까닭입니다.
신은 엎드려 비옵건대 밝게 조제(條制)를 내리시어 밖으로는 향교, 안으로는 학당에서 그 재목을 고사하여 십이도(十二徒)에 올리게 하고, 십이도에는 또 종합적으로 고사하여 성균(成均)에 올리되 시일을 제한하여 그 덕망과 학예(學藝)를 부과시키고 예부(禮部)에 올려서 합격하는 예에 따라 벼슬을 주고, 불합격자에게도 역시 출신의 기회를 주고, 벼슬에 있으면서 과거 보려는 이를 제외하는 그 나머지 국학생이 아닌 자는 고시에 참가하지 못하게 하면, 옛날에는 불러서도 오지 않던 것이 이제는 휘몰아 내어도 가지 않을 것이니, 신은 장차 인재가 배출되어 전하께서 써도 다하지 못할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불씨(佛氏)가 중국에 들어왔을 제, 왕공(王公)이나 사서(士庶)들이 높이 섬겨서 한(漢) 나라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날마다 새롭고 달마다 성하더니, 우리 태조(太祖)께서 집을 화하여 나라를 만드시니 사찰과 민가가 세 다섯이 서로 섞여 있었던 것이, 중세 이후로는 그 무리가 더욱 번성하여 오교(五敎)와 양종(兩宗) 이 이굴(利窟)로 화하여 시내 곁이나 메 구비에 사찰 아닌 것이 없으니, 승려들도 비단 점점 비루해졌을 뿐 아니라, 또한 국가의 백성으로써 놀고 먹는 자가 많았으므로 식자가 매양 마음 아파하는 바입니다. 부처는 대성인(大聖人)이라 그의 호오(好惡)가 반드시 사람과 같을 것이거늘, 어찌 이미 죽은 영(靈)인들 그 무리가 이와 같은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겠습니까.
신은 엎드려 빌건대, 밝게 금조(禁條)를 내리시어 이미 중이 된 자에게도 역시 도첩(度牒)을 주고, 첩이 없는 자는 곧 군대에 편입시킬 것이며, 새로 창건한 절은 아울러 철거를 명하되 철거하지 않는 자는 곧 그 곳 수령에게 벌을 내린다면 양민으로 하여금 모두 중이 되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신은 듣건대, 전하께서 부처를 봉사하는 정성이 더욱이 열성(列聖)에 비하여 독실하시다 하니, 그 나라 운명이 길 것을 기도함은 심히 성한 일이요, 매우 아름다운 일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신의 어리석은 생각으로 저윽히 생각하건대 부처는 지극히 성스럽고 지극히 공평되어 받들기를 극도로 아름답게 한다 해서 기뻐하지도 않으려니와, 극도로 엷게 대우한다 하더라도 노하지도 않는 것인데, 더구나 그들 경(經) 가운데에, 분명히 말하기를 “공덕을 보시하는 것이 경을 읽는 것보다 못하다.” 하였습니다. 정사를 처리하시는 나머지 정신이 한가하시거든, 방등(方等)에 주목하시고 돈법(頓法)에 유심하심은 불가함이 없을 것이로되, 다만 윗자리에 있는 이는 사람의 본받음이 되는 것이요, 허비하는 자는 재산이 마르는 것이니, 미묘할 때에 막으며, 점차 전염을 예방하여 가히 조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공자는 말하기를, “귀신을 공경하여 멀리하라.” 하였으니, 신은 원하건대 부처에 대해서도 또한 마땅히 이렇게 하여야 할 것입니다. 신은 또한 임금의 뜻을 거슬리면 반드시 머리가 부서질 줄을 모르는 바는 아니옵니다마는, 다만 잔 넘치는 물이 점차 하늘을 박찰까 저어하여 죽음[萬死]을 무릅쓰고 한 말씀을 아끼지 않는 바입니다.
신은 또 생각하건대, 성하고 쇠함이 서로 대체함은 이치의 필연한 것입니다. 우리 국가가 두 대나 어린 임금에 배신(倍臣)이 집권하여 기강이 떨어졌으므로 사람은 그 다스림을 생각하니, 전하께서는 총명하고 너그러우시므로, 가히 하염이 있을 만한 자질로써 어지러움이 극도에 달하여 다스림을 생각할 때를 당하였으니, 이는 가히 하염이 있을 만한 때인 만큼 의당히 어진이를 씀에 갈급할 것이온데, 아직 폐백을 묶어 어진이를 맞이함에 급급함을 보지 못하였고, 의당 정치 보살핌에 급할 터이온데 아직 뜰의 횃불이 밝았음을 보지 못하였으니, 어질고 능한 이가 어찌 다 등용되었으며 간악하고 사특한 자가 어찌 다 물러났으리오. 한 정사도 행했다는 말은 듣지 못하고 한갓 백성의 소망만 어긋났다 하겠습니다. 이러고도 그 다스림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은 마치 뒷걸음질하면서 전진을 도모하는 것과 같으며, 남쪽으로 수레바퀴를 돌려서 연 나라에 가려는 것과 같으니, 신은 심히 전하를 위해서 부끄럽게 여기는 바입니다.
《역경(易經)》에 이르기를, “하늘의 행함은 건(健)하니, 군자는 이로써 스스로 강해서 쉬지 않는다.” 하였으니, 마음을 닦는 요지나 정치를 하는 방법이 모두 이에 지나는 것이 없사오니, 오직 전하께서는 이에 마음을 머물러 주옵소서.
[주D-001]경계(經界) : 농토의 정리 분배를 말한 것이니, 곧 전제(田制)이다.
[주D-002]남사(濫賜) : 합법이 아니고 위에서 내리는 것이다.
[주D-003]오교(五敎)와 양종(兩宗) : 화엄종(華嚴宗)의 설에, 불교는 다섯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일은 소승교(小乘敎)요, 이는 시교(始敎)요, 삼은 종교(終敎)요, 사는 돈교(頓敎)요, 오는 원교(圓敎)인데, 그 중에 종교는 점교(漸敎)라고도 일컫는다. 돈교ㆍ원교ㆍ점교 삼자는 대승교(大乘敎)라 통칭(通稱)하였고, 양종(兩宗)은 천태종(天台宗)ㆍ조계종(曹溪宗)을 말함이다.
[주D-004]방등(方等)에 돈법(頓法) : 방등은 5교의 제2ㆍ제3과 같고 돈법은 돈교(頓敎)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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