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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녀(妖女)의 화신 달기(妲己)

천하한량 2007. 3. 29. 16:58
요녀(妖女)의 화신 달기(妲己)
 
 
1.   녹대(鹿台) 위의 장야음(長夜飮)
 
 
달기는 중국역사상 가장 음탕하고 퇴폐적이고 변태적인 여인의 대명사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달기는 주왕의 제후 소호(蘇護)의 딸로 빼어난 용모와 몸매를 갖춘 천하절색의 미인이었다. 소호가 반란을 일으켰을 때 주왕은 막강한 병력을 파견하여 그것을 진압하자, 소호는 살아남기 위한 수단으로 자기의 딸 달기를 주왕에게 바치고 목숨을 구걸하였다.

주왕은 은행알과 같은 눈에 복숭아 같은 뺨, 하얀 피부의 미인인 달기에 빠졌다. 그 당시 달기는 여러 가지 꽃잎을 짜서 그 액을 얼굴에 바르는 도화장(桃花妝)이라 는 화장법, 즉 지금은 연지(燕脂)라고 하는 것으로 화장을 하였다. 여인들이 사용하는 연지의 역사는 대략 달기가 도화장(桃花妝)을 했던 이 때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고서에서는 달기의 미모를 이렇게 형용하고 있다.

구름처럼 검게 드리운 머리카락, 살구 같은 얼굴에 복숭아 같은 뺨, 봄날의 산처럼 옅고 가는 눈썹, 가을 파도처럼 둥근 눈동자, 풍만한 가슴과 갸냘픈 허리, 풍성한 엉덩이와 널씬한 다리, 햇빛에 취한 해당화나 비에 젖은 배꽃보다도 아름다워라.



주왕은 달기를 보는 순간 첫눈에 반하여 기다릴 것도 없이 그녀를 침대로 데려갔으며, 이날 이후부터 주왕은 다른 궁녀들을 쳐다보지도 않고 정사도 팽개친 채 오직 달기에게만 정신이 빠져 있었다.
 
<봉신방>의 작자는 달기가 단지 미모만으로 그렇게 간단히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지는 않았을 것이고, 반드시 그녀만의 특수한 침실에서의 섹스 비법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하고 이야기를 전개하였다. 즉, 그 성적 매력의 비밀은 바로 그녀의 음부에 있었다는 것이다. 그녀의 안은 넓어졌다 좁아졌다 하고 질은 겹겹의 주름으로 이루어져 있어, 남자가 그 안에 들어오면 움직이지 않아도 저절로 액체를 분비하여 꿈틀거리면서 빨아들이고, 부드럽게 꽉 죄기 때문에 주왕은 쾌감이 극에 달하여 그만 거기에 함몰되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다는 것이다.
달기의 음부는 그야말로 보기 드문 명기(名器)중의 명기라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달기는 왕비에 책봉된 후에 먼저 주왕에게 웅장하고 화려한 궁궐을 새로 지어달라고 요구하고, 모든 난간과 기둥은 아름다운 마노와 옥으로 장식하게 하였다.

주왕은 달기의 환심을 사기 위해 백성들을 가혹하게 착취하고, 10만 여명의 장인들을 불러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공사를 계속하여 7년이란 세월이 걸려 길이 3리(里) 높이 천 척(尺), 대궁전 100여개, 소궁전 72개에 이르는 호화로운 궁궐을 완성하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녹대(鹿台)와 적성루(摘星樓) 이다.
 
주왕과 달기는 밤낮으로 이 녹대에서 꿈같은 세월을 보내며 마음껏 유희를 즐겼다.
심지어 그들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연월일을 잊어 버릴 정도였기에 사관은 그것을 장야음(長夜飮: 밤새 술마시며 논다)이라 일컬었다.
 
바우로 집을 삼고 폭포로 술을 비저
송풍이 거문고 되며 조성이 노래로다
아해야 술 부어라 여산동취 하리라
<장현광>
 
술아 너는 어이 달고도 쓰돗더니
먹으면 취하고 취하면 즐겁고야
인간의 번호한 실음을 다 푸러 볼가 하노라
<작자미상>
 
한잔을 먹사이다 또 한잔을 먹사니다
꼿프로 술을 빗저 무궁무진 먹사이다
동자야 잔 가득 부어라 취코 놀고 하자고나
<작자미상>
 
달기는 잔혹한 형벌로 생사람을 다 죽게 만들어 놓고 그러한 장면을 보면서 자신의 성욕을 자극시켰다.
그녀의 이러한 흉악하면서도 음탕한 행위는 바로 변태 그 자체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달기와 주왕에 대한 이야기는 역사연의(歷史演義) <봉신방(封神榜)>에 상세하게 전해오고 있다.
 
그녀의 악명은 중국인들의 언어생활을 통해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중국 속어로 "달기정(妲己精: da ji jing)"이라 하면, 그것은 "달기같은 년", "여우같은 년(狐狸精)"이란 뜻으로 음흉하고 음탕한 여인을 욕하는 말이 된다.
 
주왕 보다 약 100년 후의 사람 BC 970년에 왕이 된 솔로몬은 그의 잠언서에서 음탕한 여인을 경계하지 않으면 패망에 이른다고 다음과 같이 경고하고 있다.
  
네 마음에 그 아름다운 색을 탐하지 말며 그 눈꺼풀에 홀리지 말라
음녀로 인하여 사람이 한 조각 떡만 남게 됨이며 음란한 계집은 귀한 생명을 사냥함이니라
사람이 불을 품에 품고야  어찌 그 옷이 타지 아니하겠으며 사람이 숯불을 밟고야 어찌 그 발이 데지 아니 하겠느냐
앞에서 음란한 여인을 조심하라고 했던 그 솔로몬 왕이 끝내 가까이 한 천명의 여인들로 인하여 말년에 범죄하였던 것을 본 현숙한 여인 르무엘 왕의 어머니는 아들이 왕이 되자마자 그 아들을 불러 앉히고 간곡히 다음과 같이 권면하고 있다.
 
네 힘을 여자들에게 쓰지 말며 왕들을 멸망시키는 일을 행치 말고 포도주를 마시는 것이 왕에게 마땅치 아니하며 독주를 찾는 것이 마땅치 않은 것은 술을 마시다가 법을 잊어버리고 간곤한 백성에게 공의를 굽게 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여자와 술을 조심하라..
 
이는 동서고금을 통하여 영원히 유념해야 할 교훈으로 여기에서 달기의 요녀로서 부리는 파행에 녹아 달기의 미소를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서슴지 않고 원하는 대로 이루어주는 주왕....
 
이러한 상황을 본 상 나라 삼현(三賢)의 한 사람인 대신(臺臣) 기자(箕子)는 "대왕의 측근들 조차 모두 왕조의 멸망을 모르지만 나만은 그것을 안다. 나의 처지가 실로 너무 위태롭구나!"라고 한탄하였다. 그 후 주 무왕 시절 많은 따르는 무리를 이끌고 요하를 건너 조선으로 들어와서 기자조선을 세운다.


2.  만족을 모르는 잔인성과 음란성
 
 
그 후로도 그녀는 계속하여 주왕과 함께 여러 가지 새로운 무시무시한 형벌들을 고안해 내었다. 그녀의 가슴속에 꿈틀거리는 잔인성과 음란성을 동시에 만족시키려는 강렬한
욕구 때문에 자꾸 더 무겁고 잔인한 형벌을 찾기에 골몰하였던 것 같다.
 
처음에 상나라의 창시자 탕왕(湯王)은 하(夏)나라 걸왕(桀王)의 형법이 너무도 잔혹하여 그것을 폐지하고 비교적 경미한 형벌로써 죄인들을 처벌했다.


성경 구약 열왕기상 12장에는 이런 얘기가 기록되어 있다.
통일 이스라엘의 3대왕 솔로몬이 죽고 그 아들 로호보암이 왕위를 계승하자 이스라엘 회중이 왕 앞에 모여와서 왕의 부친이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이제 당신이 새로 왕이 되셨으니 왕의 부친이 우리에게 시킨 고역과 메운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하소서 그리 하시면 우리가 왕을 섬기겠나이다 이렇게 고한다.
그러나 르호보암 왕은 이스라엘 무리를 향하여 내 부친은 너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나는 너희의 멍에를 더욱 무겁게 할지라 내 부친은 채찍으로 너희를 징치하였으나 나는 전갈로 너희를 징치하리라고 대답하여 인심을 잃어 버리자 열 지파의 백성들이 그를 버리고 떠나가  새 나라를 세우고,  르호보암은 겨우 두 지파를 거느리고 나라의 명맥을 유지하게 되고 만다.    
 
백성들을 착취하고 멍에를 무겁게 메우면 언젠가는 그 백성들이 왕의 권위에 등을 돌려 버리고 또 무서운 힘으로 도전하게 된다는 만고 불변의 진리를 잘 가르쳐 주는 역사의 엄숙한 교훈의 하나이다.

그러나 주왕은 선왕들의 법제가 너무 가볍다고 여기고 특별히 대형 청동 인두를 제조하였다. 그리고는 형을 받은 죄수들에게 자신의 손으로 붉게 달아오른 인두를 자신의 벌거벗은 몸 위에 놓고 지지게 했다.

이렇게 잔혹한 형벌도 달기는 너무 시시하다 여기고 주왕에게 대형 청동 기둥을 주조하도록 건의하였다.
그리고는 시뻘겋게 타오르는 숯불을 그 안에 넣고 죄수를 벌거벗은 채로 숯불 위에 서서 붉게 달아오른 청동 기둥을 꽉 붙잡게 하였다.

이것이 바로 그 이름만 들어도 무시무시한 "포락(炮烙: 통째로 굽는다는 뜻)"이란 형이다. 이러한 처참한 상황을 보고 달기는 오히려 그것을 즐기면서 그녀의 변태적 성욕을 자극시켰다
 
"포락"의 형을 즐기는 것도 점차 지겨워지자 달기는 다시 고심 끝에 "돈분(躉盆)"이란 형을 고안해냈다.
 
그녀는 먼저 주왕에게 녹대 부근에 넓고 깊은 구덩이를 하나 파달라고 요구했다. 그리고 수많은 독사와 전갈을 그 안에 집어넣은 다음 죄수들을 발가벗겨서 안으로 밀어넣게 하였다. 달기는 주왕과 함께 녹대 위에서 잔치상을 차려놓고 그 구덩이 안에서 독사와 전갈에 잡아먹히면서 몸부림치는 장면을 구경하면서 그것을 즐겼다.
  
주왕은 잔치상 바로 옆에 침실을 마련해두었다가 일단 달기의 성욕이 발동하면 언제든지 그녀를 침실로 데려가서 무한한 환락에 빠져들곤 하였다.


술룰 취토록 먹고 취하거든 잠을 드세
잠든덧 니즈리라 백천만 온갓 세념
구태여 닛고져 하랴마는 할 일 업서 니르미라
<작자미상>
 
얼마 후 달기는 다시 돈분 좌우로 연못을 하나 파달라고 한 다음, 연못을 피하여 왼쪽에는 술지게미를 쌓은 작은 언덕을 만들고 거기에 나무를 심게 했다. 그 나무 위에 고기덩어리를 매달아두고 그것을 현육위림(懸肉爲林)이라 하였으며, 오른쪽 연못에는 술을 가득 채워놓고 그것을 이주위지(以酒爲池)라 하였다.
 
재앙이 뉘게 있느뇨 근심이 뉘게 있느뇨 분쟁이 뉘게 있느뇨 원망이 뉘게 있느뇨 까닭 없는 창상이 뉘게 있느뇨 붉은 눈이 뉘게 있느뇨 술에 잠긴 자에게 있고 혼합한 술을 구하러 다니는 자에게 있느니라 포도주는 붉고 잔에서 번쩍이며 순하게 내려 가나니 너는 그것을 보지도 말지어다 이것이 마침내 뱀같이 물 것이요 독사같이 쏠 것이며 또 네 누에는 괴이한 것이 보일 것이요 네 마음은 망령된 것을 발할 것이며 너는 바다 가운데 누운자 같을 것이요 돛대 위에 누운자 같을 것이며 내가 언제나 깰까 다시 술을 찾겠다 하리라
<잠언 23: 29-35>
 
깨고 나면 다시 취하는
술이여, 타락한 환락의 춤이여, 그리고 깊음을 모르는 아 아!  성의 열락의 수렁이여...
 
그리고는 다시 궁녀와 환관들을 불러모아서 발가벗고 서로 희롱하고, 음탕한 음악과 음란한 춤을 추게 하며, 나체로 씨름을 하게 한 다음, 승자는 주지육림(酒池肉林)에 들어가서 마음껏 먹고 마시게 하고, 패자는 주왕의 존엄함을 욕되게 했다고 하여 돈분에 집어넣었다.


이몸이 죽어지거든 뭇지 말고 주푸리여 매혀다가
주천(酒泉) 깁흔 소에 풍덩 드리쳐 둥둥 띄여두면
일생에 질기던 거시미 장취불성(長醉不醒) 하리라
<만횡청(蔓橫淸)>
 
 
술 먹어 병업는 약과 색(色)하여 장생(長生)할 술(術)을
갑 쥬고 살잘시면 참 맹서하지 아모 만인들 관계하랴
갑 쥬고 못살 약이니 눈치 아라 소로소로하여 백년까지 하리라   
<만횡(蔓橫)>
 
 
3.   충신 비간(比干)의 심장(心臟)
 
 
당시에 구후(九侯), 악후(鄂侯), 서백(西伯: 이후의 주나라 문왕)이라는 삼공(三公)이 있었다. 주왕은 구후의 딸이 달기에 필적할 정도로 그 용모가 아름답다고 들었다. 그리하여 그녀를 강제로 데려와서 후궁에 앉힌 다음 그녀와 달기를 옷을 하나도 남김없이 벗겨 세워놓고 차례로 훑어보면서 비교해 보았다. 그녀의 용모에 흡족한 주왕은 그녀를 비에 책봉했으나 정숙한 구후의 딸은 그처럼 황음무도한 생활에 적응할 수 없었다.
그녀는 결국 주왕의 노여움을 사서 사형에 처해지게 되었다.

잔인한 달기는 기뻐한 나머지 또다시 독랄한 형벌을 생각해냈다. 미꾸라지를 여러 마리 잡아오게 한 다음, 구후의 딸을 벌거벗겨서 사지를 큰 대자로 침대 기둥에 묶어놓고 미꾸라지를 그녀의 음부에 집어넣게 했다.
미꾸라지는 습하고 따뜻한 구멍을 좋아하는지라 그녀의 음부 속으로 다투어 파고들었다. 구후의 딸은 이렇게 처참하게 죽어갔던 것이다.
그래도 주왕은 분노가 가시지 않아 다시 구후를 잡아오게 하여 살을 갈기갈기 토막내어 버렸다.

악후도 몇 번이나 간언을 하다가 결국 처형당했다. 서백 희창(姬昌)은 이 소식을 듣고 하늘을 우러러 세 번 탄식하고 기산(歧山)에서 비밀리에 군사들을 훈련시키면서 폭군 주왕을 토벌할 준비를 하였다.

주왕은 오로지 그녀의 성욕을 자극시키느라 무고한 백성들을 잔인하게 살해하고 산사람을 화살 과녁으로 삼거나 호랑이 우리에 집어넣었다. 달기는 심지어 임산부의 배에 들어있는 태아의 성별을 감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자신하면서 주왕과 내기를 하고, 임산부를 잡아와서 직접 배를 갈라 확인해 보기도 하였다.

보다 보다 못하여 3대에 걸친 공신 비간(比干)이 죽음을 무릅쓰고 주왕에게 간언을 하자, 달기는 주왕에게 자기가 심장병이 들었는데 성현의 심장을 먹어야 나을 수 있다고 거짓말을 하였다. 그 말을 들은 주왕은 당장 충직한 신하 비간의 가슴을 갈라 심장을 꺼냈다.



 
 
 
2000년 전 동생의 아내 헤로디아를 후비로 들이고 그녀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감옥에 갇혀 있는 세례요한의 목을 쳐 소반에 담아오게 했던 헤롯 왕의 처사와 어찌 보면 이리도 닮아 있는가?  
 
 
     昔者에 商紂가 暴虐이어늘 
     석자에 상주가 폭학이어늘           옛날에 상나라의 주왕(紂王)이 포악하였는데
     比干이 諫而死하니
     비간이 간이사하니                  비간이 아뢰다가 목숨을 잃었으니
     忠臣之節이 於斯에 盡矣라.
     충신지절이 어사에 진의라.          충신의 절개가 이로써 다하였다.
 
 
(商)나라의 마지막 군주인 주왕(紂王)은 본시 지혜와 용기를 겸비한 현명한 임금이었으나, 달기(달己)라는 요부에 빠져 그만 극악무도한 폭군이 되고 말았다. 그는 잔혹한 형벌을 고안해 내어 자신을 반대하는 관리나 백성들을 불에 태워 죽이면서, 여기에서 쾌락을 느꼈다.
 
기원전 1057년 서백 희창의 아들 희발(姬發: 후의 주나라 무왕)과 10년 세월을 낚고 있었던 군사(軍師) 강자아 (姜子牙: 강태공)가 대군을 거느리고 상나라의 수도 조가(朝歌)를 공격하였다. 당시 주왕 (紂王)의 군대는 동이(東夷)와 작전을 펼치고 있었으므로, 주왕은 노예 들을 데리고 전투에 임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노예들은 주왕의 명령을 듣지 않고 희발(姬發)의 편에 섰다. 대세가 이미 기울었다고 판단한 주왕은 녹대에 올라가서
그 아래에 활활 타고 있는 불길 속으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4.  에필로그 
 
 
달기는 강자아의 병사들에게 붙잡혔을 때, 큰소리로, "나에게는 공은 있으되 죄는 없다. 만약 내가 주왕을 유혹하지 않았더라면 너희들이 어찌 상나라를 멸망시킬 수 있었겠느냐?" 라고 외쳤다고 한다. 참으로 뻔뻔스럽기 그지 없는 여인이다.
 
강자아는 달기를 봉신방(封神榜)으로 끌고가서 참수를 명했다. 그런데 망나니가 칼을 뽑아 형을 집행하려고 할 때 달기는 돌연히 머리를 돌려 요염한 웃음을 날리면서 그를 홀렸다. 망나니는 갑자기 넋이 빠져 달기를 멍청히 바라보다 그만 칼을 땅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다른 망나니들로 바꾸어서 계속 집형을 시도해 보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강자아는 달기의 사람 홀리는 술책이 이미 입신의 경지에 도달했음을 알고, 부하의 화살을 꺼내어 숨을 죽이고 정신을 집중하여 직접 그녀의 심장을 향하여 연속해서 세 발을 쏘았다. 음난한 요부 달기를 영원히 역사의 무대에서 제거시킨 것은 세월을 낚을 줄 알았던 강태공이었다. 


술에 취하여 그것도 몹시 취하여 자기가 한 일도 기억하지 못하고 무슨 짓을 저지르는지도 모르고 취하여 살아온 세월! 그 어느 날 깨어보니 사랑하던 사람도 오간데 없고 외로움과 서글픔만 가득 남은 허무한 가슴으로 홀로 남은 자신의 초라한 몰골이여
 
술이 취하거든 깨지 말게 삼기거나
님을 만나거든 이별 업게 삼기거나
술 깨고 님 이별하니 그를 슬허 하노라
<작자미상>
 
목숨을 구걸하기 위하여 조금 전까지도 서로의 육체를 탐익하며 끝 간데 없는 성의 향연의 나락에서 서로를 불태웠던 주왕을 그가 죽자 한 순간에 배신하며 상 나라를 멸망시킨 것이 자기가 주왕을 유혹한 덕이라고 외치는 달기의 모습에서 참으로 씁쓸한 인생의 무상함을 얼핏 보게 된다. 차라리 그녀가 술에 취하여 깨지 못하듯이 주왕과의 성의 환락에 취하여 깨어나지 않은 채 목숨을 그렇게 구차한 모습으로 구걸하지 않을 수 있었더라면 하는 덧없는 생각을 해본다. 그랬더라면 술 깨고 님 이별하는 아픔 같은 것 맛보지 않아도 되지
않았겠는가?
 
어쩌면 그녀는 목숨보다도 오히려 꿈깨지 못하는 성의 향연에 대한 미련이 더 크게 남았던 것은 아니었을까.....

기원전 11세기에 있었던 이들의 이야기는 그보다 수백 년 이전에 있었던 하(夏)의 걸왕 (桀王)과 말희()의 이야기와 너무나 흡사하다. 달기와 주왕이 상(商)나라를 패망의 길로 이끌었다고 한다면 걸왕과 말희는 하(夏)나라를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달기의 죽음에 대해서는 <사기(史記)>의 저자 사마천(司馬遷)은 주왕이 녹대에서 뛰어내려 분신자살한 후에 달기는 주(周) 무왕(武王)의 군사에 의해 살해되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세설신어(世說新語)>에서는 공융(孔融)의 말을 인용하여 주나라 군대가 조가(朝歌)에 진입한 후에 주공(周公;강태공)이 달기를 취하여 그의 시녀로 삼았다고 하였다.
 
만약 이 <세설신어>의 얘기가 사실이라면 주공 강자아가 첫눈에 달기의 미모에 혹하였기에 그의 목숨을 살려 시녀로 삼았고, 훗날 그녀의 화려하고 요란한 밤의 향연에서 강자아를 녹여 10년 세월을 낚았던 그의 수련을 하루 아침에 무너뜨리고 말지 않았을까. 마치 황진이의 미소와 눈 흘김 한번에 30년 면벽의 지족선사의 수도가 와르륵 무너져 <도로아미타불>이 되어 버렸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