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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한가(長恨歌)의 미인 양귀비

천하한량 2007. 3. 29. 17:03
장한가(長恨歌)의 미인 양귀비
 
 
1.  당나라 제 6대 임금 현종
 
 
당나라의 제6대 황제인 현종(재위 712∼756)은 예종(睿宗)의 셋째 아들로 본명이 이융기
(李隆基/685~762)이며 명황(明皇)이라고도 한다. 조모 측천무후(則天武后) 시대에 낙양에서
태어났으며, 9세에 임치왕(臨淄王)으로 봉해졌다. 26세 때 위후(韋后)가 딸 안락공주(安樂公主)
와 짜고 중종(中宗:현종의 백부)을 암살, 중종의 아들 온왕(溫王)을 제위(帝位)에 앉히고 정권을 농단(壟斷)하기 위해 현종 아버지 상왕(相王)까지도 해치려 하자 그는 심복 장병을 인솔, 위후와 안락공주 일당을 친 뒤 아버지를 예종(睿宗)의 제위에 옹립하고 자신은 황태자가 되어 실권을
잡았다가 28세에 마침내 아버지의 양위로 즉위하였다.
 


 
현종은 요숭(姚崇)·송경(宋璟)·장열(張說)·장구령(張九齡) 등 명상의 도움을 얻어, 안으로는 민생
안정을 꾀하고 조운(漕運) 개량과 둔전(屯田) 개발 등으로 경제를 충실히 하였으며, 부병제(府兵制)의 붕괴에 대처하여 신병제를 정비하였으며 밖으로는 동돌궐(東突厥)·토번(吐蕃)·거란(契丹)
등의 국경지대 방비를 튼튼히 하여, 개원(開元)·천보(天寶) 시대 수십 년의 태평천하를 구가하였다.
 
양귀비는 쓰촨성[四川省]에서 태어나, 17세 때 현종의 제18왕자 수왕(壽王)의 비(妃)가 되었다.
 
이임보(李林甫)가 조정의 실권을 한 손에 쥐고 있던 736년에 현종은 사랑하던 무혜비(武惠妃)를 잃었다. 무혜비를 잃은 현종은 실의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후궁에는 아리따운 미녀가 3천명
이나 있었으나 누구 하나 현종의 마음을 끄는 여인은 없었다.

이럴 즈음 현종의 귀를 솔깃하게 하는 한가지 소문이 현종의 관심을 끌었다. 수왕비(壽王妃)가
보기 드문 절세의 미녀라는 소문이었다. 현종은 은근히 마음이 끌려 환관에게 명하여 일단 수왕비를 자신의 술자리에 불러오도록 하였다. 현종은 수왕비를 보자 한눈에 마음이 끌렸다. 수왕비는
빼어난 미모일 뿐 아니라 매우 이지적인 여성으로 음악.무용에도 남다른 재주가 있었다.

술자리에서 현종이 작곡한 '예상우의곡(霓裳羽衣曲)'의 악보를 보자 그녀는 즉석에서 이 곡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는 것이었다. 그녀의 자태는 마치 선녀가 지상에 하강하여 춤을
추는 듯 현종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원래 다재다능 하였던 현종은 , 특히 음악에 뛰어나 스스로 작곡까지 하고, 이원(梨園)의 자제
남녀를 양성하는 한편 서도에도 능하여 명필이라는 칭호를 들었었는데 이런 현종이 양귀비의
빼어난 미모와 뛰어난 가무의 재주를 만났으니 흠뻑 빠져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2.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불륜
 

현종 황제와 양귀비의 로맨스는 이 만남을 계기로 그 막이 오르게 되었는데 양귀비의 본명은
옥환(玉環)으로 그 당시 22살이던 그녀는 이미 현종의 열 여덟째 아들 수왕 이모(李瑁)의 아내가 되어 있었다. 수왕 이모는 현종과 무혜비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니 양귀비는 바로 현종의 며느리인 것이다.  
 
56세의 시아버지 현종이 22세의 며느리와 사랑을 불태운다는 것은 당시로서도 충격적인 스캔들이 아닐 수 없었다.

이와 비슷한 경우를 구약 성경 창세기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야곱의 넷째 아들인 유다는 첫 부인 레아가 낳은 여섯 명의 아들들 중 한 사람이다. 
유다는 가나안 사람 수아라는 사람의 딸과 결혼하여 엘과 오난, 셀라 세 아들을 낳았는데 장남
엘이 장성하자 다말이라는 여자와 결혼을 시킨다.
 
그런데 엘은 결혼한지 얼마 안되어 다말과의 사이에 자식을 남기지 않고 죽고 말았다.
그 당시 히브리 사람들은 집안의 대를 잇기 위하여 형이 자식이 없는 상태에서 죽게 되면 남동생이 형수를 아내로 맞이하여 아들을 낳아야 하는 관습이 있었다. 이에 동생 오난은 아버지의 분부대로 다말의 방에 들어가 잠자리를 가지고 성관계 중 사정 직전에 성기를 빼내어 바닥에 자신의 정액을 쏟아 버리곤 했다.  즉 체외사정을 했던 것이다.
 
오난이 그렇게 한데에는 다말이 낳게 될 아들이 자기 아들이 아니라 형의 아들이 되는 것이 참을 수 없도록 싫었다고 기록하고 있지만 어쩌면 다말의 얼굴이 박색으로 영 맘에 들지 않아 그와의
사이에 못 생긴 자식을 갖는 것이 싫어서였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자위행위를 뜻하는 영어의 오나니즘(onanism)이나 독일의 오나니(onanie)가 이 유다의 둘째
아들 이름인 오난에서 유래하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다말에게 성적 쾌감을 어느 정도 충족시켜주는 성관계를 하면서도 질 내에 사정을 하지 않는 오난도 얼마 있지 아니하여 죽어버리고 말았다.
이제 남은 막내 오난의 동생 셀라가 다말과 결혼하여 동침해야할 차례였다. 그러나 아버지 유다는 다말과 혼인하는 자식마다 죽어버리니 걱정이 아닐 수 없었다. 다말의 방에 들어간 두 아들이 모두 죽고 말았으니 막내 셀라마저 다말과 혼인 했다가 죽어 버리면 큰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유다는 셀라가 아직 어리다는 핑계를 대고 며느리 다말을 친정으로 돌아가 수절하고 있으라고
달래며 보낸다.
 
그리고 많은 세월이 흐른 후 유다는 아내가 죽어 홀아비가 되자 자신의 성적 욕구를 해결하기
위하여 양털 깎으러 간 딤나 지방에서 서둘러 사창가를 찾아 창녀와 하룻밤을 잔다. 
유다는 그 창녀에게 화대로 다음에 염소새끼를 주겠다고 하며 그 약조물로 자신의 도장과 지팡이를 여자에게 맡긴다. 딤나에서 집으로 돌아온 유다는 친구 편으로 화대인 염소새끼를 여자에게
보내고 도장과 지팡이를 찾아 오게 했으나 어디에서도 그 여자를 만나지 못하였다.
그런데 석달이 지난후, 친정집에 가있는 며느리 다말이 임신을 햇다는 소문이 유다에게 들려왔다. 유다는 다말이 외간 남자와 간통한 줄 알고 끌어다가 불에 태워 죽이려고 하였다.
 
이 때 유다 앞에 나온 다말이 도장과 지팡이를 내놓고 이 물건의 임자가 자기를 임신시킨 장본인이라고 실토하는 바람에 깜짝 놀라서 장성한 셋째 아들 셀라를 다말에게 보내지 않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다말을 화형 시키도록 한 명령을 취소했다.
 
다말이 쌍둥이 베레스와 세라를 낳았는데 마태복음 첫 머리에 나오는 낳고 낳고의 족보에 보면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라는 구절이 나온다.
창녀로 변장하여 시아버지와 성관계를 맺었던 며느리 사이에서 잉태된 불륜의 씨가 버젓이
예수 족보에 실려 있다.
 
아들의 여인을 아버지의 힘으로 강제로 빼앗아 늙으막에 여자와의 잠자리에 한없이 몰입되어 왕으로서 수행해야 할 정사까지도 팽개쳐버리고 애정행각을 펼치는 시아버지 현종과 며느리 양귀비의 스캔들이나 이와는 달리 비록 본의가 아니었지만 시아버지 유다와 며느리 다말의 불륜은 시아버지가 아들의 여자와 관계하였다는 점에서는 일치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누구든지 그 자부와 동침하거든 둘 다 반드시 죽일지니 그들이 가증한 일을 행하였음이라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레위기 20:9)
성경에서는 마치 계모와 동침하는 자는 아비의 하체를 범한 것이므로 반드시 죽이라고 한 것과
같이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성관계를 매우 가증한 일로 시아버지와 며느리 두 사람 다 죽일만한
죄라고 정의하고 있다.

현종은 중신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여도사(女道士)로 삼아 우선 남궁에서 살게 하고
태진(太眞)이라는 호를 내려 남궁을 태진궁(太眞宮)이라 개칭하였다. 현종은 아내를 빼앗기고
시름에 잠긴 아들인 수왕 이모에게 죄책감을 느껴서였는지 수왕에게 위씨의 딸과 결혼하여 아내로 삼게 하였다.

태진이 귀비로 책봉되어 양귀비로 불리게 된 것은 그 후의 일이지만 남궁에 들어온 태진에 대한
현종의 열애는 대단한 것이었다. 현종과 태진 이 두사람은 깊은 밤도 오히려 짧은 듯 해가 높이
떠올라도 잠자리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이렇게하여 일찌기 흥경궁에 근정전을 세워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정무에 열중하던 현종 황제는 정치에 대한 흥미를 완전히 상실하여 마치 딴 사람처럼 되어 버렸다.

남궁에 들어온지 6년 후 태진은 귀비로 책봉되었다. 명실 공히 양귀비가 된 셈이다. 궁중의 법도상 귀비의 지위는 황후 다음이었으나 이때 황후는 없었으므로 사실상 양귀비가 황후의 행세를 하였다.



 
3. 비익조(比翼鳥)와 연리지(連理枝)
 
 
천보 10년(751) 칠월 칠석날에 있었던 일이다.

현종은 화청궁에 거동하여 장생전에서 양귀비와 함께 노닐고 있었다. 이윽고 밤이 깊어 하늘에는 은하수가 아름답게 반짝이고 있었건만 웬일인지 칠석의 하늘을 쳐다보고 있던 양귀비는 갑자기
흐느껴 울기 시작하였다. 현종은 왜 우느냐고 달래듯 물었으나 양귀비는 그저 울음만을 계속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으려 했다.

이윽고 양귀비는 눈물을 닦으면서 띄엄띄엄 그의 심정을 털어 놓기 시작했다.

"하늘에 반짝이는 견우성과 직녀성, 얼마나 아름다운 인연입니까. 저 부부의 지극한 사랑, 영원한 애정이 부럽습니다. 저 부부와 같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역사에도
자주 기록되어 있지만 나이가 들면 가을 부채처럼 버림을 받는 여자의 허무함, 이런 일들을 생각하면 서글퍼 견딜 수가 없아옵니다......."

양귀비가 눈물을 흘리며 말하는 한 마디 한 마디는 현종의 마음을 아프게 찔렀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손을 서로 붙잡고 그들의 영원한 애정을 하늘에서 반짝이는 별에게 맹세하는 것이었다.

"하늘에서는 비익조(比翼鳥)가 되고, 땅에서는 연리지(連理枝)가 되어지이다."

이 뜻을 풀이하면, '비익조'는 중국 전설에 나오는 새로, 암수가 한 몸이 되어 난다는 데서 사이가 좋은 부부를 상징하고, '연리지' 또한 중국 전설에 나오는 나무로, 뿌리는 둘이지만 가지는 합쳐져 하나가 된다는 데서 부부의 깊은 애정을 상징한다. 현종과 양귀비는 이 '비익조'와 '연리지'처럼
영원히 떨어지지 않을 것을 맹세한 것이다.

 
4.  장한가(長恨歌)
 
 
양귀비는 고아 출신으로 양씨 가문의 양녀로 들어갔기 때문에 혈연을 같이 하는 친척은 없었지만 현종은 양귀비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양씨 일족에게도 특별한 배려를 하였다. 세 자매까지 한국
(韓國)·괵국·진국부인(秦國夫人)에 봉해졌다. 여러 친척이 황족과 통혼(通婚)하였다. 그녀가 남방(南方) 특산의 여지(  )라는 과일을 좋아하자, 그 뜻에 영합(迎合)하려는 지방관이 급마(急馬)로 신선한 과일을 진상(進上)한 일화는 유명하다.

양귀비의 6촌 오빠 양소는 별로 품행이 좋지 않았는 데도 불구하고 민첩하고 요령있는 행동으로 점차 현종의 신임을 받아 현종으로부터 국충(國忠)이라는 이름을 받았다. 그 후 재상 이임보와
대립하였고 이임보가 실각한 후에는 안록산과도 대립했던 양국충이 바로 양귀비의 6촌 오빠이다.

개원 24년(736)부터 천보 연간에 걸쳐 조정에서는 간신이 제멋대로 정사를 농락하고 현종은 양귀비에게 정신을 빼앗겨 당왕조의 정치는 부패 일로를 치닫고 있었다. 이렇게 해서 번영의 뒤에 숨겨져 있던 위기가 점점 심화되어 갔다.

755년 양국충과의 반목(反目)이 원인이 되어 안녹산(安祿山)이 반란을 일으키자(安史의 난),
황제·귀비 등과 더불어 쓰촨으로 도주하던 중 장안(長安)의 서쪽 지방인 마외역(馬嵬驛)에 이르렀을 때, 양씨 일문에 대한 불만이 폭발한 군사가 양국충을 죽이고 그녀에게도 죽음을 강요하였다. 현종도 이를 막을 방법이 없자, 그녀는 길가의 불당에서 목을 매어 죽었다
  


 
정사(正史)도 그녀를 자질풍염(資質豊艶)이라 적었으며, 절세(絶世)의 풍만한 미인인데다가
가무(歌舞)에도 뛰어났고, 군주(君主)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총명을 겸비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이백(李白)은 그를 활짝 핀 모란에 비유했고, 백거이(白居易)는 귀비와 현종과의 비극을 영원한
애정의 곡(曲)으로 하여 《장한가(長恨歌)》로 노래한 바와 같이, 그녀는 중국 역사상 가장 낭만적인 주인공이 되었다. 진홍(陳鴻)의 《장한가전(長恨歌傳)》과 악사(樂史)의 《양태진외전(楊太眞外傳)》 이후 윤색(潤色)은 더욱 보태져서, 후세의 희곡에도 좋은 소재를 제공하고 있다.
 
서시(西施), 왕소군(王昭君), 초선(貂嬋)과 더불어 중국 4대 미녀에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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