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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贊) 상찰 찬 병서 (上札贊 幷序 ) -이색(李穡)-

천하한량 2007. 3. 24. 05:46

찬(贊)
 
 
상찰 찬 병서 (上札贊 幷序 )
 

성균 사예(成均司藝)인 신 도(臣濤)가 색(穡)에게 말하기를, “도가 못난 것은 그대도 아는 바이다. 재주는 임무를 수행할만 하지 못하며 학문은 자문에 응할만하지 못하다. 그런데도 임금의 은총을 받자와 임금을 가까이 모시는 화려한 관직에 발탁되었으니 정말 만번 죽을지라도 보답할 길이 없음을 두려워하였다. 이번에 또 서연(書筵)에서 필묵을 다루시던 여가에 성명(姓名)과 자호(字號), 모두 여덟 자(字)를 크게 써서 내려 주셨다. 절하고 받아가지고 돌아왔으나, 낮과 밤으로 송구스럽게 여기고 있다. 그 어쩌면 특별한 은총을 이렇게까지 입을 수 있으리오. 인하여 표장을 꾸며서 장차 사대부들에게 청하여 임금의 거룩한 덕을 노래하며 칭송하는 글을 받아서 이 못난 사람의 이름으로 하여금 영구한 세대에 전하려 한다. 그대가 먼저하지 않겠는가. 또한 나의 이름을 도(濤)라고 지은 것도 그대요 자(字)를 장원(長源)이라한 것도 그대요, 나복산인(蘿?山人)이라는 호도 그대의 뜻에서 나온 것이니 그대는 그 은혜를 끝까지 베풀어 주기를 바란다.” 하였다. 신 색(臣穡)이 보옵건대 임금께서 때로 여러 신하에게 글씨를 써서 내리시는데 혹은 이름, 혹은 자(字), 혹은 호뿐이었고 이름과 자와 호를 이렇게 완전히 구비하게 써 주신 적은 없었다. 김군이 놀랍고 기쁨이 소망에 넘치는 것이 어찌 당연하지 않겠는가. 감히 전일에 이름을 지어준 의의를 부연하며 이것이 임금께 사랑을 받게 된 이유임을 밝혀서 거룩한 덕을 노래하여 칭송하는 근본을 삼으려 한다. 군이 처음 진사(進士)에 합격하고 나서 나에게 자기가 지은 문장을 가지고 와서 고쳐 달라 하기에 읽어 보았더니 으젓하게 작가의 풍이 있었다. 열흘, 이후 한달을 넘지 않아, 그의 문장은 더욱 발전되었다. 나는 너무나 기뻐하였다. 그가 이름을 지어 달라고 청하기에 곧 그의 이름을 “도(濤)라” 하였으니 그의 문장을 칭찬한 것이요 자(字)를 청하기에 곧 자를 “장원(長源)”으로 하게 하였으니 그것은 근본을 알아야 된다는 것을 경계함이다. 그 뒤에 과연 높은 과거에 올라, 어사(御史)가 되고 정언(正言)이 되어 재주와 명성이 날로 진전되었다. 이번 황제가 새로 즉위하신 뒤에 천하의 선비를 금릉(金陵)에 모여서 과거를 보이게 하였다. 고려의 선비들은 바다를 건너 가기를 꺼려하여 모두들 겁을 내고 피했는데 군은 혼자서 단연히 웃으며 이르기를, “나는 나의 문장을 시험해보는 것 뿐이니 합격이 되고 안되는 것과, 죽고 사는 것은 다 운명이다. 무엇을 걱정하리오.” 하고 가을에 실시하는 과거에 응시하여 과연 회시(會試)에 합격하고 또 천자의 궁전에서 대책(對策)으로 시험을 치러서 합격함에 있어서는 높은 등급으로 합격되어 25등이 되었다. 이 과거에서 합격자가 모두 1백 20명인데, 김군의 위에 올라간 사람의 수가 이렇게 얼마 안되는 것을 보면 군의 재주와 역량을 알 수 있는 일이다. 구현승(丘縣丞)에 임명하니 사양하여 이르기를, “신은 말이 통하지 못하고 또한 부모가 모두 늙었사오니 돌아가서 봉양하게 하여 주옵소서.” 하여 드디어 놓여서 돌아오게 되었다. 임금께서는 “유능하다.” 칭찬하셨다. 이러므로 그를 대우하심이 특히 후하였고 이번에 임금께서 써 내리신 글씨도 이렇게 완전히 구비한 것은 김군의 재주와 학문이 일반에게서 뛰어남을 칭찬하신 것이다. 그의 호를 나복산인(蘿?山人)으로 한데 대하여는 세 가지의 설명이 있다. 김씨(金氏)는 본시 염주(鹽州) 출신이요 동복(同福)은 외가(外家)인데 별호를 나복(蘿?)이라 한다. 군의 부모가 이 곳에 거주하였으니 곧 그의 출신지다. 또한 무우라는 것이 그다지 신기한 것도 아니지만 싫어하는 것도 아니다. 사람에게 덕은 되어도 쓰는데 해로울 것은 없다. 사람으로써 이와 같게 된다면 또한 이 세상에서 무난히 살 수 있을 것이다. 군의 눈썹과 눈이 설천민(?天民)이라는 사람과 비슷하였다. 어떤 고관이 길에서 김군을 만나서 설천민의 안부를 물었는데 군은 건성으로 대답하고 물러 갔다. 이 소문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비웃었다. 설씨(?氏)는 위굴[回?] 출신이다. 그러므로 친구들이 모두 군을 가리키어 “위굴”이라 하였다. 위굴 사람은 성품이 정결하여 의복을 깨끗하게 입으려하고 욕심도 잘 참는다. 좋은 음식은 없고 먹는 것이 무우인데 그 남은 것도 버리지 않는다. 위굴과 무우에 대한 얘기는 대개 이러하였다. 임금께서 일찍 이르기를, “김도(金濤)는 설첩해(?帖該)와 닮았다.” 하였는데 첩해는 천민의 숙부다. 그런즉 그를 나복산인이라고 호를 지은 것은 어찌 신(臣)의 의사에서만 나온 것이겠는가. 이것이 김도 장원 나복산인(金濤長源蘿?山人) 여덟 자(字)의 부(賦)가 임금의 글씨로 나타나서 세상에 드문 영광이 된 것이다. 모든 신하들로서는 누가 권면하여 임금께서 어진 인재를 격려하시는 거룩한 마음에 부합되게 하지 않겠는가. 글씨의 법을 연구하고 임금의 덕을 선양하여 삼가 절하고 머리를 조아리며 찬(贊)을 지었다. 그 글에 이르기를,
시국이 바야흐로 태평하오니 임금의 심경도 안정하시도다. 신하의 재능을 권장하기 위하여 그에게 은총을 내려주셨다. 가벼운 서리 흰빛을 펼쳤는데 빛나는 이슬 윤기가 흐르도다. 붓끝이 돌아가는 곳에 옥소리 금소리 울려나는 듯, 하늘에는 별들이 비치고 있는데 귀신도 으슥한 곳에서 울고 있구나. 신묘한 그 형태 절정에 달했으니, 말로서는 형용하지 못하리로다. 생각건대, 임금의 덕은 바람이 부는 것과 같아서 그가 부딪치는 모든 곳에 소리가 난다. 혹시라도 이것을 모른다면 짐승같이 사나운 것이로다. 오직 관직에 있는 모든 사람은 나의 말을 들어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