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언장 쓰기 (중)
2. 동양의 산자락 그늘에 남겨진 유언 답사
< 장면 10 달기의 죽음 >
달기는 강자아의 병사들에게 붙잡혔을 때, 큰소리로,
"나에게는 공은 있으되 죄는 없다. 만약 내가 주왕을 유혹하지 않았더라면 너희들이 어찌 상나라를 멸망시킬 수 있었겠느냐?"
라고 외쳤다고 한다. 참으로 뻔뻔스럽기 그지 없는 여인이다.
목숨을 구걸하기 위하여 조금 전까지도 서로의 육체를 탐익하며 끝 간데 없는 성의 향연의 나락에서 서로를 불태웠던 주왕을 그가 죽자 한 순간에 배신하며 상 나라를 멸망시킨 것이 자기가 주왕을 유혹한 덕이라고 외치는 달기의 모습에서 참으로 간악한 여인의 무서운 생명 집착을 얼핏 보게 된다.
<장면 11 항우와 우희가 부른 죽음의 노래>
장자방은 밤이 깊자 계명산에 올라가 초나라 군사들이 있는 진영을 향해 애절하고 곡진한 가락으로 통소를 불었다. 초나라 군사들로 하여금 고향 생각이 나게 하여 사기를 떨어뜨리기 위한 계략이었다. 고향 생각에 젖어 있던 초나라 군사들은 그 슬픈 가락을 듣자 더 이상 싸울 마음이 없어져 눈물을 흘리며 하나 둘 한나라 군의 진영으로 넘어가고 말았다.
항우는 그날 밤 한나라 군사가 에워싼 사면초가(四面楚歌)의 자리에서 주연을 베풀어 우미인과 마지막 술잔을 기울이면서 이렇게 탄식한다.
해하가(垓下歌)
역발산혜기개세(力拔山兮氣蓋世) 힘은 산도 뽑을 만했고, 기개는 세상을 휩쓸고도 남았지
시불리혜추불서(時不利兮추不逝) 형세 불리하니 오추마조차 나아가질 않네
추불서혜가나하(추不逝兮可奈何) 오추마 같은 것이야 어찌해 본다지만
우혜우혜나약하(虞兮虞兮奈若何) 우미인아, 우미인아, 너를 어찌 할거나?
시불리혜추불서(時不利兮추不逝) 형세 불리하니 오추마조차 나아가질 않네
추불서혜가나하(추不逝兮可奈何) 오추마 같은 것이야 어찌해 본다지만
우혜우혜나약하(虞兮虞兮奈若何) 우미인아, 우미인아, 너를 어찌 할거나?
피를 토하듯이 탄식하는 항우의 아픈 마음을 헤아리고 우미인은 울면서 이렇게 우희가를 불렀다. 노래를 마치자 이별보다 차라리 죽음을 택하여 항우의 옆구리에 찼던 칼을 뽑아 자신의 가슴을 찔러 자진하고 만다.
우희가(虞姬歌)
漢兵己略地 (한병기략지) 한나라가 이미 초 땅을 덮었고
四面楚歌聲 (사면초가성) 사면은 온통 초나라 노래인데
大王義氣盡 (대왕의기진) 대왕은 의기조차 이미 다하니
賤妾何聊生 (천첩하료생) 내 구차히 살아서 더 무엇하리
31세의 절세(絶世)의 영웅(英雄) 항우는 오강(烏江)에 이르러 그의 애마는 강물로 뛰어 들고 그도 자기 목을 찔러 자결하여 우미인의 뒤를 따른다.
< 장면 12 여포의 죽음 >
한편 여포는 조조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유비를 향해 말했다.
"공은 좌상객(座上客)이 되고 나는 계하수(階下囚)가 되었구려. 우리 사이에는 과거의 정리가 있는데 어찌하여 날 위해 한 마디도 안 해주는 것이오?"
유비는 그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조조가 돌아와 자리에 앉자 여포는 큰 소리로 말했다.
"조공의 가장 큰 근심거리가 이 여포였는데 지금 내가 항복했으니 아무 근심도 없게 되었소이다. 오늘 이후로 내가 조공의 오른팔이 되어 돕는다면 천하를 평정하는데 어려움이 없을 것이 아니오? 부디 거두어 주시오!"
여포의 말에 모두 놀라 안색이 변했다. 천하의 여포가 조조에게 목숨을 구걸하고 있는 것이다. 방금 전 그의 수하였던 진궁이 스스로 형장으로 걸어가는 것을 본 사람들은 한결같이 이를 개탄해마지 않았다.
조조는 유비를 돌아보며 물었다.
"어떻게 하면 좋겠소?"
여포는 간절한 눈으로 유비를 바라보았다. 그는 유비가 자신을 위해 좋은 말을 해줄 것으로 믿었다. 그런데 유비의 대답은 그의 염원과는 너무나 다른 것이었다.
"대공께서는 정공과 동탁의 일을 잊으셨습니까?"
정공이란 여포가 모시던 정원(丁原)을 말하는 것이다. 당시 여포는 정원을 주군으로 모시고 있었으나 이숙의 꾐에 빠져 정원을 죽이고 동탁의 오른팔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여포는 두 번째 주군인 동탁도 죽인 바 있었다. 유비가 정원과 동탁의 일을 잊었느냐고 물은 것은 여포가 배신을 밥 먹듯이 한다는 것을 일깨운 것이었다.
조조는 물론 바보가 아니었다. 그는 처음부터 여포를 살려줄 마음이 터럭만큼도 없었다. 그러면서도 물어본 것은 유비를 표면에 내세움으로써 자신이 뒤로 빠지려는 의도였다.
"저놈을 끌어내 목을 매달아라!"
조조의 명이 떨어지자 여포가 버럭 소리쳤다.
"유비 이놈아! 정말 신의 없는 놈이구나! 내가 전날 화살로 수술을 쏴 구해준 일을 잊었단 말이냐? 네놈이 어찌 이럴 수 있단 말이냐!"
그때 누군가 노성을 내질렀다.
"여포 이놈아! 죽을 땐 당당하게 죽어야지, 그게 무슨 추한 꼴이냐?"
모두들 고개를 돌려보니 장요가 끌려오며 외친 것이었다. 여포의 수하인 장요의 눈에도 목숨을 구걸하는 여포의 모습이 보기 싫었던 것이다. 조조는 눈살을 찌푸리며 명을 내렸다.
"지금 당장 여포의 목을 매단 후 수급을 내다 걸어라!"
여포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그는 도수부들에게 번쩍 들린 채 형장으로 끌려갔다. 천하제일의 고수로 대륙을 질타하며 호웅들의 간담을 써늘하게 했던 그였으나 결국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말았다. 무림의 큰 별 하나가 허무하게 떨어진 것이다. <호유삼국지 중에서>
<장면 13 제갈공명의 유언>
촉의 건흥 12년(234) 봄, 제갈양은 전군을 인솔하여 사곡도에서 출병하였는데, 유마(流馬)로 군수물자를 운반하였으며, 무공현(武功縣) 오장현(五丈縣)을 점거하고, 사마의와 위남(渭南)에서 대치했다.
”아름다운 밤이다.”
공명은 군막사를 나가 별들이 쏟아질 듯 찬란한 밤하늘을 바라보다가 자신의 별자리에 눈이 멈추어졌다.
”강유를 불러라 ”
”아름다운 밤이다.”
공명은 군막사를 나가 별들이 쏟아질 듯 찬란한 밤하늘을 바라보다가 자신의 별자리에 눈이 멈추어졌다.
”강유를 불러라 ”
“강유, 오늘밤 천문을 본 결과 내 수명이 다했구나. 보아라. 삼대성좌(三臺星座)에 객성(客星)의 빛이 강하고 주성(主星)은 희미하니 주성을 보좌하는 별들도 빛을 잃고 있다. 이는 곧 내 수명이 다했다는 의미다.
생명이 있는 것은 반드시 스러지는 법 슬퍼할 일도 두려워할 일도 아니다.
이제 자연으로 돌아가는가...”
생명이 있는 것은 반드시 스러지는 법 슬퍼할 일도 두려워할 일도 아니다.
이제 자연으로 돌아가는가...”
“강유, 이것들이 내가 이제껏 배우고 터득한 것을 기록한 것인데 어느새 24편이 되었다.
나의 병법, 나의 언급, 내가 발명한 기구들, 앞으로 만들려고 구상한 것들,
그 모두가 적혀있다. 이것을 물려줄 이는 강유 너밖에 없구나.
이걸 더욱 갈고 닦아 촉을 위해 충성을 다해다오.”
나의 병법, 나의 언급, 내가 발명한 기구들, 앞으로 만들려고 구상한 것들,
그 모두가 적혀있다. 이것을 물려줄 이는 강유 너밖에 없구나.
이걸 더욱 갈고 닦아 촉을 위해 충성을 다해다오.”
“ 아, 선제 폐하, 세 번이나 손수 찾아오셔서 신을 불러주신 은혜를 보답하고자 온 힘을 다해 오늘에 이르렀으나 하늘의 뜻은 거스를 수 없나이다. 이제 촉의 무궁한 안녕을 빌며 지금 폐하이신 유선님을 지킬 방도를 전력을 다해 마련해놓고 페하 곁으로 가는 일만 남았나이다.”
”강유, 진중을 돌아보고 싶다. 수레를 준비하라. 병사들에게 내가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가을 바람이 촉의 진영을 휩쓸고 지나가는 구나.“
공명은 의연하게 진중을 돌아보고 나서 강유에게 다음과 같은 말로 마지막 부탁을 한다.
”강유, 진중을 돌아보고 싶다. 수레를 준비하라. 병사들에게 내가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가을 바람이 촉의 진영을 휩쓸고 지나가는 구나.“
공명은 의연하게 진중을 돌아보고 나서 강유에게 다음과 같은 말로 마지막 부탁을 한다.
“내가 죽더라도 그 사실을 알려서는 안된다. 위(魏)의 사마의가 알면 전력을 다해 쳐들어 올 것이다. 그럴 경우를 대비해 목상(木像)을 만들어 놓았다. 그것을 이용해 적과 아군 모두에게 내가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면 큰 성과를 얻을 것이다. 만일 사마의가 쳐들어오면 그 목상을 진 앞에 세워라. 그러면 사마의는 놀라서 달아 날것이다.”
제갈양은 마지막으로 한중의 정군산(定軍山)에 매장하도록 유언했다. 산에 의지하여 묘지를 만들고, 묘지는 관을 넣을 수 있도록만 하며, 염할때는 평상시 입던 옷으로 하고, 제사 용품은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보아라!
저기 휘황하게 빛나고 있는 별이 내 별이다. 스러지기 전 마지막으로 빛을 내고 있구나.
이제 곧 떨어지겠구나...”
제갈 승상의 별이 갑자기 사선으로 길게 떨어지며 사라진다.
수레 좌석에 바르게 앉은 공명의 고개가 이때 툭 하니 한쪽으로 기울어지니 때는 촉의 건흥 12년 8월 23일 공명의 나이 쉰네 살이었을 때다.
저기 휘황하게 빛나고 있는 별이 내 별이다. 스러지기 전 마지막으로 빛을 내고 있구나.
이제 곧 떨어지겠구나...”
제갈 승상의 별이 갑자기 사선으로 길게 떨어지며 사라진다.
수레 좌석에 바르게 앉은 공명의 고개가 이때 툭 하니 한쪽으로 기울어지니 때는 촉의 건흥 12년 8월 23일 공명의 나이 쉰네 살이었을 때다.
공명의 주위는 일순간 정적에 휩싸이고 그의 타계를 확인한 부하들은 목놓아 울기 시작한다.
< 장면 14 명 태조 주원장의 유언 >
주원장(周元璋)은 1398년 윤5월 병으로 쓰러졌다가 계미일(癸未日) 병세가 잠시 호전되자 다음과 같은 마지막 말을 남겼다.
"위기에 대한 근심 걱정으로 하루도 게으름을 피지 않고 부지런히 일했다."
이것은 그의 고난에 찬 일생과 통치계층 내부의 격렬한 투쟁 속에 처해 있던 그의 심경을 표출한 것이다.
< 장면 15 정몽주의 단심가 >
이몸이 죽어 죽어 일백번(一百番) 고쳐 죽어
백골(白骨)이 진토(塵土)되어 넉시라도 잇고 업고
님향한 일편단심(一片丹心)이야 가실 줄이 이시랴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 26살의 샛파란 청년인 이방원은 졸렬한 논리와 방자한 위협으로 56세의 재상 정몽주를 포섭할려고 한다.
보통 우리가 단심가(丹心歌)라고 부르는 화답시로써, 고려 왕실 즉 구 질서에 일편단심을 지킨 정몽주는 선죽교에서 이방원의 지시를 받은 조영규의 철퇴에 맞아 죽고 만다.
구국의 열의로 부패한 고려왕조의 개혁의 선봉에 서 있던 정몽주와 정변으로 고려를 무너뜨리려는 이방원은 정몽주를 척살하므로써 피로써 얼룩지는 조선 왕조를 건설한다.
보통 우리가 단심가(丹心歌)라고 부르는 화답시로써, 고려 왕실 즉 구 질서에 일편단심을 지킨 정몽주는 선죽교에서 이방원의 지시를 받은 조영규의 철퇴에 맞아 죽고 만다.
구국의 열의로 부패한 고려왕조의 개혁의 선봉에 서 있던 정몽주와 정변으로 고려를 무너뜨리려는 이방원은 정몽주를 척살하므로써 피로써 얼룩지는 조선 왕조를 건설한다.
< 장면 16 퇴계 이황의 유언>
“저 매화에 물을….”
유독 매화에 대해 유별났던 퇴계(退溪)가 1570년 매화가 피는 겨울 음력 섣달 초순, 임종 직전에 남긴 말은 이것이었다.
“저 매화에 물을….”
단양에 홀로 남았던 두향은 수년 뒤 퇴계 이황의 부음을 듣고 앉은 채로 숨을 딱 멈춰버렸다고 한다. 너무나 짧고 아쉬웠던 연분 끝에 헤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사랑하고 존경하는 사람의 부음을 듣자마자 얼마나 놀랐었고 정한이 컸으면 그렇게 숨질 수도 있는 것인가?
두향에게서 받았던 매화에 물을 주라는 한마디를 임종 순간에 남긴 퇴계의 심저에는 혹시 보고 싶은 두향의 야윈 모습이 스쳤던 것은 아니었을까…
<장면 17 황진이의 임종>
죽음을 앞둔 진이는 지나온 자신의 생애를 되돌아 보면서 후회도 원망도 없는 고요한 체념이 가슴에 가득한 채 '내가 죽거든 울지도 말고 고악(鼓樂)으로서 상여를 전송해 달라'고 한 말은 일세의 명기다운 얘기이나 '생전에 업보로 관도 쓰지 말고 동문밖에 자기의 시체를 버려 뭇 버러지의 밥이 되게 하여 천하 여자들의 경계를 삼으라'고 한 것을 보면 너무도 자신을 잘 알고 있었던 한 여인의 가혹한 자학의 채찍이기도 했다.
<장면 18 서산대사의 입적>
이 보게, 친구!
살아 있는 게 무언가?
숨 한번 들여 마시고
마신 숨 다시 뱉어내고...
가졌다 버렸다 버렸다 가졌다.
그게 바로 살아 있다는 증표 아니던가?
그러다 어느 한 순간들여 마신 숨
내뱉지 못하면
그게 바로 죽는 것이지.
어느 누가,
그 값을 내라고도 하지 않는
공기 한 모금도
가졌던 것 버릴 줄 모르면
그게 곧 저승 가는 것인 줄 뻔히 알면서
어찌 그렇게
이것도 내 것 저것도 내 것,
모두 다 내 것인 양
움켜 쥐려고만 하시는가?
아무리 많이 가졌어도 저승길 가는 데는
티끌 하나도 못 가지고 가는 법이리니
쓸 만큼 쓰고 남은 것은
버릴 줄도 아시게나
자네가 움켜쥔 게 웬만큼 되거들랑
자네보다 더 아쉬운 사람에게 자네 것
좀 나눠주고
그들의 마음 밭에 자네 추억 씨앗 뿌려
사람 사람 마음 속에 향기로운 꽃 피우면
천국이 따로없네, 극락이 따로 없다네.
생이란 한 조각 뜬 구름이 일어 남이요,
죽음이란 한 조각 뜬 구름이 스러짐이라.
뜬 구름 자체가 본래 실체가 없는 것이니
나고 죽고 오고 감이 역시 그와 같다네.
천 가지 계획과 만 가지 생각이
불타는 화로 위의 한 점 눈(雪)이로다
논갈이 소가 물위로 걸어가니
대지와 허공이 갈라 지는구나
삶이란 한 조각 구름이 일어남이오
죽음이란 한 조각 구름이 스러짐이다
구름은 본시 실체가 없는 것
죽고 살고 오고 감이 모두 그와 같도다.....
묘향산 원적암에서 칩거하며 많은 제자를 가르치던
서산대사께서 85세의 나이로 운명하기 직전
살아 있는 게 무언가?
숨 한번 들여 마시고
마신 숨 다시 뱉어내고...
가졌다 버렸다 버렸다 가졌다.
그게 바로 살아 있다는 증표 아니던가?
그러다 어느 한 순간들여 마신 숨
내뱉지 못하면
그게 바로 죽는 것이지.
어느 누가,
그 값을 내라고도 하지 않는
공기 한 모금도
가졌던 것 버릴 줄 모르면
그게 곧 저승 가는 것인 줄 뻔히 알면서
어찌 그렇게
이것도 내 것 저것도 내 것,
모두 다 내 것인 양
움켜 쥐려고만 하시는가?
아무리 많이 가졌어도 저승길 가는 데는
티끌 하나도 못 가지고 가는 법이리니
쓸 만큼 쓰고 남은 것은
버릴 줄도 아시게나
자네가 움켜쥔 게 웬만큼 되거들랑
자네보다 더 아쉬운 사람에게 자네 것
좀 나눠주고
그들의 마음 밭에 자네 추억 씨앗 뿌려
사람 사람 마음 속에 향기로운 꽃 피우면
천국이 따로없네, 극락이 따로 없다네.
생이란 한 조각 뜬 구름이 일어 남이요,
죽음이란 한 조각 뜬 구름이 스러짐이라.
뜬 구름 자체가 본래 실체가 없는 것이니
나고 죽고 오고 감이 역시 그와 같다네.
천 가지 계획과 만 가지 생각이
불타는 화로 위의 한 점 눈(雪)이로다
논갈이 소가 물위로 걸어가니
대지와 허공이 갈라 지는구나
삶이란 한 조각 구름이 일어남이오
죽음이란 한 조각 구름이 스러짐이다
구름은 본시 실체가 없는 것
죽고 살고 오고 감이 모두 그와 같도다.....
묘향산 원적암에서 칩거하며 많은 제자를 가르치던
서산대사께서 85세의 나이로 운명하기 직전
위와 같은 시를 읊고 나시어 많은 제자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가부좌를 하고 앉아
잠든 듯 입적 하셨다고 합니다
『전투가 급하니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
노량해전은 피아간에 500여 척의 대(大)함대가 맞붙은 임란(壬亂) 최후의 결전이었다.
일본 함대는 사천의 시마즈, 창선도(昌善島)의 소오(宗義智), 그리고 부산에 주둔했던 데라자와(寺澤正成) 등이 연합한 500여 척의 대규모 세력이었다. 이순신은 함대를 노량해협 근처로 이동시켰다. 명의 수로군(水路軍) 대장 진린(陳璘)도 함대를 따라 노량해전에 나섰다. 이순신 함대는 해협 우측인 남해 관음포(觀音浦) 위쪽에 포진하고, 진린 함대는 노량해협 좌측에 대기했다.
전투는 11월19일 새벽 2시경에 양측 함대가 노량해협에서 조우하면서 시작되어 서로 전력을 다해 싸웠는데, 조선과 명 연합함대가 화공(火攻)을 펴면서 전황이 급전했다. 이 날 화공(火攻)은 겨울철에 부는 북서풍을 이용한 것이었다. 바람을 등진 풍상(風上)에 위치한 연합함대가 바람을 안고 싸우는 풍하(風下)에 위치한 일본 함대를 압도했다.
일본 함대는 퇴로를 찾아 관음포 쪽으로 도주했다. 그쪽으로 가면 바닷길이 뚫리는 것으로 오판했다. 하지만 그곳은 바다의 막다른 골목(灣)이었다.
일본 함대는 퇴로를 찾아 관음포 쪽으로 도주했다. 그쪽으로 가면 바닷길이 뚫리는 것으로 오판했다. 하지만 그곳은 바다의 막다른 골목(灣)이었다.
여기서 임란 중 가장 처절한 접근전이 전개되었다. 격전 중에 이순신이 왼쪽 가슴에 적(敵)의 총탄을 맞았다. 그러나 이순신은 피로 붉게 물든 가슴을 방패로 가리게 하고 아들 회에게 지휘를 부탁하고 죽음의 순간에도 적군을 섬멸하기 위한 명령을 내린다.
『전투가 급하니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
아들 회는 장령기를 들고 지휘하여 승리하였다.
전투는 1598년 11월19일 낮 12경에 끝났다. 조명(朝明) 연합함대의 대승이었다. 예교성에 포위되었던 고니시는 전투가 한창일 때 묘도 서쪽 수로(水路)를 통과, 남해섬의 남쪽을 우회하여 부산 방면으로 도주했다. 이로써 임란 7년 전쟁이 끝났다.
<장면 20 경성 기생 소춘풍>
성종의 은총까지 받았던 영흥기생 소춘풍보다 7,80년 후 경성 기생으로 같은 이름으로 또한 명성이 자자했던 제2의 소춘풍이 가슴을 열고 정을 주었던 사람은 사인 이수봉(李秀**)이었는데 그의 사랑을 받다가 그가 죽어 헤어진 뒤 중년에 최국광(崔國光)의 첩이 되었다.
하루는 병으로 누워있는 소춘풍에게 이제 네 병이 위독하니 소회를 말해 보라 하고 최국광이 말했다.
하루는 병으로 누워있는 소춘풍에게 이제 네 병이 위독하니 소회를 말해 보라 하고 최국광이 말했다.
소춘풍은 수봉이가 보고싶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최국광은 묵묵히 앉아 대답이 없었다.
비록 일찍이 죽어 헤어진 사이라곤 하지만 사랑하는 여인의 가슴에 항상 담겨있기를 바라는 남자의 본성에서 일탈하기 쉽지 않은 최국광의 깊은 속 마음을 져 버리듯 오래 전에 죽은 정인을 아직도 가슴에 고스란히 담고 있는, 이제 죽음 앞에 머물고 있는 깊은 병으로 초췌한 소춘풍의 고백 앞에 입을 다물고 먼 산을 바라보는 최국광의 가슴을 휩쓸고 지나가는 북쪽에서 불어오는 삭풍처럼 쓸쓸하고 차디찬 바람이여…
서글픔이여….
아, 외로움이여.
소춘풍이 죽은 뒤에 최국광은 그녀의 시신을 선영 아래 묻었다.
<장면 21 허란설헌의 임종 >
벽해침요해 (碧海浸瑤海) 푸른 바닷물이 구슬 바다에 스며들고
청난의채난 (靑鸞倚彩鸞) 푸른 난새는 채색 난새에게 기대었구나.
부용삼구후 (芙蓉三九朽) 부용꽃 스물 일곱 송이가 붉게 떨어지니
홍타월상한 (紅墮月霜寒) 달빛 서리 위에서 차갑기만 해라.
라는 시를 지었는데, 그녀는 27세 되던 어느 날 갑자기 몸을 씻고 옷을 갈아 입고서 ‘금년이 바로 3·9의 수(3×9=27, 27세를 뜻함)에 해당되니, 오늘 연꽃이 서리를 맞아 붉게 되었다’ 하고는 눈을 감았다고 전해진다.
청난의채난 (靑鸞倚彩鸞) 푸른 난새는 채색 난새에게 기대었구나.
부용삼구후 (芙蓉三九朽) 부용꽃 스물 일곱 송이가 붉게 떨어지니
홍타월상한 (紅墮月霜寒) 달빛 서리 위에서 차갑기만 해라.
라는 시를 지었는데, 그녀는 27세 되던 어느 날 갑자기 몸을 씻고 옷을 갈아 입고서 ‘금년이 바로 3·9의 수(3×9=27, 27세를 뜻함)에 해당되니, 오늘 연꽃이 서리를 맞아 붉게 되었다’ 하고는 눈을 감았다고 전해진다.
스물일곱 아직 꽃다운 나이에 바람 부는 어느 날 ‘부용꽃 스물 일곱 송이가 붉게 떨어지니
달빛 서리 위에서 차갑기만 해라 ‘ 이런 슬픈 노래를 나직이 읊조리며 꽃잎처럼 스러져 가
버린 아, 불운의 여인이여!
달빛 서리 위에서 차갑기만 해라 ‘ 이런 슬픈 노래를 나직이 읊조리며 꽃잎처럼 스러져 가
버린 아, 불운의 여인이여!
<장면 22 매화의 순절 >
매화는 끝까지 남아서 홍시유 내외를 선영에 안장했다. 며칠을 허탈한 마음으로 지냈다. 그러고도 몇 날 며칠을 허탈한 마음으로 묘를 찾아 허망과 정한이 넘쳐서 울며 지냈다.
죽어 니저야 하랴 살아 글여야 하랴
죽어 닛기도 얼엽꼬 살아 글의이도 얼여왜라
져 님아 한 말씀만 하소라 사생결단(死生決斷) 하리라
다음날 매화의 시체가 홍시유의 무덤 곁에서 발견되었다. 그토록 아껴 주던 어윤겸을 배반하고 홍 사또에게 달려 온 것을 비방하는 사람도 많았으나, 뒤늦게나마 그를 위해 순절한 것을 두고 세인들은 매화를 '재가열녀(再嫁烈女)라고 불렀다.
그녀에게 진정한 열녀의 걸어갈 길을 가르쳐 준 이씨 부인의 전례를 따라 비록 시앗이 되어서라도 사랑하는 임의 옆에 눕겠다는 간절한 소망으로 홍시유의 무덤 앞에서 목숨을 끊은 기생 매화의 정한(情恨)과 절의 앞에 누가 두 남자의 품에 안긴 여자를 열녀라고 부를 수 있는 가고 비난 할 것인가?
< 장면 23 박정희 대통령의 임종 >
나는 괜찮아 …..
총성이 울리고 공포와 혼란의 순간이 잠깐 지나고 어수선하기 그지 없는 방안에서 누군가가
각하 어떠십니까 하고 물었을 때 몸을 비스듬히 기댄 체 나는 괜찮아 라는 한마디를 조용히
남기고 숨을 멈추는 박정희 대통령의 임종의 순간을 상상하게 될 때, 저 5년 전 제 29 돌8.15 경축식장에서 문세광의 총성이 울리고 육영수 여사가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간 뒤에 다시 단상에 서서 중도에 멈추었던 경축사를 끝까지 읽어내려 가던 침착한 박 대통령의 모습과 클로오즙되는 것을 어쩔 수 없다.
나는 괜찮아….
< 장면 24 구상의 시 유언 >
유언(遺言)
살아서는 못 누린
호사스런 장례(葬禮)일랑
아예 마련치 말라.
가마귀 떼 우짖어
날으는 어느 아침에
내 시체를 메어다
행길 마루에 버리고
오가는 길손들이
서낭당처럼
조약돌 한 개씩만
풀매케 하라.
묘비(墓碑)도
비명(碑銘)도 다 싫고
어느 실없은 입설을 빌리어
「시시후의 손주 한 마리 이 땅에 귀향 살아 할비의 苦行을 거듭하다가 마침내 헛되이 죽었느리라」
호사스런 장례(葬禮)일랑
아예 마련치 말라.
가마귀 떼 우짖어
날으는 어느 아침에
내 시체를 메어다
행길 마루에 버리고
오가는 길손들이
서낭당처럼
조약돌 한 개씩만
풀매케 하라.
묘비(墓碑)도
비명(碑銘)도 다 싫고
어느 실없은 입설을 빌리어
「시시후의 손주 한 마리 이 땅에 귀향 살아 할비의 苦行을 거듭하다가 마침내 헛되이 죽었느리라」
부지런한 사람들에게
간곡히 전하여
모름지기 뒷날을
경계케 하라.
간곡히 전하여
모름지기 뒷날을
경계케 하라.
<장면 24+1 어떤 무명씨의 애주가>
이몸이 죽어지거든 뭇지 말고 주푸리여 매혀다가
주천(酒泉) 깊흔 소에 풍덩 드리쳐 둥둥 띄여두면
일생에 질기던 거시미 장취불성(長醉不醒)하리라
장진주사(將進酒辭)의 주인공 송강처럼 평소 술을 몹시 좋아하던 사람이라면 이런 유언을 남김직도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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